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몽이 끝났네요. 주몽 드라마를 다시 생각해보니, 역사를 보았다기 보다는 한편의 대하서사 문학을 본 느낌이 많이 듭니다. 드라마가 역사가 될 수 없지만, 역사적으로 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뭔가 포스트 하나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글은 말도 안되는 글이지만, 솔직히 보다가 이런 부분들이 눈에 띄어서 그냥 적어봅니다. 1. 주몽의 설정은 고대 서사적 구조의 현대적 해석... 처음부터 주몽을 못봐서 초반 20부 정도는 인터넷에서 다운받아서 보았습니다. 한 번에 10시간씩 시간을 내서 몰아보았더니, 그 구도가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있더군요. 초반 주몽의 구조는 고대 서사 구조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대 영웅의 구조는 보통 <신이한 탄생 - 어린 시절의 고난 - 위기의 극복 - 다시 찾아오는 위기 - 신화의 완성>이라는 단계로 나가곤 합니다. 저는 주몽 1편을 보면서 작가들이 분명 이 구도를 따라가겠구나... 라고 편견을 가지고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몽의 설정은 단순한 <고대 서사>의 구조가 아니였습니다. 드라마에서의 주몽은 초반에 <망나니>의 역할로 나옵니다. 바보같고, 덜떨어지고, 자신의 분수를 모르는 역할이죠. 오히려, 신화적인 설정으로 구성된 것은 <해모수>였습니다. <해모수>의 역할 구조가 바로 <고대적 영웅 구조>를 그대로 이어간 <멋진 영웅>의 표본으로 그려졌고, 유화가 그 해모수를 사모하는 구조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해모수 역시 신으로 묘사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고구려 유민을 구하려는 <민족적 영웅>으로서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킨 인물이었죠. 오히려 고대 설화구조에서의 신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신관인 <여미을>과 신녀들에게 모두 몰아줌으로서, 신화라는 고대적인 요소와 <인간적 영웅>이라는 현대적 구조를 잘 버무려 초반을 전개해 나가는 드라마였습니다. 이 신적인 부분과 인간적인 부분을 분리하여 드라마를 전개하는 진행 방식이 극적 요소를 더욱 더 빛나게 해주었다고 생각됩니다. 2. 게임의 법칙이 시작되다 주몽에서 초반 가장 카리스마 있었던 인물은 바로 해모수입니다. 해모수는 이미 처음부터 <영웅>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한 비운의 영웅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지요. 이 해모수의 <영웅>적 면모를 이어받은 인물이 바로 아들로 설정된 <주몽>입니다. 작가들은 여기서 <설화>라는 초자연적 극 전개를 <있을 법한 인간세계의 드라마>로 재현하려고 하나의 장치를 마련한 듯 싶습니다. 이것이 바로 <게임의 법칙>이었습니다.(정확한 극전개 용어는 모르는 관계로 그냥 편의상 이렇게 부르겠습니다.) <게임의 법칙>은 이미 드라마 전개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아시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만한 극의 전개 방식입니다. 이 방식은 요즘 드라마 전개에서 자주 등장하던데, <약한 주인공이 레벨 업>을 하면서 이야기의 스테이지를 한없이 넓혀가는 형태의 전개 방식입니다. 예로, 주몽은 처음에는 대소에게 상대도 되지 않는 레벨 1의 무력한 캐릭터였습니다. 망나니였고, 오리, 마리한테도 한방감인 캐릭터였죠. 작가들은 이 캐릭터를 <육성>시키면서 시청자들을 불러모으기 시작합니다. 주몽에게 해모수의 아들이라는 <명분>을 심어주면서, 레벨 업의 목표의식을 심어준 후, 처음에는 <무송>같은 저레벨의 사부로부터 무술을 전수받습니다. 렙업이 될 때마다 유화와 주변인물들이 주몽에게 <레벨에 맞는 정신교육>을 시켜줍니다. 문제는 초반의 대소가 주몽에게는 엄청난 고레벨이었다는 점입니다. 