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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역사 사료와 데이터

발해와 일본의 외교 관계

 발해는 초기에는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목적을 위해서 일본과 적극적인 외교관곌ㄹ 맺었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정치질서가 안정되고 평퐈공존체제가 확립되면서 점차 경제적인 교역과 문화교류의 성격으로 변하였다. 뛰어난 항해술과 조선술 그리고 적극적인 사고를 가진 발해인들은 겨울의 동해바다를 건너다녔다.

2000여년 동안에 공식적인 교섭만 35차례에 달하고, 그 외에 민간인들의 교류는 매우 많았을 것이다. 주로 11월에서 2월 사이에 발해의 해안을 출발하였는데, 그 도착한 범위는 매우 넓었다. 기록에 의하면 동북 지방의 아끼다지방에서 남으로 내려오면서 현재의 니이가타, 이시가와. 노토반도. 쓰루가인 북륙지방. 돗도리. 오끼. 이즈모 등 산음 지방은 물론 큐슈까지 이르렀다. 특히 민간인들은 북해도와 사할린까지 진출하였을 것이다. 발해인들은 아마도 동아시아에서 해양활동을 가장 적극적으로 하였을 것이다.











일본에서 발견된 발해 관계 문서 - 발해에서 온 사절단에 관한 자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발해 사신이 떠났던 만량진

이 글이 인용된 원문 : http://www.koguryo.org/(사단법인 고구려 연구회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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