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과 역사 사이 : 이야기 크리스트교 (4)
길가메시 서사시
- 점토의 내용을 통일시키다. 수메르인의 최고 걸작으로 알려진 길가메시 서사시는 원래 하나의 작품이 아니랍니다. 이 이야기는 기원전 2000년경 쯤에 작성된 여러 이야기들의 줄거리를 길가메시라는 하나의 인물로 통일시킨 것이랍니다. 원래 기원전 7세기 니네베의 왕궁 서고에서 12개의 점토서판이 발굴되었는데, 1862년 조지 스미스라는 사람이 이 서판의 내용을 공포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답니다. 길가메시 서사시가 적혀있는 점판 원래 수메르의 문학 작품들은 대부분 신화를 토대로 한 것들이고, 수메르 자체가 도시국가의 연합이라는 단어이기 때문에 길가메시를 비롯한 점토판의 대부분 내용은 도시의 건설자와 국왕(국왕은 곧 신관)이 신과 어떤 관계인지를 설명하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이 중 길가메시는 수메르 6대 도시 중 우르크 시의 왕이었던 인물입니다. 앞장에서 말했듯이 수메르의 도시들은 도시의 세력분포에 따라 각각의 수호신들이 서열로 정해져 있었는데, 우르크 시는 거의 막내 항렬이었던 사랑과 질투의 여신 닌안나의 수호를 받는 도시입니다. 그리스 신화로 따지면 아테네나 아프로디테의 가호를 받는 도시 쯤 되는 것이지요. 자, 그럼 핵심적인 줄거리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 1장. 우르크시는 유프라테스 강가에 위치해 있었는데, 이 도시의 왕인 길가메시는 매우 용감했지만 백성들에게는 잔인한 왕이었습니다. 백성들이 포악한 길가메시를 혼내달라고 신들에게 기도를 올리자, 신들은 회의 끝에 길가메시를 혼내주려고 진흙으로 엔키두라는 인간을 만들어서 밀림에서 자라게 하였습니다. 길가메시는 이 이야기를 알게 되자, 엔키두를 유혹하기 위해 미녀를 밀림속으로 보냈습니다. 엔키두는 밀림에서 처음보는 미녀에게 반해서 맹수들과 훈련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놀았죠. 신들은 이 사실을 알고 엔키두를 다그쳤고, 엔키두는 미녀와 함께 길가메시를 혼내주기 위해 우르크시에 왔습니다. 마침내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대결을 하게 되었는데, 싸우는 도중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되어 둘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 2장. 친구가 된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난폭한 거인인 훔바바를 처치하려고 거대한 도끼를 만들고는 숲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길가메시는 자신이 영웅이라는 착각 속에서 신들에게 힘을 달라고 말합니다. 결국 두 주인공은 놀라운 능력으로 훔바바를 죽이고 우월감에 찬 영웅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무력을 과시하는 길가메시 - 3장. 우르크의 수호여신이자 금성과 사랑, 질투의 여신인 이슈탈(닌안나)은 위대한 영웅인 길가메시에게 청혼을 했는데, 길가메시는 오히려 여신을 조롱합니다. 화가난 이슈탈은 하늘의 왕소를 데려와 살인을 저질렀는데, 엔키두가 앞장서면서 두 영웅이 황소를 죽이고, 황소의 심장을 이슈탈의 남매인 태양신에게 바칩니다. (신들의 이름이 자주 바뀌는 이유는 그리스 신화가 로마 신화로 넘어가면서 신들의 이름이 제우스에서 쥬피터 등으로 바뀌는 것과 비슷합니다. 수메르의 신들은 이후 바빌로니아 왕국에서 이름이 바뀌기 때문이죠.) 화가 난 이슈탈은 변장을 하고 와서 길가메시를 저주하자 엔키두가 여신의 얼굴에 황소 다리를 던져 버렸습니다. 이것은 모든 신들을 놀라게 한 신성모독으로서, 신들은 회의 끝에 엔키두를 죽였습니다. 수메르인들은 죽은 자들이 가야할 저승이 있으며, 저승 사자가 길을 안내하는데 엔키두는 서서히 죽음의 길로 접어들었다. 길가메시는 영웅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으며, 이별의 아픔을 겪는다는 사실에 슬퍼합니다. - 4장. 길가메시는 엔키두의 죽음을 보고 인생의 허무함을 느껴서 영원한 생명을 찾겠다고 여행을 떠납니다.이 여행 도중 술만드는 여인도 만나고, 뱃사공도 만나면서 많은 모험을 하게 됩니다. 온갖 고생 끝에 영원한 생명의 비밀을 안다는 노인을 만나는데, 그의 이름은 <우트나피슈팀>이었습니다. 길가메시는 노인에게 영원한 생명을 찾는 방법을 물었지만, 우투나피슈팀은 영원한 것은 없으며, 신은 인간에게 삶과 죽음을 주었을 뿐이라고 잘라 말합니다. - 5장. 