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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역사 사료와 데이터

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수서 동이전 왜국

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수서 동이전 왜국

  왜국은 백제와 신라 동남쪽으로 바다와 육지로 삼천 리를 간 큰 바다 가운데에 있는데, 모두 산을 의지하고 산다. 위나라 때 중국에 사신을 보내 서로 통하고 지낸 나라가 도합 삼십여 나라가 되는데, 이들은 모두 제각각 왕이라 일컬은다.

  이 사람들은 잇수를 알지 못하고 다만 날수로 따진다. 그 나라 국경은 동쪽과 서쪽의 거리는 다섯 달을 가야 하고, 남쪽과 북쪽의 거리는 석 달이 걸린다. 이 모든 나라는 모두 바다에 닿아 있고, 그 곳의 지형은 동쪽이 높고 서쪽은 낮은데, 야미퇴에 도읍을 정하고 있으니 이곳은 위지에 말한 야마대이다.

  옛날에는 말하기를, 이 곳은 낙랑군 경계와 대방군과의 거리가 모두 일만이천 리가 된다고 했다. 회계 동쪽에 있어 담이와 서로 가깝다.

  한나라 광무제 때 사신을 보내서 조공을 바치고 자칭 대부라고 일컬었다. 안제 때에는 또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치고 왜노국이라고 했다.

  환제와 영제 사이에는 그 나라가 크게 어지러워 서로 번갈아 공격해서 여러 해동안 임금이 없더니 한 여자가 이름을 비미호라 하고 능히 귀신의 도를 가지고 모든 사람들 혹하게 하므로 이에 온 나라 사람들이 그를 세워 왕을 삼았다. 그에게는 남자 동생 하나가 있어 비미호를 도와서 나라를 다스렸다. 또 왕에게는 부리는 종이 천 명이나 있건만 그의 얼굴을 본 사람은 없고, 오직 남자 두 사람이 왕의 음식 심부름을 하고 전하는 말을 밖으로 통해 내곤 했다. 그 왕은 궁실과 누관과 성책이 있는데, 군사들이 모두 병기를 들고 지키며, 그 법이 몹시 엄하다. 이들은 위나라 때로부터 제나라, 양나라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중국과 통해 왔다.

  개황 이십년에 왜왕이 성은 아매요 자는 다리사북고요 호는 아배계미라고 하는데, 사신을 보내 대궐에 들어왔다. 이에 재가 유사를 시켜 그 지방 풍속을 물었더니 그 사신을 말하기를, [왜왕은 하늘로 형을 삼고, 해로 아우를 삼아서 하늘이 밝기도 전에 나와서 정치를 하고 꿇어 앉았다가 해가 뜬 뒤에 비로소 일을 처리합니다] 했다. 고조가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이것은 크게 의리에 어긋나는 말이다] 하고 이에 영을 내려 고치게 했다.

  왜왕의 아내는 이름을 계미라 하고 후궁에는 육,칠백 명이 있으며, 태자의 이름은 화가미다불리라고 했다. 그 곳에는 성곽이 없고 내관은 십이등급이 있다. 그 첫째는 대덕이요, 다음은 차덕이요, 또 그 다음은 대인이요, 그 다음은 소인이다.

  다시 그 다음은 대의요, 그 다음은 소의이며, 다음은 대례요, 그 다음은 소례이다. 다음은 대지요, 그 다음은 소지이며, 또 그 다음은 대신이요, 다음은 소신이다.

  인원은 일정한 수효가 없고, 군니 일백이십명이 있는데 중국의 목재와 같아서 팔십호마다 이니익 하나씩을 두었으니 이것은 지금의 이장과 같아서 이니익 열 명에 군니 하나씩을 소속시킨다. 그들의 옷 입는 것을 보면 남자는 저고리와 치마를 입는데, 그 소매가 작고도 좁다. 신은 짚신 모양과 같고, 신 위에 옻을 칠해서 다리에 잡아 맨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맨발로 다니는 자가 많다.