주몽은 대소에 맞게 속성으로 레벨 업을 해야 했는데, 그것은 바로 친부인 해모수를 만나서 소위 말하는 <경험치>를 몽땅 얻는 방법이었습니다. 해모수에게 검술을 배우는 것으로 모자라서 <해모수>가 주몽에게 <기>를 불어넣어주는 생뚱맞은 장면까지 나오더군요. 이 장면은 인간적인 부분으로 이끌어가던 주몽을 <신화적, 무협적> 캐릭터로 전락시킬 위험을 가진 전개였습니다. 그러나, 작가들은 주몽의 전개상 <신화적> 장면을 최대한 배제시킴으로서 주몽이 <리니지화>되는 것을 막아가면서 극을 전개합니다. 그리고 주몽이 레벨업이 될 때마다, 액션 게임처럼 스테이지가 변경됩니다. 어떤 한 사건을 해결하여 주인공이 성숙할 때마다 조금 더 어려운 시련을 주어 다음 단계로 이끌어가는 것이죠. 그리스 신화에서의 <헤라클래스>처럼 주인공은 항상 조금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합니다. 그리고 그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소금산>을 찾아 떠나거나, <다물활>을 찾아 떠나는 등 새로운 스테이지를 주어 시청자들을 만족시킵니다. 그리고 끝없는 주변인물과 아템이 쏟아집니다. 다물활과 강철검이라는 아템은 주몽 저레벨들의 선망의 아템입니다. 초반에 반지의 제왕의 나즈굴처럼 몰려다니던 한사군의 병사들은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실제 한사군의 철기병들이 강철검을 사용했다는 증거도 없지만, 그냥 있다고 치고 <아템>이 중요함을 강조한 장면들이 계속 나오죠. 초반의 이 무시무시한 아템발의 한사군을 몰아내기 위해 강조되는 것은 곧 무기였습니다. 주몽에서는 <강철검>이라는 것이 <의천도룡기>의 신검처럼 <극을 이끌어가는 매개체>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주몽에서 이유없이 잘나오는 사람은 연예인협회가 공식으로 밀어준다는 <이계인>씨입니다. 게임에서 <npc>의 역할을 이 모팔모가 하면서 끊임없이 중요한 <아템 공급>을 하며, 강철검, 철갑옷을 마련하게 되고, 막판에는 최고수 지존들만 입는다는 <한나라를 증가하는 철제무기와 갑옷>까지 공급받게 됩니다. 또 RPG게임에서나 나올 만한 오이, 마리, 협보라는 주인공을 돕는 캐릭, 그리고 그 이후 그를 돕는 수많은 캐릭들이 등장하여 극을 <고대적 대서사시>와 <현대적인 게임의 법칙> 속에서 융합시켜 나갑니다. 와우나 리니지에 나오는 <사제>캐릭인 <여미을>은 틈틈이 금와왕과 주몽을 치료까지 하더군요. 주몽이 시청률이 높은 이유는 요즘 시청자들이 이러한 <게임적 요소>에 이미 중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요소가 유치하다면 곧 싫증내고 돌아섰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몽이 성공한 이유는 이러한 게임적 요소를 유치하게 만들지 않기 위하여 <역사 쇼>를 한 덕분입니다. 항상 새로운 스테이지를 만들기 위하여 역사에서는 증명되지 않은 한사군과의 전쟁, 한나라에 조공하면서 한에 고개숙인 부여 등등이 그 역사적 요소입니다. 대소와 주몽의 갈등은 곧 친한파와 반한파의 갈등, 왕권과 신권의 갈등 등으로 첨예하게 대립되어 <설화>가 아닌 <사실>로 다가옵니다. 우리가 드라마 주몽을 볼 때 역사왜곡에 대한 이의 제기가 적은 것은 이러한 <드라마적 요소>가 <고대 서사구조>와 상통하면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수긍이 가기 때문이 아닐까요? 3. 알거리 많은 연개소문이 주몽에 비해 뒤진 이유는.... 드라마 연개소문은 제가 보기에도 참 작가가 많이 노력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하나 하나 사료를 꼼꼼히 읽고, 대사 하나하나에서도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려고 노력하였으며, 복식과 말투까지 세세히 신경쓴 흔적이 보입니다. 심지어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나 <백석이 김유신을 유인한 이야기> 등의 사료상 모든 이야기들을 다 다루고 있는 듯 보입니다. 어쩔 때는 제 블로그에 있는 고대사 사료를 연개소문이 다 다루었나 검토해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고증이 철저한 연개소문이 주몽보다 뒤쳐진 이유는 뭘까요? 