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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역사 사료와 데이터

신라 흥덕왕 대의 사치 금지령

 

흥덕왕 대 사치 금지

흥덕왕 즉위 9년, 태화(太和) 8년에 하교하여 이르기를 "사람은 위 아래가 있고 지위는 높고 낮음이 있어 칭호와 법식이 같지 아니하며 의복 또한 다르다. 그런데 세속이 점차 경박해져서 백성들이 다투어 사치와 호화를 일삼아 오직 외래품의 진기한 것만을 좋게 여기고 토산물은 오히려 야비하다 싫어하니, 신분에 따른 대우가 무너져 거의 참람함에 가깝고 풍속이 쇠퇴하기에까지 이르렀다. 이에 옛 법에 따라 하늘이 내린 도리를 펴고자 하노니, 참으로 혹시라도 일부러 범하는 자가 있을진댄 나라에 일정한 법도가 있음을 알려 국법에 따라 처벌할 것이다.

진골대등(眞骨大等)은 복두(按頭)를 임의로 쓰되 겉옷과 반소매 옷·바지에는 모두 계수금라(喬繡錦羅)를 금하며, 허리띠에는 연문백옥(硏文白玉)을 금한다. 가죽신에는 자주색 가죽의 사용을 금하고, 가죽신 띠에는 은문백옥(隱文白玉)을 금하며, 버선은 능(綾) 이하를 임의로 사용하고, 신발은 가죽·실·삼을 임의로 사용하라. 포(布)는 26승(升) 이하 짜리를 쓰라. 진골 여자는…" 하였다.

- 삼국사기 33권, 잡지 2, 색복  -

사료해석 :  신라 중대 이후 사치로운 생활문제로 흥덕왕 대 내려진 사치 금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7차 교과서 수록 지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