  금이나 은으로 장식을 하지 못하는 때문에 때로 넓은 포목을 그대로 두르고 폭 끝을 서로 연하기만 하고 꿰매지는 않는다.

  머리에는 역시 관을 쓰지 않고 다만 머리를 양쪽 귀 위에 늘어뜨린다. 그러다가 수나라 때에 이르러 그들의 왕이 비로소 관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비단으로 꾸미고 금과 은으로 꽃 모양을 만들어 장식을 했다.

  부인은 머리를 뒤로 땋아 내리고 역시 저고리와 치마를 입는데, 치마 끝에는 모두 선을 둘렀다.

  대나무를 깎아서 빗을 만들고 풀을 꺾어서 방석을 만드는데, 여러 가지 짐승의 가죽을 그 위에 씌워 모양을 낸다. 활과 화살 그리고 칼과 도끼 등의 병기가 있고, 칠피로 갑옷을 만들고 벼로 화살촉을 만든다.

  이렇게 병기는 있지만 그들은 서로 전쟁을 하는 일은 없다. 그 왕이 조회를 할 때는 반드시 의장들을 벌려 놓고 그 나라의 음악을 올린다.

  호수는 십만이나 된다. 그 풍속은 사람을 죽였거나 강도를 하거나 간음한 자는 모두 죽이고 도둑질을 한 자는 도둑질한 물건만큼 빼앗으며, 만일 재산이 없는 자는 이 식구들을 데려다가 종을 삼는다. 그리고 그 나머지는 죄의 경하고 중한 데 따라 혹은 귀양도 보내고 혹은 매를 때린다.

  무슨 죄를 범했거나 옥사나 소송이 있을 때 죄를 자복하지 않는 자는 나무로 그 무릎을 누르기도 하고 혹은 강한 활을 펴가지고 그 줄로 목을 톱질하기도 한다. 또는 혹 조그만 돌을 끓는 물속에 넣어 두었다가 말을 비뚜로 하는 자의 손을 지지기도 하고, 혹은 항아리 속에 뱀을 넣어 두었다가 이것을 잡아내어 거짓말 하는 자의 손을 물리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못 욕심이 없고 조용해서 다투거나 소송하는 일이 드물고 도둑질 하는 자가 적다.

  음악에는 오현금과 피리가 있다. 남자나 여자가 어깨에 먹물을 넣고 얼굴이나 몸뚱이에 먹물로 글씨와 그림을 넣는 자가 많다. 그리고 물 속에 들어가 생선을 잡는다.

  글자가 없고 오직 나무에 무엇을 새기거나 노끈을 맺어두어 표를 한다. 불법을 공경하여 백제에 가서 불경을 구해 간 뒤로 비로소 문자가 생겼다. 점 치는 것을 알고 더우기 무당을 믿었다. 해마다 정월 초하룻날이면 반드시 활 쏘는 놀이를 하고 술을 마신다.

  그 나머지 풍속이나 행사는 대략 중국과 같다. 바둑과 장기, 그리고 악삭, 저포놀이를 좋아한다. 기후는 따뜻하여 풀과 나무가 겨울철에도 푸르다. 또 토지는 기름지며 바다가 많고 육지가 적다. 조그만 고리를 가마오지의 목에 걸어 주고, 물 속에 들어가서 물고기를 잡게 하면 하루에 백여 마리씩 잡아낸다.

  그 나라 풍속에는 밥상이나 그릇이 없고 솔고갱이 잎에 음식을 담아서 손으로 집어 먹는다.

  성질이 질박하고 곧아서 아담한 풍도가 있다. 여자가 많고 남자가 적으며 혼인하는 데는 같은 성끼리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남녀끼리 서로 좋아만 하면 이내 혼인을 한다. 혼인할 때 여자가 남자의 집에 가서 반드시 먼저 개 앞에 꿇어 앉았다가 그 남편될 남자와 만나본다. 남의 부인이 되면 음란한 짓을 하거나 질투하지 않는다.

