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릉의 매지권에 숨겨진 백제 역사
1. 무령왕릉의 역사적 의미 무령왕릉은 도굴되지 않은 유일한 백제의 왕릉입니다. 우리나라의 무덤은 서양과 달리, 굴식돌방무덤이나 구덩식 무덤이 많아 도굴이 상당히 쉽습니다. 그러나 무령왕릉은 그 자체로 보존된 유일한 왕릉으로 역사적 가치가 가장 큰 왕릉입니다. 보통 고대시대에는 왕의 무덤이 발견되었다고 해도 그 왕이 누구인지를 알기가 어렵습니다. 보통 왕의 무덤이라고 확정할 수 없는 무덤은 <총>이라고 부릅니다. 천마총 등이 대표적인 예이지요. 그러나 무령왕등은 비석에 백제무령왕과 왕비가 안정되어 있다는 말이 나옵니다. 2년 3개월 동안 임시 빈소에 모셔 두었다가 대묘(능)에 장사지낸 것으로 백제 역사를 알 수 있는 많은 유물과 비석 기록이 있습니다. 무령왕릉의 지석을 보면 무령왕을 사마왕이라고 표기해놓았습니다. 이것은 생년과 죽은 시기가 삼국사기에 나오는 무령왕과 일치하는데, 이것으로 삼국사기가 얼마나 정확한 기록이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2. 무령왕릉에 나오는 매지권의 내용 무령왕릉 지석 뒷면에는 무령왕이 토지신에게 돈 1만매를 주고 능을 만들 땅을 사게 되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토지매매 문서를 작성한 것이지요. 그리고 중국 돈인 오수전을 그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이것은 오늘날과 같은 토지 매매가 존재하였고, 이 당시 사유지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실제 고대에는 왕토사상에 기반하여 왕의 지배권은 모든 영토에 미치고, 모든 땅은 왕의 땅이라는 관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사회에서는 토지 사유개념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자료는 평강공주전에 보이는 민전매매자료와 함께 고대 사유 경제를 볼 수 있는 자료로 활용될 수 있겠네요. 또 토지신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풍수지리적인 내용이나 도교사상도 엿볼 수 있을 듯 합니다. 금동신발이 무덤에서 나온 것은 죽음의 세계로 가기 위한 준비를 뜻하는 것이고, 무령왕의 관을 일본산 금송나무로 만든 것은 일본과 당시 우호적이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무령왕 비석의 내용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이 62세 되는 계묘년 5월 7일 임진날에 돌아가셔서, 을사년 8월 12일 갑신날에 이르러 대묘에 예를 갖추어 안장하고 이와 같이 기록한다. . - 무령왕 지석 - 돈 1만닙, 다음의 건. 을사년 8월 12일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이 앞에 든 돈으로 토지신 토왕, 토백, 토부모, 연봉 2000석 이상의 여러 관료에게 나아가서 서쪽 땅을 사들여 묘을 만들었으니 문서를 만들어 남긴다. 현 율령에 따르지 않는다. - 무령왕비 지석 뒷면 - 사료해석 : 무령왕은 22담로를 설치하고 왕족을 파견하여 지방통제를 했다는 내용이 교과서에 나옵니다. 또 중국 양과 통교를 하였는데, 사료를 보면 그 관계에 대하여 이견이 있습니다. 영과 통교할 때 영동대장군이라는 관작을 쓴다는 것으로 중국에 사대를 하였다는 증거가 되면서, 또 사후에 죽을 때는 왕이 죽었을 때 사용하는 <붕>자를 씀으로서 주체적인 국왕임을 보이기도 합니다. 무령왕릉의 지석이 큰 가치를 갖는 것은 <왕릉>이기 때문입니다. 보통은 왕의 무덤인지 확인할 수 없어서 <무영총> <금관총> 등 총으로만 부르는데, <능>의 표현을 쓴다는 것은 지석에 왕의 무덤임을 알리는 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지석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지석이자, 삼국시대 왕릉 가운데 묻힌 사람이 누군지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무덤입니다. 이 지석을 통하여 만든 때를 분명히 알 수 있으므로 왕릉 유적과 유물 시대를 나누는 역사 시대 구분 자료가 되기도 합니다. 무령왕릉에는 매지권 개념의 토지 문제가 나옵니다. 즉, 무령왕이 토지신에게 화폐를 주고 토지를 매입하였다는 날짜, 금액, 거래일이 나옵니다. 즉, 화폐로 토지를 매입하였다는 점에서 토지 사유 관념이 나오며, 토지신에게 매입하였다는 점에서 고대 신앙이라던가 도교의 영향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현 율령에 따르지 않는다고 하니, 새로운 어떤 제도적 장치를 도입하여 이 매입한 토지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겠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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