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교육제도와 불교 수용
2년 여름 6월에 진나라 왕 부견이 사신과 중 순도를 파견하여 불상과 경문을 보내왔다. 왕은 사신을 보내 답례하고 토산물을 바쳤다. 태학(太學)을 세우고 자제(子弟)를 교육하였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소수림왕 - 습속에 문지기와 말먹이 따위의 집에 이르기까지 서적을 매우 좋아한다. 각 거리마다 큰 집을 지어 경당이라 부르는데, 자제(子弟)들이 결혼할 때까지 밤낮으로 이곳에서 독서와 활쏘기를 익힌다. 책은 오경(五經)과 사기(史記), 한서(漢書)와 범엽의 후한서(後漢書), 삼국지(三國志)와 손성(孫盛)의 진춘추(晋春秋), 그리고 옥편(玉篇)· 자통(字統)· 자림(字林)이 있다. 또 문선(文選)이 있는데 이를 가장 귀중하게 여긴다. - 구당서 열전 동이 고려 - 태학박사(太學博士) 이문진(李文眞)이 고사(古史)를 축약하여 신집(新集) 5권을 만들었다 국초에 처음으로 문자로 기록할 때 어떤 사람이 사실을 100권으로 만들어 이름을 <유기>라 하였는데, 이때 와서 깎고 고쳤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영양왕 - |
자료 참조 : 고구려 교육에 대한 사료입니다. 고구려는 소수림왕대 율령반포, 불교수용을 하면서 태학을 설립하여 왕권강화의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특히 태학은 우리 나라 최초의 대학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경당은 초등에서 고등까지 다양한 교육을 책임지는 기관이었는데, 특히 독서, 습자, 활쏘기 등 다양한 서민교육을 하였습니다. 신집 5권은 이전의 유기를 간략히 축약하여 영양왕대 고구려의 체제 정비의 일환으로 제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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