  사람이 죽으면 관곽 속에 염습을 해서 넣고 친척들과 손들이 시체 앞에 모여서 노래하고 춤 추며, 죽은 사람의 처자나 형제는 흰 무명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다. 귀한 사람은 삼년 동안 밖에 빈소를 만들어 두어 두고, 보통 서인들은 아무 때나 날짜를 가려서 땅에 묻는다. 장사를 지낼 때는 시체를 배 위에 놓아 두고, 육지로 끌어 올리기도 하고, 혹은 조그만 가마에 실어서 올리기도 한다.

  아소산이란 산이 있는데, 아무 까닭 없이 불이 타 올라 하늘에 닿는다. 이것을 이상하게 여겨서 기도 드리고 제사를 지낸다. 여의보주라는 것이 있는데, 그 빛은 푸르고 크기는 계란만한 것이 밤이면 광채가 난다고 한다. 이것은 물고기의 눈 정기라고 한다.

  신라, 백제는 모두 왜국을 대국으로 여긴다. 이 나라에는 진기한 물건이 많이 나기 때문에 모두 공경하고 우러러 보고, 또 항상 사신을 토앟여 왕래하고 있다. 대업 삼년에 그 왕 다리사북고가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쳤다.

  이 때 그 사신이 말하기를, [듣자오니 해서의 보살천자가 불법을 중흥한다 하옵기로 저희들을 보내서 조공을 바치게 하옵고, 또 겸해서 중 수십명이 와서 불법을 배우려 합니다] 했다.

  그들의 국서에 보면, [해가 나는 곳의 천자가 해서 떨어지는 곳의 천자에게 글을 보내는데 아무 탈도 없는가...]하는 구절이 있었다. 제가 이것을 보고 기뻐하지 않아 홍로경에게 일러 말하기를 [오랑캐의 글이 무례하기 짝이 없으니 다시는 내게 올리지 말라] 했다.

  그 이듬해에 제가 문림왕 배청을 왜국에 사신으로 보냈는데, 이 일행은 백제를 지나서 죽도에 이르러 남쪽으로 담라국을 바라고 가다가 도사마국을 지나서 큰 바다 가운데로 들어갔다. 다시 동쪽으로 일지국에 이르고, 또 죽사국에 이르며, 다시 동쪽으로 진왕국에 이르렀다.

  그 지방 사람들은 중국 사람과 같아서 이곳을 이주라고 하는데, 이곳은 분명치가 못하다. 또 다시 십여 나라를 지나서 해안에 이르는데 죽사국으로부터 동쪽은 모두 왜국에 부속되어 있었다.

  이 때 왜왕이 소덕 아배대를 보내서 수백 명을 제리고 의장을 갖추고 북치고 피리 불면서 와서 일행을 맞았다. 그리고 그 뒤 십일이 지나자 또 대례 가다비를 보내서 기병 이백여 명을 데리고 와서 들에서 영접하는 것이었다.

  일행이 이미 그들의 도읍에 도착하자 그 왕은 배청과 만나보고 크게 기뻐하여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해서에 대수가 있는데 예의의 나라라고 했다. 그런 때문에 사신을 보내서 조공을 바쳤던 것이다. 우리 오랑캐 사람들은 궁벽되게 바다 한 구석에 살아서 예의도 알지 못하는 때문에 그대를 국경 안에 머물러 두고도 일찌기 만나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 관사를 깨끗이 하고 대사를 대접하고 겸해서 대국의 유신의 감화를 듣고자 하는 바이다] 했다.

  배청은 여기에 대답하기를, [우리 황제께서는 덕이 이의를 겸하시고, 은택이 사해에 뻗치셨는데 왕도 이러한 감화를 사모한다 하기로 나를 보내서 여기에 와서 선유하는 것이다] 했다.

