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보기

최후의 철의 여제 갈라 플라키디아, 그리고 로마의 멸망 로마의 마지막 재건노력 - 갈라 플라키디아, 그러고 로마의 멸망 1. 갈라-플라키디아와 아타울푸스 갈라 플라키다아(이후 갈라)는 알라리크에 의해 로마가 함락당하고, 로마의 문명이 폐허가 되었을 때, 인질로서 잡혀간 황제의 여동생이었습니다. 황제인 호노리우스는 로마가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자신이 안죽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닭을 키우고 놀았다고 전해집니다. 호노리우스는 자신의 생명보전을 위해 로마를 버리고 라벤나까지 수도를 옮긴 대단한 황제였거든요. 로마가 망하는 것은 그에게는 관심밖의 일이었습니다. 로마를 지켜줄 장군인 스틸리코를 맘에 안든다는 이유로 죽인 황제니, 그 무서움은 치밀하면서도 지독했습니다. 호노리우스 황제는 자신의 동생 갈라가 잡혀갔다는 사실보다는 황제의 동생을 야만족인 서고트가 잡아갔다.. 더보기
컴퓨터랑 4목 두기 게임 위에서 떨어지는 공을 연결시켜 가로, 세로, 또는 대각선으로 4개를 먼저 이으면 이깁니다 컴퓨터가 장난 아니가 잘할 겁니다. 머리를 잘 써서 이겨보세요. 더보기
단일민족은 무엇이며, 우리는 단일민족인가? 우리는 단일 민족인가? 1. 단일 민족이 뭐야? 한민족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단일민족이다. 우리는 모두 단군의 자손이다. 이 말에 대해서 혹시 의심을 가진 적이 있는가? 우리가 모두 단군의 후예라고 주장한 사료는 에서부터 비롯된다. 삼한 70여 소국도 모두 단군의 자손이라고 주장했으니까... 그러나 우리는 종종 의심하곤 한다. 뭐야? 수백번의 외침을 당해 서로간의 민족이 섞였을텐데... 고대에는 국가 경계가 없어서 민족간 이동이 많았을텐데... 고대인들 스스로가 민족이라는 개념이 있었을까?... 등등 의심은 끝이 없다. 또 한국성 중에서는 중국성씨도 많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가 대체 유일한 단일민족이라는 대책없는 자부심의 근원은 무엇인가? 일단 우리가.. 더보기
라벤나의 위치와 역사 라벤나 라벤나는 이탈리아 북동부 에밀리아로마냐 지방 라벤나 주의 주도입니다. 아드리아 해 근처에 있는데, 5세기에 호노리우스 황제가 수도를 옮기면서 서로마 제국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그 후 서로마제국은 멸망하였고, 6~8세기 동고트족의 이탈리아 왕국과 비잔틴 제국령 이탈리아의 수도가 된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입니다. 라벤나에 최초로 정착한 주민은 BC 1400년경 아퀼레이아에서 남하한 이탈리아 반도의 종족들로 추측되며 에트루리아인(人)과 갈리아인이 차례로 점령했었다는 말도 전해집니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이곳에서 약 5㎞ 떨어진 곳에 클라시스 항구를 건설했고 BC 1세기 경 라벤나는 로마의 중요한 해군기지였습니다. 402년 서로마 제국의 황제 호노리우스가 수도로 삼아 웅장한 기념물을 많이 세웠습니다... 더보기
테오도스우스 황제의 죽음과 로마의 멸망 테오도시우스의 죽음과 로마의 멸망 1. 테오도시우스 1세의 죽음과 로마의 변화 동로마의 테오도스우스황제는 테살로니카 폭동을 제대로 진압하고 이민족을 우대하고 이민족과 로마인이 평등하다는 기본 방침에 어긋나는 로마인들을 가차없이 죽였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황제권이 약했던 서로마의 발렌티니아누스는 이런 조화로운 정책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프랑크족 장군인 아르보가스트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아르보가스트의 반란은 종교문제 때문입니다. 아르보가스트는 이교도인 게르만이었고, 로마 카톨릭 교회가 아리우스파 등과 싸우은 교리 싸움을 지겹게 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기독교를 경멸하면서 이교도를 믿는 유게니우스를 황제로 옹립하려 했지요. 테오도시우스는 이러한 상황을 묵과할 수 없어서 서로마로 쳐들어갔습니다. .. 더보기
