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 공산주의 단체들을 이름으로 해석해보자!!!
북성회, 북풍회, 화요회, 흑도회, 정우회...
1919년. 우리 민족은 거국적인 3.1운동을 전개해서 일본과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1920년엔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출범하였고, 일제 역시 조선인들을 때려잡는 무단통치를 중지하고, 형식적이나마 문화통치를 약속하였습니다. 1919년 3월 중순. 농촌까지 퍼진 3.1운동 이런 분위기가 되자 공산주의 사상을 통해서 조선의 독립을 추구하려는 <공산주의자>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답니다. 특히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가 탄생하자, 조선의 사회주의자들은 러시아를 본받아 일본으로부터 해방하자는 움직임도 있었지요. 그래서인지 우후죽순 공산주의 단체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답니다. 그런데, 그 단체들의 이름을 지금 들어보면 유명한 무협지에나 나올 것같은 무시무시한 이름이 많았답니다. 한번 살펴볼까요? 먼저, 1921년 흑도회(黑濤會)!!! 그 이름으로 보자면 검은 물결이 밀려온다는 뜻이네요. 여기서 검은 물결이란 사회적으로 약자인 노동자들을 일컫는 말이랍니다. 빨간색이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붉은 피의 상징이라면, 검은 색은 무정부주의와 사회적 약자를 싱징하는 혼돈의 색이었습니다. 이 단체는 박열, 김약수 등 조선 고학생 동우회 회원들이 일본 무정부주의자들과 연대해서 만든 단체랍니다. 박열 선생과 김약수 선생 그것도 제국주의의 심장인 일본 본토 한가운데서 말이죠. 이 사람들은 일본에서 발생하는 조선인 노동자 집단학살에 반대하는 투쟁을 하면서, 일본-조선인 노동자들이 마르크스의 깃발아래 함께 모일 것을 꿈꾸었죠. 하지만, 이들이 꿈꾼 세상은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는 참된 세상이었습니다. 그 존엄성이 지켜지고, 그것을 가로막는 일본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마르크스이던 크로프트킨이던 이념은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했죠. 이념은 인간을 지키기 위한 도구일 뿐이니까요. 이렇게 인간의 존엄성과 실존에 대한 자각이 모든 것을 앞선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밖에서 보는 이들은 흑도회를 무정부주의자들이라고 규정한 것이랍니다.
박열이란 사람은 아예 <흑도>라는 기관지까지 발행하면서 무정부주의를 외쳤답니다. 그런데 이 무시무시한 무정부주의 및 폭력 혁명 단체는 내부 분열로 해체된답니다. 흑도회가 발행한 <흑도> 김약수 등 사회주의 이론과 마르크스를 동경하는 사람들은 박열이 주장하는 폭력 혁명 및 무정부주의가 과격하다고 생각하면서 따로 북성회(北星會)를 만들었어요. 이름이 왜 북성회냐구요? 북쪽의 별을 모으다... 즉 러시아를 따라가겠다는 거죠. 반면에 무정부주의가 조국 독립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박열은 흑도회, 흑우회 이전에 있었던 풍뢰회(風雷會)를 다시 만들어서 활동했답니다. 바람과 번개라는 조직 이름만 들어도 이 무정부주의자들의 성향이 어떤 것인지 짐작이 가죠? 이 무정부주의자들은 우파, 좌파, 사회주의자들 누가 비난하던지 혹은 일제가 탄압하던지 말던지 꿋꿋하게 무정부주의를 통한 독립활동을 전개했답니다. 그것도 제국주의의 심장인 일본에서 말이죠. 탄압이 거세지면 살짝 이름만 더 폼나게 바꿔주었죠. 불령사(不逞社), 흑풍회(黑風會) 등등 더욱 더 무시무시한 이름을 지어서 <인간 존엄성을 지키려는 우리의 노력은 멈추지 않는다>를 보여준 것입니다. 