  이윽고 배청을 안내하여 관사로 들어가게 했다. 그 뒤에 배청이 사람을 보내서 왜왕에게 이르기를, [나는 조정의 명령을 이미 전달했으니 청컨대 곧 돌아갈 준비를 하고자 하노라] 했다. 이에 잔치를 베풀어 대접하고 배청을 돌려보내고 다시 사신에게 명하여 배청을 따라 수나라에 가서 방물을 바치도록 했다. 이런 일이 있은 뒤로는 드디어 사신의 왕래가 끊어지고 말았다.

 

  사신이 말하기를, 넓은 골짜기와 큰 내에 사는 사람들은 풍속도 서로 다르고 하고자 하는 일도 같지 않다. 또 말도 서로 통하지 않기 때문에 성인이 때로 가르침을 베풀어서 그 뜻을 미치게 하고 그 풍속이 서로 통하게 했던 것이다.

  구이가 사는 곳은 중국과는 사뭇 다르나 그들은 천성이 유순해서 광포한 기풍이 없으니 아무리 멀고 궁벽한 산과 바다에 사낟고 해도 올바른 도리로 가르칠 수가 있는 것이다. 하나라와 은나라 때에는 때때로 혹 와서 섬기기도 했었고, 기자가 조선으로 간 뒤로 비로소 여덟 가지 조목의 금법을 만들었으니, 이 법은 소활한 듯하나 빠진 것이 없고, 간략한 듯하면서도 오래 다스릴 수가 있어 그 감화시키는 힘이 천 년 동안을 끊어지지 않았다.

  지금 요동 여러 나라들은 혹 의복이 관과 면의 모습이 다른 것이 있고, 혹 음식에는 그릇에 담아 먹는 법이 있다. 그러나 경술을 좋아하고 숭상하고, 문사를 사랑하고 즐겨 하여 경도에 유학하는 자가 서로 왕래하여 길에 게속되고 혹은 중간에 죽고 돌아오지 못하는 자도 있으니 이것은 선철들이 남기신 풍도가 아닌데 그 누가 이렇게 만들었단 말인가.

  그런 때문에 공자는 말하기를, [충성되고 믿어운 것을 말하고, 독실하고 공경한 것을 행한다면 비록 오랑캐의 나라에 간대도 행할 수가 있다] 하였으니 참으로 이 말을 믿을 수가 있다. 그 풍속에서 취할 만한 일이 어찌 싸리나무 화살을 바치는 일뿐이겠는가.

  고조가 주나라의 자손들을 무휼하여 이 중국에 은혜를 베푼 이후로 개황 말년에 와서 바야흐로 요좌를 섬겼더니 하늘의 땍 ㅏ이롭지 못하여 군사들이 드디어 공을 이루지 못했다. 이대 동안 기업을 계승하여 온 천하를 포용할 뜻을 가지고 자주 삼한의 땅을 밟고, 여러 번 천 근이나 되는 활을 당겼더니 작은 나라들이 망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감히 곤한 짐져서 몸을 상하고 나라를 멸망시키고 말았다.

  병서에 말하기를, [덕을 넓히고자 힘쓰는 자는 창성하고, 땅을 넓히고자 힘쓰는 자는 망한다] 했다. 그러나 요동의 땅들은 한 군이나 현만도 못한 지가 오래였다.

  여러 나라들이 조공을 바쳐 해마다 빠지지 않았는데, 이대 천자가 이를 불쌍히 여겨 그들이 자기만 못하다고 생각하고, 이것을 글이나 덕으로 포섭하지 못하고 갑자기 군사를 움직여서 안으로는 부자이고 힘이 센 것만 믿고 밖으로는 땅 넓힐 것만 생각하여 교만한 것으로 원망을 사고 원망으로 군사를 일으켰으니 이렇게 하고서도 망하지 않은 자를 에날로부터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사이의 경계를 어찌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있으랴.(隋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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