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 전국 시대는 중국의 발전기였다!
1. 춘추 전국시대를 고깝게 보는 유교주의자들 전통적인 중국역사에서 춘추 전국시대는 부정적인 시대였습니다. 이것은 유교적 역사관이 기여한 바가 큰 것이었죠. 공자가 태어난 이 시기는 정말 공자 입장에서는 암흑기였습니다. 전쟁과 살육이 많았던 시기였기 때문이죠. 윤리에 기초한 사회확립을 주장한 공자의 입장에서는 요, 순 시대의 태평과 선양의 아름다움, 주나라의 봉건제도, 종법제도, 정전제도의 완벽함에 끌렸을 것입니다. 공자는 <춘추>라는 책에서 당시 시대를 암흑기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공자를 숭배하는 수많은 전통 유교사학자들도 춘추전국시대는 암흑기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과연 유교적 입장에서의 암흑기라는 말을 맞을까요? 역사는 항상 새로운 시대를 추구합니다. 새로운 시대로 나가기 위해서는 진통이 필요하죠. 그것이 발전이든, 혁명이든, 쿠테다든 어떤 형태로든 새로운 시대는 과도기를 겪게 됩니다. 서구 사회의 발전은 시민혁명이었고, 한국사회의 발전도 수많은 시민들의 항쟁과 산업화, 독재와 민주화의 열망이라는 얽힌 실타래를 풀면서 지금까지 온 것입니다. 춘추 전국시대는 절대 암흑기가 아닙니다. 실제 중국사회에서 가장 발전한 황금기 중의 하나로, 본격적인 철기 시대가 도래하면서 철기시대에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들이 중국사회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2. 철기시대로 접어들면서 나타는 사회 변화는 발전이었다. 춘추전국시대는 본격적인 철기시대입니다. 철기시대의 특징은 철제 무기와 철제 농기구의 사용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철제 무기는 정복 전쟁의 확대를 가져왔고, 철제 농기구는 농업혁명을 초래할 정도로 생산량의 증대를 가져옵니다. 따라서 봉건제도에 입각한 주대의 사회질서가 이 시대에 통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된 것입니다. 생산력의 발달은 각 지방 제후들의 영토확장 욕심을 부추기는 것이었고, 강력한 무기는 그것을 뒷받침합니다. 또, 당시 견융족의 침입으로 주가 낙양의 동주로 이동하면서, 제후들은 더 이상 주나라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주나라는 그냥 종가로서 받들기만 하면 딀 뿐, 제후들은 상호 영토확장을 위한 정복전에 나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복전에서는 많은 수의 병사가 필요한 관계로 종래 전투 양상도 전차전에서 보병전으로 바뀌게 됩니다. 수많은 보병 농민의 전쟁 활약이 중요시 되는 것이지요. 이 보병전에서 크게 활약한 것이 새롭게 지배층에 합류한 <사>계층입니다. 이들은 종래 귀족인 기병부대인 <대부>계층과 함께 전투에 적극 참여하여 말단 지배층으로 확고히 자리잡습니다. 이제 종법제도는 희식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주왕실은 무능력해졌습니다. 그나마 존왕양이 사상을 바탕으로 주왕실을 형식적으로나마지지했던 춘추시대가 끝나고 전국시대가 오면, 약육강식의 패자전으로 바뀌어 주왕실은 있으나 마나한 존재가 됩니다. 주왕실이 하는 일은 이제 정치, 군사적 업무가 아니라, 혈연관계에 있는 각 국을 위한 제사의식을 치루어 주는 것에 한정되죠. 3. 중국사회의 기본틀이 마련되다. 정치적인 측면 춘추전국시대는 여사적으로 <중국사회의 기본틀이 완성>되는 시기입니다. 이것은 봉건질서와 대읍-족읍-소읍으로 구성된 읍제국가체제를 근본적으로 탈피해 군, 현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국가로 나가는 시기로 정의내릴 수 있습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각 발전 양상을 살펴볼까요? 정치적인 측면에서 춘추전국시대는 주대 봉건질서가 점처 중앙집권적 군현제, 관료제 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입니다. 주왕실은 낙양근처의 직할지만 차지할 뿐 아무 힘도 없었고, 각 국의 제후들은 스스로 왕을 칭하면서 <멸국치현>을 주장합니다. 멸국치현이란 제후들이 가진 국가를 부수고, 그것에 자신 국가의 행정구역인 군, 현을 설치한다는 뜻입니다. 이로서 봉건국가체제는 막을 내리고 중앙집권국가시기로 사회가 발전하게 됩니다. 이것은 대부분 국가들이 취하는 보편적 발전과정과 상통합니다. 또, 봉건적 질서가 무너지면서 가부장적인 군신관계로 전환됩니다. 