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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다

(블로그 이전_보호글처리) 카노사의 굴욕 사건을 조종한 한 여인의 이야기 카노사의 굴욕을 조종한 한 여인의 이야기 NO. 005 역사를 뒤흔든 마틸다의 복수 이야기 *** 배경 : 11세기 중세 서유럽(1077년 : 카노사의 굴욕) *** 이 이야기는 종교적 영향력이 강했던 11세기를 살아가면서 을 기획한 마틸다라는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세계사 교과서에서 황제 하인리히 4세와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의 이야기만을 배웁니다. 그리고, 교황이 강했는지, 황제가 강했는지를 생각하보는 정도에서 이야기를 끝내곤 하죠. 하지만, 을 이끈 또 한명의 영웅은 따로 있답니다. 카노사의 굴욕 : 하인리히와 마틸데 우리가 교과서에서 보아서 알고 있는 카노사의 굴욕 사진의 의문점. 젊은 황제가 무릎을 꿇고 바라보는 사람은 남자 교황이 아닌 이다. 이 여인은 누구일까? 흔히 중세 서유럽은 봉건.. 더보기
매일매일 역사퀴즈 (2010. 1. 14. 목요일) - 범위 : 세계사 일반 \n"); c.write("\n"); c.write("평가 채점 결과\n"); c.write("\n"); c.write(" 문제 수 : 5\n"); c.write(" 채점하지 못 한 문제 수 : 0\n"); c.write(" 정답 수 : " + CorrectNumber + "\n"); c.write(" 오답 수 : " + IncorrectNumber + "\n"); c.write(" 점수 : " + TotalScore + " 점\n"); c.write("\n"); c.write("문제 해설 보기\n"); c.write("\n"); if( mail_address == "" ) c.write(" 문제지에 해설을 표시합니다.\n"); else c.write(" 결과를 전송한 후, 문제지에 해설을 표시합니다.\.. 더보기
서임권 투쟁 4 - 서임권 문제 총정리 서임권 투쟁 4장 - 서임권 문제 총정리 지난 장에서 서임권 문제의 배경은 수도원 개혁운동으로, 서임권 문제의 핵심 사안은 토스카나 가문을 중심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마지막 장에서는 서임권 문제를 학문적 입장에서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서임권 문제의 배경 서임권 문제의 배경은 성직자 임명권이 에게 넘어간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세속 제후가 서임권을 가진 것은 중세 전체의 사회적 변화에서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즉, 노르만 등의 이민족 침입으로 혼란해진 서유럽은 라는 유럽 중세 특유의 제도를 성립시켰고, 봉건제도에서는 등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영지 지배체제(지방분권체제)가 일반적이었습니다. 따라서 각급 하부단위 교회는 봉건제도의 장원안에 설립된 관계로, 영주의 지배체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 더보기
서임권 투쟁 2 - 그레고리우스 7세의 승리, 하인리히 4세의 복수, 마틸다의 재복수 하인리히 4세와 철의 여인 마틸다 - 그들의 복수와 재복수 1. 하인리히 4세의 복수 하인리히 4세는 카노사의 굴욕을 새로운 기회로 생각했습니다. 카노사의 굴욕은 육체적 치욕일 뿐, 히인리히가 황제권을 잃은 것도 아니였습니다. 그리고 한번 머리숙여 빌어서 교황에게 파문당한 것도 회복되었으니까요. 황제를 견제하던 영주들도 교황이 황제를 (비록 치욕적인 굴욕이었지만) 용서함으로서 더 이상 황제를 몰아붙일 구실을 잃었습니다. 훗날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황제 하인리히 4세를 용서했다는 사실을 뼈져리게 후회하게 됩니다. 독일 제후들은 하인리히 4세를 폐위하려고 했지만, 교황이 황제를 용서함으로서 우왕좌왕하게 되었고, 독일은 서로 죽이고 죽이는 내전상태에 빠졌습니다. 교황은 후회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하인리.. 더보기
서임권 투쟁 1 - 카노사의 굴욕, 그 전말과 토스카나 가문 중세 서임권 투쟁과 카노사의 굴욕, 그리고 토스카나 가문 1. 로마의 몰락과 중세의 시작 로마가 몰락하면서 고대는 끝나고 중세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점차 옛 로마의 영광을 잊어가기 시작합니다. 2백만이 넘는 고대 초호화 도시 로마는 게르만과 노르만의 침입 이후 인구 2만에 불과한 추억의 도시로 전락하기 시작했습니다. 현대의 역사가인 프로카치는 로마의 역사를 이렇게 말합니다. 그 동안의 경위를 설명하자면 복잡하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드높이 쌓아올렸던 것들이 끝도 없이 무너져서 소멸해갔다. 로마 제정 말기의 엄청난 경제, 사회적 위기와 이민족의 침입, 그리고 6세기 고트족과 동로마 제국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 이탈리아를 망가뜨렸다. 그리고 롬바르드족이 이탈리아 반도에 남하하여 정착하였다. 이러한.. 더보기
중세 독일의 발전 3편 - 12c 호엔쉬타우펜 왕조 ~ 15세기 합스부르크왕조 중세 독일의 발전 3편 - 12c 호엔쉬타우펜 왕조 ~ 15세기 합스부르크왕조 중세 독일사 1,2편에서 다루었던 핵심적인 내용은 작센제후의 신성로마제국이었습니다. 오토 1세의 신성로마제국은 보편적인 황제권과 독일 국민의 국왕권이라는 2중적인 성격을 가지고, 독일내 통일국가 + 로마제국의 세계국가를 동시에 실현항려고 하였죠. 그 결과 교황권과 크게 충돌하게 되었고, 결국 카노샤의 굴욕, 보름스 협약 등을 거치면서 교황권과 어느 정도 타협하게 됩니다. 교황권과의 대대적인 마찰이 끝난 후 신성로마제국은 이제 국내 문제를 해결하는 단계로 접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국의 국내문제라는 것도, 항상 교황청이 있는 와 연관이 되는 관계로, 역사가 평탄치만은 않습니다. 그럼 12-13세기의 신성로마제국의 왕들인 프리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