테오도시우스 1세의 기독교 국교화 정책의 이유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와 이민족의 로마 1. 테오도시우스 1세의 이민족 융합 정책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동쪽으로 수도를 옮긴 후 2개의 로마가 되었을 때, 동로마에서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로마의 영광을 재현하려고 했던 황제였습니다. 이당시 서로마 제국에서는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2세가 막스무스라는 반란군 때문에 동로마로 피신해 있었는데,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서로마 발렌티니아누스 2세의 여동생(갈라티아)에게 반하여 그녀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역적 막시무스를 치기 위해 서로마로 진군했지요. 당시 로마는 이미 고대 제국의 영광이 사라져가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동로마, 서로마는 모두 게르만 용병을 동원하여 공격과 수비를 하고 있던 시기였지요. 당시 동로마는 주력부대가 고트족 부대였습니다... 더보기
청동기의 사용과 한반도의 변화상을 알아봅시다. 청동기의 사용과 사회의 변화상을 알아보자. 1. 청동기 시대의 특징 청동기 시대는 금속을 도구로 사용한 최초의 시기입니다. 금속을 사용하면서 달라진 점은 이 당시가 잉여생산이 일어난 시기라는 점입니다. 즉, 벼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잉여생산이 발생하였고, 남는 생산력은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수 있는 계급을 발생시켰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생산에서 제외된 이들은 본격적으로 전쟁을 통한 정복사업에 들어갔고, 정복사업은 결국 지배층(군장, 족장층)과 피지배층(노예, 노비)계급의 분화를 촉진시키게됩니다. 우리는 보통 계층, 계급, 신분 등의 용어를 역사속에서 혼돈해서 씁니다. 청동기 시대는 계급사회입니다. 계급사회란, 생산수단을 가진 지배집단과 그렇지 못한 피지배집단을 나누는 용어로 마르크스 학자들이 주.. 더보기
환상의 커플 패러디 4탄) 나상실의 반란 - 고스트 수비대의 출동!!(역쉬 웃겨요..) 역쉬 네티즌의 힘은 위대하다... 이런걸 만드시다니.. 환상의 커플 화이팅!!! 더보기
탈레스와 철학의 기원 1. 탈레스는 누구인가? 탈레스(B C 640-545) : 밀레토스학파의 선두주자, 통상 철학의 시조로 숭상됨 탈레스는 기원전 6세기 무렵 살았던 그리스의 철학자입니다. 그는 이오니아의 밀레토스 사람으로서 밀레토스 학파의 창시자라고도 부르죠. 그는 최초의 자연철학자라고도 불립니다. 아리스토텔레서는 그를 철학의 아버지라고 까지 말하기도 하였죠. 탈레스의 사상은 그 사상 자체의 위대함이라기 보다는 서양철학사에 있어 학문적으로 철학이 무엇인가를 밝혀준 최초의 등불같은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위대한 사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주와 만물은 무엇으로 이루어졌을까를 최초로 연구한 사람이 바로 탈레스이죠. 탈레스는 일단 우주의 생성원리를 물에서 찾은 최초의 자연주의 철학자입니다. 2. 아르케는 곧 물이다. 그는.. 더보기
원시 시대의 마지막 단계 - 신석기 시대를 이야기해봅시다.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 1. 원시-선사-석기시대를 구분하자. 원시시대라는 용어는 인류가 고대 이전 공동체 생활을 하던 시대를 말합니다. 흔히 원시 공동체 사회라고 하며, 생산과 분배가 씨족 또는 부족의 공동체 소유로 규정되던 사회를 말합니다. 이 용어는 사회 발전단계상 원시-고대-중세... 등등 시대 구분과 관련된 용어입니다. 선사시대란, 역사시대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역사를 기록하기 전의 문자가 없는 시대를 말합니다. 즉, 어떤 시대이든지 아무런 기록이 없다면 무조건 선사시대인 셈이죠. 한반도에서는 최초의 기록이 에 나오기 때문에 우리 나라 역사에서 선사시대란 기원전 2세기까지를 말합니다. 그러나, 이미 그 당시에는 고조선이라는 국가가 있었으므로, 이 시기가 원시시대는 아닙니다. 즉, 한반도에서 원시시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