길가메시가 계속 영생을 알려달라고 하자, 노인은 자신이 겪은 홍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먼 옛날에 신들이 슈루파라는 고대도시를 대홍수로 멸망시켰는데, 자신은 신에게 미리 예언을 받아서 살아남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거대한 방주를 만들어서 여러 종류의 생물들을 태우고 홍수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서 간신히 살아남았다는 것이죠. 우트나피쉬팀이 정성을 다하여 제물을 바치자 신들은 노여움을 풀고 그에게 영생을 주었던 것입니다. - 6장. 우트나피쉬팀은 결국 영생에 대한 신들의 비밀 하나를 길가메시에게 알려줍니다. 길가메시는 노인이 알려준대로 바다 속으로 가서 인간을 젊게 만든다는 식물을 찾아내었습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목욕을 하던 중 뱀이 그 식물을 먹어 버렸습니다. 길가메시는 또 다시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자신의 도시인 우르크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영생을 찾지 않고, 살아있는 동안의 즐거움을 찾다가 죽게 됩니다. - 7장. 길가메시는 결국 인간의 운명이란 신의 영역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죽음을 피해갈 수 없으며, 삶과 죽음은 결국엔 모두 허무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르크시는 길가메시를 잃었지만 그의 이름은 영원한 전설이 되었고, 그는 인간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 잊혀진 설화 수메르가 멸망한 이후, 구약 성경의 이야기는 이천년의 세월을 훌쩍넘어 세인들에게 전달되었지만, 수메르의 설화는 천년의 세월동안 잊혀진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밝혀진 수메르의 전설들은 많은 논란을 가져왔습니다. 가장 먼저 논란이 된 부분은 역시 구약의 홍수 부분과 유사점이 많은 대홍수의 내용이었습니다. 우트나피쉬팀이라는 영생의 노인은 당대의 사람이 아니라 먼 옛날 홍수 속에서 살아남은 인물입니다. 즉, 수메르 문명 이전에 이미 대홍수가 있었고, 그 홍수 이후에 수메르 문명이 등장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이라는 자연 환경 속에서 이미 여러 차례의 홍수를 겪은 민족들이 살아남아 문명을 만들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대로, 이 설화에서는 고대 설화에서 보이는 영웅의 일대기가 완벽하지도 않습니다. 고구려의 주몽처럼 어릴 때의 기이한 탄생과 위기극복과정, 성공적인 왕으로서의 등극은 나타나 있지도 않습니다. 처음부터 길가메시는 왕이었고, 그는 점차 신을 얕잡아볼 정도로 위대한 영웅이라는 우월감에 사로 잡힌 인물입니다. 그런 인물이 엔키두의 죽음으로 인생의 허무함을 맛보게 되면서 결국 죽음앞에 인간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는 허무함을 남기게 됩니다. 그것을 극복하고자 신들의 권위를 조롱하고, 영생을 찾아 헤메지만 결국 얻은 것은 인간의 한계 뿐입니다. 신들 대신 노역을 해야 한다는 인간의 창조 자체부터, 죽음을 거역할 수도 없으며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이 바로 수메르인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자세를 나타내 줍니다. 다음 장에서는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이집트, 그리스의 신화 부분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서아시아의 신화이야기를 다 살펴보고 넘어가는 이유는, 이 신화에서 등장하는 명칭이나 맥락이 이후 구약에서 나타나는 이야기들과 유사한 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로마시대에 이르러 크리스트교의 수호자들은 몇세기에 걸쳐 이 신화적인 내용을 믿는 이단들과 논쟁을 벌이고, 다신교를 추방하면서 크리스트교만의 교리를 확립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게 되는데, 그 노력은 때로는 눈물겨운 종교수호운동으로, 때로는 이단에 대한 처절한 응징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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