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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히스토리아 역사 스토리

한나라의 문화 : 동아시아 문화권으로 나아가다

한나라의 문화 : 동아시아 문화권으로 나아가다

이번 장에서는 한나라 한무제 이래 중국 문물이 동아시아로 전파되는 계기를 아주 간단히 다루어 보겠습니다.

1. 한나라 시기 문화권의 대립

중국 고대시기에 아시아의 문화권은 큰 틀을 말하지만 4개로 나누어 보곤 합니다. 하나는 중국문명(동아시아 문화권), 다른 하나는 인도문명(남아시아 문화권), 다음은 페르시아 문명(서아시아 문화권), 마지막으로 흉노 문화권(북방문화권)입니다.

이중 고대 중국 문화권이 가장 치열하게 싸우고, 만나야 했던 문화는 바로 북방 문화권입니다. 이 때의 북방 문화권은 흉노로 대표되는 유목문화권으로서 중국과 대등한 세력을 갖춘 하나의 독자세계였습니다. 우리는 보통 아시아 문화권을 <중국>중심으로만 파악하지만, 실제 아시아 문화권, 심지어 중국 문화권도 북방 민족과의 항쟁 속에서 바라보지 않으면 이해가 안 될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중국중심>의 사관에 너무 치우쳐 실제 중국 전체 기간 중 50% 이상에 영향력을 미친 <북방세력>에 대하여 너무 간과하거나, 미천한 존재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한 제국이 고대 문명을 완성하여 중국적인 한문화를 만든 것도, 북방과의 항쟁 결과로 이루어진 측면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일단, 흉노라는 민족에 대항하여 연합세력을 구축할 목적에서 실크로드가 개척되었으며, 이 실크로드의 비단 무역권을 북방 문화권에서 중화 문화권으로 흡수하면서 흉노가 약해지기 시작합니다. 진시황, 한무제가 무력으로 흉노를 제압하지 못했지만, 한무제 이후 중국은 서방과의 무역권으로 북방민족을 통제하기 시작합니다. 한무제가 고조선을 멸망시킨 이유 중의 하나도 <흉노>와 고조선이 연합하여 대동강 - 압록강 - 송화강으로 이어지는 무역권을 장악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흉노 등 북방민족과의 항쟁이 중국으로서는 <중화>라는 개념을 더욱 확고하게 할 수 있는 계가가 되었고, 중국은 북방이 아닌 남방과 서방, 동부로 문화권을 확대했다는 점입니다.

이로서 북방문화권과는 다른, 동아시아 문화권을 남방에 확립할 계기를 만들게 되었는데, 이것은 중국 문물에 대한 남방 전파로 이루어집니다.

2. 중국에 문화권이 정립되고, 한반도로 유입되다

중국 문화권이 성립되는 과정은 춘추시대 철기의 전파로 황하강 이남의 양자강에도 국가가 성립되면서 <중화>개념이 탄생한 것에서 비롯됩니다. 이 문화는 진이 통일하면서 통일적인 중국문화로 정립되고 한나라에서 유교를 국교화하고, 황제중심지배체제를 완성하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문화가 동아시아로 전파되면서 동아시아 문화권은 한대에 시작되어집니다. 그러나, 한이 망하고 위진남북조의 혼란기가 길어짐에 따라 동아시아 문화는 완성되지 못하다가, 당나라 시기에 동아시아 각국이 그 문화를 스스로 수용할 수 있는 단계에 오르면서 완성된다고 말합니다.

중국사를 공부하시는 분들이 위처럼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말은 역설적으로 당 이전에는 동아시아 문화를 체계적으로 수용할 만큼, 고대 한반도 국가들이 후진적이었다는 말도 됩니다. 따라서 당대 동아시아 문화권이 완성되었다는 <중국중심>의 주장도 검토해 봐야할 것 같습니다. 실제, 삼국시대의 각 국은 6c 무렵 이미 중국의 선진 문물을 스스로 정리해서 이념화하는 단계였으니까요.

일단 정리해보자면, 동아시아 문화권은 교과서적으로 표현하자면 <한자, 유교, 율령, 불교>의 전파로 정리됩니다.

즉, 동아시아 세계에 중국 한나라에서 비롯된 한자를 전파하게 되면서 중국의 사상, 학술, 기타 율령, 불교까지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배경을 만들었습니다. 이 한자가 동아시아에 전파되면서 한자로 씌여진 각종 문물들이 들어오게 되는 것이죠. 그 중 중국왕조의 통치이념인 유교, 당시 왕즉불 사상으로 국왕권 강화에 기여했던 불교, 또한 황제지배체제를 법적으로 뒷받침하는 율령은 각국의 중앙집권 통치이념으로 자연스럽게 전파됩니다.

3. 동아시아 문화권의 운영원리

동아시아 문화권의 운영원리는 중국이 정한 <조공과 책봉의 원리로 이루어진 봉건적 질서>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봉건제도는 은주시대 성립한 <종법제도, 혈연적 씨족제도>에 기초하고 있는데, 한 대에는 이것이 고대 중화사상<화이사상>과 연결되어 <책봉, 조공의 원리>로 나타납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중국이 자신의 주변국들을 중국의 은혜를 입는 오랑캐국으로서 규정하고, 주변국을 <책봉>하는 형태의 운영을 말합니다. 즉, 유교사상에 입각하여 주변국들은 중국을 <천자>로 받들고, 천자국인 중국은 주변국을 봉건제후국으로 <책봉>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변국들은 중국에 <조공>이라는 것을 행해야 하는데, 이것은 제후국이 천자국의 은혜에 감사하다는 뜻으로 물건을 바치는 것을 말합니다. 중국은 조공 온 주변국에게 <물품>을 하사하여 노력을 칭찬하게 되는데, 이것을 흔히 중국사에서는 <조공 무역>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기준으로 본다면 중국은 내부를 다스리는 원리와 외부를 다스리는 원리가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내부적으로는 <군현제>를 통하여 황제가 국가를 직접 다스립니다.

외부적으로는 <봉건제>를 통하여 주변국을 제후로 규정하고 조공사상으로 통제합니다.

이러한, 중국의 전통적 화이사상에 입각한 동아시아 운영원리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는 당나라 시기에 <나-당 관계>속에서 더 확고해져서 동아시아 운영원리로 완성됩니다. 당의 황제들은 발해 건국 후 발해 견제를 위하여 신라의 왕들을 당의 왕실의 은혜를 입는 국가로 계속 <책봉>하였습니다. 신라는 이러한 당의 책봉관계를 실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발해를 견제하고, 동아시아 평화를 지속하기 위해 당이 약해지는 시점까지는 이 책봉을 일시적으로 인정한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식 책봉 관계가 실제 군신관계로 작용한 예는 거의 없고, 모두가 동아시아 정세를 평화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였습니다.

제가 술을 먹어서 오늘 글이 개념이 없군요. 나중에 이 포스트는 좀 손질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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