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현의 죽음을 앞둔 상소와 유시
최익현의 마지막 상소 죽음에 임한 신 최익현은 대마도 경비대안에서 삼가 서쪽을 향하여 머리를 조아리고 상소를 올리옵니다. 설사 저들이 신을 죽이려 하지 않는다 하여도 신은 차마 그들이 주는 것을 먹고 입고 배를 더럽힐 수가 없사옵니다. 그러므로 고인들이 먹기를 거부함으로써 죽음을 택하기로 하였사옵니다. 신의 나이 74세, 죽은들 그 무엇이 애석하겠습니까? 바라건데, 국사가 어찌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 마시고 군왕의 덕을 분발 하시어 믿어서는 아니 될 일은 믿지 마시고 더욱 자주의 계획을 굳혀 영원히 의뢰하는 마음을 끊으시고 세상의 형평을 살펴 그 가운데서 할 일을 선택하오소서. '면암 최익현이 왜국 땅 대마도에서 식음을 전패하면서 남긴 유시(遺時)' 기첨북두배경루(起瞻北斗拜樓) 일어나면 북두를 우러르고 입금계신 곳에 절하면 백수만삼분제류(白首蠻衫憤悌流) 흰머리 오랑캐의 옷자락에 분한 눈물 쏟아져 흐른다네 만사불탐진부귀(萬死不貪秦富貴) 만번을 죽는다해도 부귀는 탐하지 않으리 일생장독로춘추(一生長讀魯春秋) 평생을 읽는 글이 노나라의 춘추라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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