주왕실처럼 군주가 영토를 분봉하여 독립된 제후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군현을 설치함으로서 가신들을 철저하게 군주 밑에서 통제하게 되는 것이지요. 영역면에서는 읍제국가 단계인 도시국가가 전쟁 중 서로 병합되는 과정을 거쳐 영토국가로 발전합니다. 영토국가는 자신의 영토에 군현을 설치하고, 철기를 통한 확장사업을 계속 추진하는데 이 시기에 중국 영토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북의 라오허강 - 남의 양쯔강 이남의 영역이 확정되어 영토 확장이 가속되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사회적인 측면 사회적인 면을 볼까요? 이 당시 중국사회에서 가장 큰 사회적 사건은 중화민족이라는 개념의 <화>개념이 완성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각 국들이 통합되고, 그들이 뭉쳐 이민족을 몰아낸다는 공통의 개념이 확립되어 민족구성이 단일화 되었음을 말합니다. 따라서 민족과 문화가 동일하며, 중화는 다른 오랑캐와는 다른 우월성을 가졌다는 선민의식이 시작된 것이지요. 이 선민의식은 이후 중국 역사 2000년을 지배하는 중국인의 의식으로서 1000년간의 중화국가와 1000년간의 이민족 침입국가기간을 통해 더욱 더 견고하게 자리잡게 되는 중원의 원칙이 됩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철기시대의 영토확장 과정에서 사계층이 성장했다는 점입니다. <사>계층은 전쟁능력, 국정수행능력을 중시하는 혼란기에 부각되어 서민들이 지배층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특히, 각국은 부국강병을 위해 많은 제자백가들을 양성하였습니다. 즉, 사계층의 성장은 평민층의 성장과도 관련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 팔랑크스나 호민관계급으로 성장한 평민계급 아시죠? 비교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경제적인 측면 다음으로 경제적인 면을 보면, 토지 소유자의 변화가 눈에 띄는 시기입니다. 특히 철기 사용을 통하여 개간사업이 활발하였고, 사계층이 성장하면서 평민들의 토지 소유 증대와 농업생산력이 확대되었습니다. 이로서 토지를 가진 자영농민층의 성장은 곧, 국왕에게 많은 세금을 가져다 주었고, 이것은 국왕이 중앙집권을 이루고, 관료제와 상비군을 마련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또한 철제농기구와 우경의 확대로 경작지가 확대되자 양자강 이남의 개발도 시작되었습니다. 중국 문명이 황하에서 시작된 이유는 황하 유역은 석기로도 개발이 가능한 황토지대(황토 강가=황하)였지만, 양자강 유역은 철기가 아니면 개발이 불가능한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양자강의 개발은 중국이 남, 북부를 모두 농경지로 흡수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비옥하고 따뜻한 남부지역은 이후 중국 농업의 중심지가 됩니다. 또, 이러한 생산력 발전은 철로 만든 화폐가 등장하는 배경을 마련하니다. 당시 청동화폐와 명도전은 고조선과 삼한사회에도 전파된 유명한 물물 교환 수단이었습니다. 이것은 정기시장을 발달시켜 상업의 발달도 초래합니다. 당시에는 이러한 생산력 발전으로 <토지 사유화>가 진행되는데, 이 토지 사유화 현상은 공동경영을 상징하는 토지 점유에서, 토지의 분할점유로, 나중에는 개인적인 토지 사유로 확대 진행됩니다. 이 토지 사유를 극대화하여 지배층으로 성장하는 계급이 바로 한나라 시대의 <호족>입니다. 따라서 역사적인 용어로 사용할 때, <호족>이라는 용어는 지방색과 함께 토지소유자라는 부분이 꼭 따라다닙니다. 4. 춘추 전국시대의 역사적 의의 결국 이 짧은 글에서 주장하는 것은 춘추 전국시대가 절대 암흑기가 아닌 발전된 철기 문화 시기였다는 점입니다. 주대 봉건적 질서와 읍제국가체제가 무너지면서, 근본적인 사회 변화가 시작되었고 이것은 철기 사용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을 보편적 진행방향인 <중앙집권적 영토국가>시대로 나가게 됩니다. 그 역사적 사명을 이행한 것이 법가주의적 통치질서를 확립한 <진>나라의 통일입니다. 자, 그럼 이만 개관하고 춘추 전국시대의 이야기를 하나 하나 풀어볼까요? 혼란한 이 시대로 고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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