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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개혁

(근현대사 16장) 1894년 갑오개혁 - 1차 개혁의 내용 1894년 갑오개혁 - 1차 개혁의 내용 1. 갑오개혁은 여러 이권이 맞물려 시작되었다. 보통 갑오개혁을 이야기할 때, 자주적이었는가, 의세의존적이었는가를 많이 이야기 합니다. 1차 갑오개혁은 일본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비교적 조선 관리들에 의해 차분히 진행되었습니다. 1차 개혁으로 조선의 근대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은 평가할 만 합니다. 1차 개혁에서 일본의 역할이 왜 축소되었는지는 지난 파트에서 설명하였습니다. 부연하지면, 동학농민운동이 전주화약으로 평화롭게 끝나가는 것을 일본이 방관하지 않았고, 일본은 조선의 개혁을 강요하였습니다. 그러나, 청과 조선이 그것을 적극 반대하였기 때문에 일본은 무력으로 개혁을 강요하였습니다. 조선의 경복궁을 점령하고 청에게 군사적인 협박을 시작한 것이죠. 그러나, .. 더보기
(근현대사 15장) 갑오개혁(1894)의 추진배경 갑오개혁(1894)의 추진배경 1. 1894년... 왜 개혁이 필요했는가? 오늘부터 전개할 이야기는 갑오개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갑오개혁은 1894년에 1, 2차 개혁을 하였고, 그 다음해인 을미년에 3차로 을미개혁을 하였습니다. 이 개혁으로 조선은 서구식 근대화를 이루게 되었지만, 부작용도 많았습니다. 그럼 이 개혁이 이루어진 배경을 한번 볼까요? 갑오개혁은 우리 정부가 주체적으로 추진했다는 과 일본에 의해 강제로 추진했다는 의 시각이 있습니다. 이번 나중에 다루고 이번 장에서는 이 2가지를 적절히 다루어 보도록 하죠. 갑오개혁은 조선인 스스로 개혁을 해야 한다는 의 개혁의지가 1894년 반영되었다는 점이 일단 중요합니다. 그동안 조선은 개혁을 추진하려는 세력과 그것을 막으려는 보수세력이 혼재해 있었.. 더보기
(근현대사 13장) 동학농민운동 3 - 동학농민들의 2차 봉기 동학농민운동 3 - 동학농민들의 2차 봉기 1. 1차 농민전쟁의 결과 자, 이제 농민들의 1차 봉기는 끝났습니다. 농민들은 를 구성하여, 스스로 자치를 시작하였습니다. 정부도 농민들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하고 개혁을 약속하였습니다. 정부가 개혁을 위해 마련한 기구가 바로 이었죠. 그런데, 여기서 은근히 헷갈려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1894년에 일어난 사건으로, 동학농민운동, 청일전쟁, 갑오개혁 중 어느 것이 먼저냐고 물어보면 다들 고민을 하더군요.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답이 없으니까요. 동학농민운동은 1, 2차로 나눠야만 다른 사건들과의 개연성이 생깁니다. 교과서에서는 이 부분을 나누어 놓지 않았기 때문에 헷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에 대한 불신과 탐관오리 숙청, 부당한 조세제도 혁파.. 더보기
(한토막 역사 13화) 개항기 때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돈이 쓰였을까? (한토막 역사 13화) 개항기 때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돈이 쓰였을까? 1. 조선 후기에 어떤 돈을 쓰고 있었나?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한반도에서도 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럼 조선 후기 이후 개항기까지 어떤 돈들이 주로 쓰였을까요? 우리나라에서 국가가 주도하여 화폐가 쓰인 것은 고려 성종기부터입니다. 중앙집권이 이루어지고, 최승로의 건의로 유교정치가 본격적으로 실시된 고려 초기초기부터죠. 이 때의 화폐란, 국가가 세금을 효율적으로 걷어 행정적으로 사용하기 쉽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화폐유통을 권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제 백성들은 돈의 효용성을 몰랐지요. 고려 시대 유명한 스님인 의천도 화폐 유통이 국가경제와 사원경제를 원할하게 하여 결과적으로는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더보기