사실 독립운동가들이 무정부주의라고 말했던 박열의 노력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서구의 <실존주의 철학>을 앞서간 것으로 볼 수도 있답니다. 이 사람들은 어느 단체이던지 약간만 친일 경향이 보인다 싶으면 꿋꿋하게 저항적이고, 무정부주의적인 성향으로 공격했답니다. 노동단체이지만 친일파가 있었던 상애회(相愛會)와 충돌했고, 민족주의 범국민단체인 신간회(新幹會) 일본 지부마져도 <진정한 인권 보호과 독립의 정신이 없다>고 습격했답니다. 이들이 발행한 신문들도 이름이 무시무시하답니다. 기관지 이름이 호조운동(互助運動)이고, 신문 이름은 흑색신문(黑色新聞)이랍니다. 물론 무시무시한 전투적 기사들만 계속 내보냈으니 일본에 의해서 바로 발행 중지 당했겠죠? 반면 정직한 사회주의 운동을 표방한 북성회는 그나마 이름이 좀 점잖은 편이랍니다. 김약수 등 이 단체 사람들은 국내 사회주의 운동의 주도권을 먼저 잡으려는 생각으로 건설사(建設社)라는 단체를 만들었답니다. 일본이 보기엔 이 단체가 독립운동단체인지 말 그대로 건설 단체인지 헷갈릴 정도였죠. 하지만, 이건 사회주의 세력을 모으기 위한 잠깐의 위장술이었고 어느 정도 국내 본부가 완성되자 북풍회(北風會)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답니다. 북에서 부는 바람이라면.... 바로 러시아의 마르크스 주의겠죠?
반면, 3.1운동 직후 처음부터 국내에 터를 잡고 공산주의 운동을 했던 단체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바로... 무슨 단체인지 이름만으로는 성향을 알 수 없었던 화요회(火曜會)였습니다. 이 단체의 리더인 김재봉 외에도 역사적으로 유명한 박헌영, 임꺽정의 저자인 홍명희, 김찬, 김단야 등등 유명한 인물들이 포진한 최강의 공산주의 운동 단체였죠. 화요회의 맴버 : 김재봉, 홍명희, 김단야, 박헌영 그런데 이름은 왜 화요회일까요? 그건 마르크스의 생일이 화요일이기 때문에 만든 명칭이랍니다. 원래는 마르크스 사상을 연구하는 신사상 연구회였는데, 화요회라는 이름으로 바꾼 것이죠. 이 화요회는 소련의 공산주의를 신봉했기 때문에 중국 상해 공산당쪽 계열인 서울청년회와는 대립관계였답니다. 사실 1920년대 공산주의 3대 단체하면 북풍회, 화요회, 서울청년회였는데, 그럼 서울청년회는 뭐하는 단체였을까요? 원래 서울청년회는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같이 모여 만든 <서울파>라는 이름의 조직이었답니다. 서울파라고 하니깐 무슨 힘쓰는 조직같죠? 그래서인지 청년단체라는 걸 분명하게 하기 위해 서울청년회라고 이름을 지었지요. 하지만, 장덕수 등 일부 민족주의자들이 소련 코민테른에서 내려온 자금을 횡령하는 사건이 발생해서 사회주의자들 중심으로 단체로 변했답니다. 사기공산당 사건의 관련자들 : 이동휘, 장덕수, 최팔용 이동휘, 김철수 등을 통해 전해진 코민테른의 공산당 자금을 장덕수, 최팔용 등이 횡령한 사건으로 사회주의 단체가 된 서울파는 노동자, 농민들을 집중적으로 교육하면서 마르크스 주의의 위대함을 알리고, 민족주의자들이 농촌에 침투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했답니다. 그 결과로 1924년에는 조선청년총동맹, 고려공산동맹 등을 만들어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자, 문제는 지금까지 말한 단체들의 1925년 활동이었습니다. 북풍회는 한국-일본의 못사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모두 연대해서 혁명을 일으킨다는 범국제적인 마인드를 가진 독립운동단체였습니다. 반면, 화요회는 소련의 마르크스 주의를 신봉하면서도 조선의 실정에 맞추어 공산당 창립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단체였답니다. 그리고 서울청년회는 소련보다는 상해의 중국 공산당, 고려공산당과 연관이 많아서 화요회의 러시아파와 대립하는 관계였답니다. 하지만, 이 단체들은 조국 독립을 위해서 뭉쳐야만 했습니다. 우파나 민족주의와 협력은 고사하고, 공산주의자들끼리 대립하고 있으니 독립운동이 제대로 될리가 없었지요. 1925년 초반, 일본의 북성회는 일월회(日月會)라는 밝은 이름으로 바꾼 후 사회주의자들은 파벌을 버리고 모두 협력해서 독립운동을 할 것을 주장합니다. 