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퀴즈풀이/역사 사료와 데이터

사료로 본 성골과 진골의 의미 차이

 

성골과 진골의 의미

선덕여왕의 이름은 덕만(德曼)이다. 아버지는 진평왕(眞平王)이며 어머니는 마야부인(麻耶夫人) 김씨이다. 성골(聖骨) 남자가 없어진 까닭에 여왕이 즉위한 것이었다.

- 삼국유사 1권, 왕력 1, 선덕여왕 -

진덕여왕 대(代)까지를 '중고(中古)'라 하며 [왕의 신분은] 성골(聖骨)이다. 이후는 '하고(下古)'라 하는데 [왕의 신분은] 진골(眞骨)이다. - 삼국유사 1권, 왕력 1, 진덕여왕 -

국인(國人)이 이르기를, 시조(始祖) 혁거세(赫居世)부터 진덕왕(眞德王)까지 28왕은 성골이라 하고 무열왕(武烈王)부터 말왕(末王)에 이르기까지를 진골이라 한다.

- 삼국사기 5권, 신라본기 5, 진덕왕 8년 -

진덕여왕 때 까지를 중고라 하며 왕의 신분은 성골이다. 이후는 하고라 하는데 왕의 신분은 진골이다.

- 삼국유사 권 1, 왕력편, 진덕여왕 -

하교하여, 진골로서 직위를 가진 사람은 아홀(임금의 명을 받을 때 기록하는 판)을 들고 있도록 하였다.

- 삼국사기 권 5, 신라본기 5, 진덕왕 4년 4월 -

사료해석 : 성골과 진골에 대한 학계의 논의는 너무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보통 알려진 의견들을 정리해보면,

진골 - 내물왕 후손들이 혈연의식을 강화하면서 그들의 정통성을 높이기 위해 성립되었다라는 것이 다수설이므로, 6세기 냇물계에서 진골이 생긴 것이 아닌가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성골 - 진골들이 자신들의 권위 향상을 통하여 혈통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만들어낸 개념이 아닌가 추측할 수 있는데, 성골의 성립배경은 상당히 많은 설이 있습니다.

1. 성골은 왕위 계승자의 신분적 개념이다. - 현왕의 장자는 왕위 계승자이므로 성골로 본다는 설입니다. 그러나 왕자가 없을 경우 왕이 될 수 있는 왕의 동생들도 성골이 될 수 있고, 또 현왕 동생의 아들들이 왕위 계승을 할 때도 있으므로 이들도 때에 따라 성골로 볼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즉, 성골이라는 제도는 신라왕실의 친척들에게 주었던 <갈문왕>이란 칭호와 관계가 깊다는 설이죠.

2. 성골은 진골의 혈통적 개념이다. - 이 설은 부계와 모계가 모두 진골인 순수한 진골을 성골로 본다는 개념입니다. 또는 친족집단의 직계후손이 순수하므로 성골로 볼 수 있다는 설도 있습니다. 또는 신라 골품제상의 혼인원칙을 순수하게 지킨 진골을 성골로 본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3. 성골은 선덕여왕 직위 집단이다. - 성골을 선덕여왕기 여왕시대의 즉위집단으로 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