근현대사 12장) 동학농민운동 2부 - 1894년 1차 동학농민운동의 전개 동학농민운동 2 - 1894년의 동학농민운동의 전개 1. 동학농민운동의 전개 오늘 적을 내용은 동학에 대한 2번째 이야기로 1894년,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894년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럼 한번 출발해 볼까요? 지난 시간에 이야기했듯이 동학은 1850년대 후반부터 그 세력을 키워왔습니다. 최제우가 혹세무민이라는 성리학적 명분에 의해 죽고난 이후 교조신원운동을 전개하면서 동학은 그 힘을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이필제의 난 등을 겪으면서 동학은 점차 사회, 정치 운동까지 가담하게 되었습니다. 1870년대의 동학은 흥선대원군 대신 친일적인 성향의 민씨 정권이 들어서면서 반봉건 운동을 일으킬 명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학은 1862년 임술농민봉기 등 정부에 의해 크게 진압당해본 경험을 알고 있.. 더보기
(한국근현대사 5) 1860년대 이후 계속된 위정척사 운동의 흐름 1860년대 이후 위정척사는 계속되었다. 1. 위정척사란? 흥선대원군이 18363년부터 집권하여 안동김씨의 노론 세도 가문을 축출한지 10년... 1873년 민씨가 정권을 잡으면서 대원군이 실각하고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개화정책을 실시합니다. 이전 포스트에서 설명했듯이 개화정책은 강화도조약을 맺으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되었고, 조선책략이 유입되면서 구체적으로 실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화 사상을 우리 전통 유교주의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당연히 반대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반대한 이유는 아무런 근거없이 서양을 싫어해서도, 조선 왕조를 지탱하는 신분질서의 하나인 성리학을 수호하기 위해서만도 아니였습니다. 물론 통상요구가 조선의 신분제와 사회질서의 근간을 흔들기는 하지만, 조선의 유학자들은 그것을 .. 더보기
한국 근대의 시작인 개화기에 대한 개관 한국 근대의 시작인 개화기에 대한 개관 오늘부터 다룰 부분은 한국 근현대사입니다. 그 중 맨 처음으로 개화기의 중요한 역사적 흐름과 사건을 주제별로 묶어서 포스팅 하보도록 하죠. 오늘은 그 첫 번째로, 1860~1900년대까지 개화기의 전반적 흐름을 개관하는 포스트를 작성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1. 1870~80년대 한국사의 주된 흐름 1880년대의 한국사를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는 키워드는 과 함께 시작된 입니다. 한국사회에서 1850년대는 세도정치의 여파로 각종 농민봉기가 일어나고, 사회모순이 극에 달해있던 시기였습니다. 또 밖으로는 서양의 이양선이 출몰하여 통상을 요구하는 한편, 중국, 일본, 러시아와의 관계가 서구의 아시아 진출로 인하여 또 다시 재정립되는 시기였습니다. 186.. 더보기
홍범 14조 및 조항 해석 홍범 14조 ① 청국에 의존하는 생각을 끊고 자주독립의 기초를 세운다. ② 왕실전범(王室典範)을 작성하여 대통(大統)의 계승과 종실(宗室) ·척신(戚臣)의 구별을 밝힌다. ③ 국왕이 정전에 나아가 정사를 친히 각 대신에게 물어 처리하되, 왕후 ·비빈 ·종실 및 척신이 간여함을 용납치 아니한다. ④ 왕실사무와 국정사무를 분리하여 서로 혼동하지 않는다. ⑤ 의정부와 각 아문(衙門)의 직무권한의 한계를 명백히 규정한다. ⑥ 부세(賦稅)는 모두 법령으로 정하고 명목을 더하여 거두지 못한다. ⑦ 조세부과와 징수 및 경비지출은 모두 탁지아문(度支衙門)에서 관장한다. ⑧ 왕실은 솔선하여 경비를 절약해서 각 아문과 지방관의 모범이 되게 한다. ⑨ 왕실과 각 관부(官府)에서 사용하는 경비는 l년간의 예산을 세워 재정의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