전통사극에 대한 <시각적 인지도>가 변했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은 <영화나 게임>에 적응되어 빨리빨리 전개되는 극의 흐름과 순간순간 바뀌는 상황설정의 변화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주몽은 <1시간 또는 3-4시간> 동안 전개될 주제 1개가 명확합니다. 오늘은 <소금산 찾기>, 내일은 <현토군 공격> 등등 어떤 주제 일정에 따라 전개가 팍팍 흘러가고, 그 전개에 대한 명확한 결과를 보여주며, 또 다른 주제를 제시하여 흥미를 잃지 않게 만들어 줍니다. 반면, 연개소문은 철저한 고증과 함께 <독자에게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는 역할에 충실합니다. 전통 사극에서 그러하듯 <나레이션>도 종종 나옵니다. 어떤 목소리 좋은 성우분이 책을 읽어 주시지요... 저 개인적으로는 이런 연개소문식의 사극이 편하게 보기에 좋지만, 요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듯 합니다. 사극도 <다모> 같이 뭔가 특별한 개성이 있어야 <매니아>를 확보할 수 있고, 그 매니아가 팍팍 늘어가면 <국민 드라마>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 또 하나 <고대 사극>을 다룰 때에 중요한 점은 <고대 역사는 포스트모던>이라는 점입니다. 고대사는 <조선사>처럼 알려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작가의 상상력이 무한으로 발휘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 작가들은 너무 잘 알려진 이야기를 극으로 만드는 것보다 <대장금> <서동요> <주몽> <다모> <별순검> 과 같이 거의 알려진 사료가 없는 내용으로 극을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극들은 <조선사>를 다룬 일반 사극보다 크게 히트친 작품들이 많습니다. 이전에 조선사를 다룬 사극을 보면, 왕이 한마디 하면 주변에 양쪽으로 나열된 신하들이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다 말합니다. <폐하, 신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쩌구... 저쩌구...> 그걸로 2-3분 때웁니다. 주 시청층인 중, 고, 대학생들은 그 시간에 문자를 500타 이상 치며, 그 시간이면 스타크레프트 벙커링 1판이나, 4드론 러쉬가 끝날 시간입니다. 솔직히 요즘 세대가 영상 세대이며, 통신 세대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기에, 연개소문의 극 전개는 개인적으로는 정말 맘에 들지만, 실제 시청률 면에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연개소문은 전통 사극의 <대화>하는 습관을 그대로 따라간 면이 많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현대인들은 딱딱한 사극 보다는 <눈에 확 들어오고, 주인공의 영웅적 면모가 부러운> 사극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네요. 4. 포스트 모던적인 인식은 역사보다 문학이 역시 우위다 주몽을 보고 역사에서 <포스트모던적 사고>를 아무리 외쳐봐도 문학에 비해서는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생각했습니다. 보통 고대사는 <포스트모던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사실상 역사적 사료도 없고, 그 역사적 과거가 진짜 있었는지도 알 길이 없으며, 빠진 역사부분은 상상으로 채워 넣어야 하는 부분이 고대사입니다. 고대사를 볼 때 우리는 역사를 <발견>한다기 보다 <발명>한다는 포스트 모던적 시각을 갖기도 합니다. 하지만, 역사에서는 이런 <포스트 모던적 시각>을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주류학문>과는 거리가 먼 <재야학문>이 되고 맙니다. 