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수서 동이전 말갈
말갈은 고려 북쪽에 있다. 부락마다 모두 추장이 있어 서로 통일되지 않은 것이 대체로 일곱 종족이 있다. 그 중의 하나는 이름을 율말부라고 하는데, 고려와 서로 인접해 있다. 이곳은 군사가 수천 명이 있어 모두 날래고 씩씩해서 매양 고려를 침입하곤 했다. 둘째는 백줄부라고 하는데, 율말 북쪽에 있고 군사가 칠천 명이 있다. 세째는 안차골부로서 백졸부 동북쪽에 있고, 네째는 불열부로서 백줄부 동쪽에 있고, 다섯째는 호실부로서 불열부 동쪽에 있다. 여섯째는 흑수부로서 안차골부의 서북쪽에 있고, 일곱째는 백산부로서 율말부의 동남쪽에 있다. 이들은 군사가 모두 삼천 명에 지나지 못하지만, 그 중에서 흑수부가 가장 굳세고 건장하다. 불열부로부터 동쪽은 화살을 모두 돌촉을 쓰는데 이것은 곧 옛날 숙신씨의 법이다. 그들이 사는 것은 산이나 물을 의지해 사는 자가 많고, 그들의 우두머리는 대막불만줄이라고 하는데, 동이들 중에서는 가장 강한 나라이다. 풍속은 몹시 남을 공경하고 어려워하며, 산에는 곰과 표범과 이리가 있지만 모두 사람을 해치지는 않고, 또한 사람들도 짐승을 죽이지 않는다. 땅은 몹시 낮고 습한데 흙을 쌓아 둑을 만들고 그 속에서 굴을 파고 산다. 문은 맨 위에 내고 사닥다리를 놓고 출입한다. 모두 농사들을 지어 조와 보리와 밀이 많이 난다. 물이 몹시 짜고 소금은 나무껍질 위에서 따다가 먹는다. 가축으로는 돼지가 많고, 쌀을 가지고 술을 빚어 마시는데 마시기 시작하면 모두 취한다. 부인은 무명옷을 입고 남자는 돼지나 개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다. 풍속에 오줌으로 손과 얼굴을 씻어 모든 오랑캐들 중에서 가장 깨끗지 못하다. 또 그들의 풍속은 음란하고 질투가 많아서 자기의 아내가 밖에서 음란한 행동을 했다고 그 사실을 남편에게 알리기만 하면 남편은 그 아내를 죽인다. 그러나 죽인 뒤에는 그 일을 뉘우쳐서 반드시 그 말을 고해 바친 자를 죽인다. 그런 때문에 간음하는 일이 종시 없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두 활을 쏘아 사냥하는 것으로 생업을 삼는데, 뿔로 만든 활이 길이가 석 자나 되고 화살의 길이는 한 자 두 치나 된다. 항상 칠,팔월이 되면 독약을 만들어 화살에 칠해 가지고 새나 짐승을 쏘는데, 화살에 맞기만 하면 그대로 죽고 만다. 개황 초년에 서로 다투어 사신을 보내 물건을 바치자 고조는 그 사신에게 조서를 내려 말하기를, [짐은 듣건대 그 지방 백성들은 몹시 날래고 민첩하다 하더니 이제 와서 서로 보게 되니 실로 짐의 마음에 흡족하다. 짐은 너희들 보기를 자식같이 하는 터이니 너희들도 마땅히 짐을 아비처럼 공경하게 하라] 했다. 이에 그들은 대답하기를, [신 등이 궁벽하게 한 지방에 살고 있아와 길이 너무나 멀고 험하오나, 내국에 성인이 계시다 하옵기로 일부러 와서 조회하고 뵈는 터입니다. 그러하온데 이제 이미 물건 내리시는 것을 받자옵고 친히 성안을 받들어 뵈오니 하정에 즐겁고 기쁜 마음을 이기지 못하옵나이다. 원컨대 길이 폐하의 종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했다. 그 나라는 서북쪽이 글안과 서로 인접되어 있어 항상 서로 침랴갛고 약탈하는 처지였다. 그러는 것을 알고 있는 터에 그 뒤에 또 사신이 오자 고조는 경계해 말하기를, [나는 글안이 너희들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니 마땅히 각각 그 국경을 지키고 있으면 어찌 편안하고 즐겁지 않겠는가. 하필 툭하면 서로 공격해서 내 마음을 괴롭게 하는가] 하니, 사신으로 간 사람들이 사죄했다. 이에 고조는 후하게 그들에게 물건을 주고 그 앞에서 잔치를 베풀어 술을 마시게 했다. 사신들은 그 나라 사람들과 모두 일어나서 춤을 추는데, 그 춤 추는 모양이 마치 서로 싸우는 모습과 같았다. 제는 이것을 보고 시신들을 돌아보면서 말하기를, [천지 사이에 이런 사람들도 있는가. 항상 싸울 생각만 가지고 있으니 너무심한 일이로구나] 했다. 그러나 그 나라는 수나라와 너무 멀게 떨어져 있고, 오직 율말부와 백산부만이 좀 가까울 뿐이었다. 양제는 처음에 고려와 싸워서 자주 깨치니 그 무리들의 우두머리 탁지가 자기 부의 백성들을 거느리고 와서 항복했다. 이에 제는 그를 배하여 우광록대부를 삼아 유성에 있게 했더니, 이들은 변방 사람들과 서로 왕래하는 동안에 중국의 풍속을 좋게 여겨 관과 띠를 얻어 이것을 쓰고 이것을 띠기를 청하므로 제는 이를 가상하게 여겨 비단 등속을 하사하여 그들에게 주었다. 그 뒤 요동 전쟁 때에는 탁지가 제 부하들과 군사들을 거느리고 전쟁에 나와 여러 번 전공을 세우자 상을 후하게 내렸다. 십삼년에 제를 따라 강도로 갔다가 이윽고 유성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이밀의 난리를 만났는데, 이 때 밀은 군사를 보내서 그를 맞아 싸워 전후 십여 번이나 싸웠다. 이 때 탁지는 간신히 죽음을 면하여 고양에 이르렀더니, 다시 왕수발에게 패했고 얼마 안되어 도망하여 나예에게로 돌아갔다.(隋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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