그것에 영향을 받은 화요회와 북풍회는 서로의 생각을 조금씩 양보해서 1925년 제 1차 조선공산당을 창립했답니다. 문제는 서울청년회였습니다. 서울 청년회는 공산주의 운동보다 빈민이나 노동자를 돕기 위한 국제연대가 독립하는데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부갈등이 많았답니다. 결국 서울파는 분열되어서 일부는 일월회로 가서 조선공산당에 합류하게 된답니다. 이제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은 거창한 이름들을 다 버리고 하나의 단체로 모일 때가 되었습니다. 1926년 4월... 수많은 공산주의 단체들은 서로를 벗으로 인정하면서 정우회(政友會 : 바른 친구들)라는 이름으로 모였습니다. 그리고 여성 공산주의자들은 근우회(槿友會)라는 이름으로 뭉쳤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독립운동을 위해서 우파, 민족주의자, 좌파, 무정부주의자들이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에 공감했습니다. 그 결과 1926년. 우리 역사상 전무후무한 좌-우 연합 단체가 등장했답니다. 그것이 바로 새로운 근간을 알린다는 뜻의 신간회(新幹會)였던 것입니다.
- 신간회 창립 기사 : 좌우합작을 이룬 민족의 쾌거 - 신간회는 우리 역사상 유일하게 이념과 나이, 국내외를 떠나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모인 엄청난 단체였습니다. 신간회에 참여하지 못한 건 일제에 협력한 기회주의자들과 일부 서울청년회 극우파들 뿐이었죠. 그 규모도, 국내 지부 숫자도, 가입 회원도, 독립운동에 대한 영향력도 이전 어느 단체보다 막강했답니다.
그러나 신간회는 얼마가지 못해 사라졌습니다. 일제의 탄압에 의한 것이었나구요? 아닙니다. 신간회는 사회주의 계열이 스스로 이탈했답니다. 일제의 강압에 의해 <해산>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소>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민족주의 계열의 집행부가 절대 독립보다는 실력양성을 추구하자는 애매한 노선으로 돌아섰기 때문이죠. 반면, 러시아에서는 12월 코민테른 테제를 보내왔는데 그 내용은 기회주의자나 민족주의를 가장한 제국주의자를 멀리하라는 지침이었습니다. 거기에 중국에서는 국민당과 공산당의 국공합작이 깨지면서 공산주의는 나쁜 것이라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답니다. 결국 신간회는 이대로 해소하자는 안건을 표결로 정했고, 투표결과 신간회는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답니다. 우리 역사상 유일하게 사회주의 단체가 주도권을 잡았던 신간회. 그러나 신간회의 해소 이후 사회주의세력은 우리 근현대사(남한)에서 한번도 주도권을 잡아보지 못하였답니다. 이렇게 이름을 통해서 우리 근대사에서 공산주의 단체와 그 활동을 알아보았답니다. 일제의 눈치를 보지 않았던 열혈독립운동가들은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이름을 사용했으며, 일제의 눈을 피해 비밀리에 결사단체를 만든 단체들은 평범하고 애매한 이름을 사용했답니다. 하지만, 이름이 무섭고 파격적이라고 해서 꼭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단체라고 생각하지는 마세요.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이라고 해서 나쁘게 생각해서도 안된답니다. 그분들 역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방법으로 일제 저항운동을 했던 애국자분들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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