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고구려의 생활
고구려는 요동 동쪽 천리밖에 있다. 남쪽은 조선, 예맥과 동쪽은 옥저와 북쪽은 부여와 국경을 마주한다. 환도 아래 도읍하였는데, 면적은 사방 2천리가 되고 호수는 3만이다. 큰 산과 깊은 골짜기가 많고 넓은 들은 없다. 산골짜기에 살면서 산골짜기에 흐르는 물을 마신다. 좋은 논이 없어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도 식량이 넉넉하지 못하다. 동이의 옛 말에 따르면 고구려는 부여의 별종이라고 하는데, 말이나 풍속 따위는 부여와 많이 같지만 기질이나 옷차림이 다르다. 본디 연노부, 절노부, 순노부, 관노부, 계루부의 5족이 있었다. 처음에는 연노부에서 왕이 나왔으나 점점 약해져서 지금은 계루부가 왕위를 차지했다. 백성들은 노래와 춤을 좋아하여 나라 안 촌락마다 저물어 밤이 되면 남녀가 떼지어 모여서 서로 노래하며 유희를 즐긴다. 큰 창고는 없고 집집마다 조그만 창고가 있는데 이름을 부경이라고 한다. 길을 걸을 때는 모두 달음박질한다. 10월에 지내는 제천행사는 국중대회로 이름하여 동맹이라고 한다. 나라 동쪽에 큰 굴이 있는데, 수혈이라고 하며, 10월에 온 나라에서 크게 모여 수신을 맞이하여 나라 동쪽 위에 모시고 가서 제사를 지내는데, 나무로 만든 수신을 신의 좌석에 모신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고구려 - |
사료해석 : 7차 교과서에 제시되어 있는 고구려인의 모습의 증거가 되는 사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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