아직도 역사는 <정확한 사료>를 가지고, <정확한 판단>을 해서, 가장 근거있는 <정확한 사실과 해석>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 역사적 기록은 그 역사 기록 자체가 저자의 <주관>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고대사의 바이블인 삼국사기 역시 <김부식과 편찬자 12인의 신라중심적 역사관>이 반영되어 저술되었고, 삼국유사 역시 <불교적 입장>이 반영될 수밖에 없었으며, 제왕운기와 동명왕편도 당시 <혼란한 고려시대상의 반영>이라는 측면이 강한 작품들입니다. 중국측 자료들은 거의 대부분 중국인의 시각에서 저술되어 잘 인용하지 않는 것도 많습니다. 원 사료가 주관적이고, 인용하는 현대 역사가들이 골라서 인용하는데, 정확한 사실과 해석이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주몽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아주 짧고 간결한 고대 저서들의 1줄, 2줄 또는 1페이지짜리 자료들로 해석하곤 합니다. 그 한줄 한줄을 밑줄 긋고, 그 당시 상황을 추론해가면서 고대사가 이루어집니다. 그 한줄 한줄 밑줄 그은 몇줄짜리, 몇장짜리 기록들을 가지고서, 역사학자들은 고대사의 진실을 말하곤 합니다. 정말 어려운 작업입니다. 자료가 너무 없기에, <역사적 상상>을 총동원하여 아마 <이럴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고 갖다 붙이고, 상상하고, 추론하고, 그 추론에 대한 정확도를 측정합니다. 그러나 문학에서는 그런 것들이 없습니다. 단 한 줄의 자료 - <장금이의 음식이 맛았었다>라는 기록 만으로도 50편짜리 대장금을 만들 수도 있고, <베어울프 이야기, 아더왕 이야기>라는 영국 설화를 가지고, <반지의 제왕, 드레곤의 전사, 어스시의 마법사>같은 대작들을 마음껏 만들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문학이 훨씬 매력적입니다. 주몽은 그러한 상상력의 결정판입니다. 실제 사료상의 내용과 많이 달라 역사왜곡이라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주몽에서의 역사왜곡은 극의 전개상 필요한 부분들 뿐이었다고 생각듭니다. 그리고, 사료에 없고, 기록도 불일치하는 부분에 대한 작가 나름대로의 해석과 극 전개는 왜곡이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이 듭니다. 왜곡이란 <사실>을 고의적으로 잘못 기술한 것이지 <있지도, 정확하지도 않은 자료의 변형>은 왜곡이라 보기 힘드니깐요. 문제는 주몽이라는 드라마가 해외로 수출된다는 점입니다. 해외에 수출될 때 문제점은 그 나라의 역사와 부합되지 않은 부분들이 <강펀치>를 맞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한사군과 주몽의 항쟁 부분에서 <사실이 아닌 많은 부분>, 철기사용에 관한 <시대상황에 맞지 않는 부분>들은 <중국, 대만> 등지에서는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설픈 왜곡은 대놓고 베짱으로 나가는 왜곡보다 더 문제될 수 있으니까요. 아예 주몽은 <현토, 임번, 진둔>군과의 동네 싸움이 아닌, 한나라와의 직접 대결구도로 가는 것이 옳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어짜피 드라마 전개상 한나라와의 갈등이라면, 일개 현토군과의 항쟁보다는 <중국황실>과의 일대 접전이 더 영웅적 면모를 부각시키지 않았을까요? 그 부분은 아쉽습니다. 주몽에서 막판 주몽-대소의 연합군 편성 외에는 <지속적으로 한나라 아래 있는 국가>라는 인식이 드라마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으니까요. 정말 대충적인 글이 되어 버렸군요. 써 놓고 보니 뭔말인지.... 원래는 주몽에 대한 <서사적 구조>를 분석하려는 글이었는데, 막 쓰다보니 게임의 법칙만 말하다가 끝나 버렸습니다. 그냥 감상문이 되어 버렸네요. 이제 그만.... |
이 글에 대한 참고사항
1. 이 글은 운영자의 주관적인 글입니다.
2. 펌글은 가능하나, 퍼가실 땐 댓글을 부탁드립니다.
<http://historia.tistory.com 역사전문블로그 히스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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