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만족의 이동과 유럽 중세의 시작
1. 게르만 족이란? 게르만족은 발트해 북유럽 연안에 살던 소수의 야만인(?)입니다. 야만인이라는 것은 당시 로마 제국의 관점이였죠. 로마는 갈리아 정복 이후 춥고, 도움이 안되는 북극쪽의 땅은 정복하지 않습니다. 실제 로마가 현재 프랑스-서부독일-에스파냐를 잇는 갈리아를 정복한 것도 갈리아 지방에 풍부한 유산이 있거나, 갈리아인들이 문명인이라서가 아닙니다. 갈리아 정복은 단지 이베리아 반도를 거치기 위해 필요한 도로를 확장하기 위함이였으니까요. 아무튼, 북유럽의 게르만족은 로마 제국의 입장에서는 이방인이였습니다. 그러나 게르만족에게 평화가 오랜 기간 유지되면서 인구가 증가하고 경작지가 부족해졌습니다. 이것은 게르만인들이 남부로 내려오는 하나의 원인이 됩니다. 게르만족들은 중국의 흉노(훈족)의 동진과 함께 대대적인 이동을 시작합니다. 초기의 이동은 흉노를 피해 로마로 이주한 유이민들이였고, 이들은 로마인들에 의해 학대당하였습니다. 초기의 유이민들은 정착할 땅을 얻지 못하였고, 노예로 팔리거나, 소작농이거나, 성 노예로 매매되었다고 합니다. 로마에 적응하기 위하여 로마의 영토를 지키는 병사를 자처하면서 연명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4c경 훈족의 압박으로 게르만족들은 무장하면서 대대적인 이동을 합니다. 게르만 일파인 서고트족과 동고트족이 로마제국내에 국가를 건설하기에 이르렀고, 각 게르만족의 일파들은 로마 영지에 국가단위로 안착하게 됩니다. 이후 동고트의 약탈로 약해진 서로마는 서고트족의 일격으로 망하게 됩니다. 이 서로마가 멸망한 것을 기준으로 유럽은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갔다고 말합니다. 2. 게르만인들의 초기 사회 게르만의 초기사회는 1c중반의 역사가인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에 자세히 나온다고 합니다. 초기 게르만인들은 국가라고 할 조직적인 기반이 없는 부족사회였습니다. 족장도 전사들의 모임인 시민회에서 선출되었습니다. 게르만의 정치는 자유민으로 이루어진 시민회(민회)가 주도했습니다. 시민들의 자유로운 사회인 것이죠. 실제 프랑크족, 색슨족, 고트족 등의 게르만족들은 조직적 부족국가가 아닙니다. 그냥 언어나 풍습이 유사한 집단들이 하나의 족속개념으로 뭉친 것이지요. 그들은 종사제도라는 강한 인적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게르마니아(1c 전반, 타키투스), 갈리아전기(1c 후반, 시저) 등의 내용을 보면 게르만인들은 자유를 무척이나 즐기는 편이지만 인적인 유대관계도 견고하다고 합니다. 종사제도(Comitatus)는 중세 유럽의 주종관계와도 관련있는 <봉건제적 개념>입니다. 이것을 쉽게 말하면, 상위 지배층과 하위 전사간의 충성-의무 관계를 말합니다. 즉, 족장들은 무기, 식량등을 전사로부터 공급받고 전장에서 활약한 전사단을 거느립니다. 전사단은 족장에게 충성하는 대신 가족의 생명과 일정한 수입을 보장받습니다. 이것은 게르만인들이 유럽을 이끌어가는 중세시대에 <봉건제도>라는 사회틀로 자리잡습니다. 게르만인들은 초기에는 원시종교를 믿었는데, 이 원시종교는 중세사회가 자리잡은 5c 이후부터 10c무렵까지도 지속됩니다. 하지만, 게르만인에게도 크리스트교가 보급되어 시간이 지날 수록 크리스트교가 중세사회의 핵심 종교로 자리잡게 되는데, 그것은 초기 게르만인들에게 <아리우스파>의 교리가 전파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리우스파는 로마제국기 콘스탄트누스 황제의 니케아 공의회에서 아타나스우스파의 삼위일체설에 밀려 게르만 사회로 흘러들어간 학파라는 것을 로마사에서 설명했습니다. 이 아리우스파가 게르만인 교화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입니다. 3. 훈족의 압박과 민족의 대이동 3c 경 게르만인들은 로마의 용병이나 소작인 수준으로 로마 변경 지대에 정착했습니다. 그들은 개인적 또는 집단적으로 로마 군인으로 활약하면서 그들의 권리를 작게나마 인정받기 시작합니다. 특히, 콜로나투스 제도가 로마에 정착되는 3c 경에는 토지의 부족현상이 심해져서 로마인에게 토지를 주면서 군복무를 시키기가 어렵게 되었고, 로마인들은 강제로 세습군인을 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인들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복무하지 않았지만, 게르만인들은 절박한 처지 속에서 목숨걸고 충성하였습니다. 충성이 곧 그들의 신분상승을 어느 정도 보장하는 것이였으니까요. 게르만인들은 차츰 부족단위, 동맹시 단위로 군대를 편성하여 로마의 변방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로마의 입장에서는 이들 군인들이 거대한 제국에 꼭 필요했지만, 이것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이 됩니다. 4c 대대적인 게르만의 이동기에 로마 영토내에 국가를 세우고 독립해버린 자들은 다름아닌 게르만의 부족, 동맹시였으니까요. 4. 게르만의 국가 훈족의 압박으로 이동한 게르만족 중 유명한 국가들을 한번 볼까요? 1. 서고트족 우선 서고트족은 먼 길을 이동하여 이베리아 반도에 정착합니다. 그들은 에스파냐 왕국을 건설하고, 카톨릭으로 개종하여 로마 시민과 공존하는 방법을 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당시 확장중인 이슬람과 맞닿은 지역이였습니다. 서고트족은 이후 이슬람의 공격으로 망하고, 이베리아 반도는 중세 시대 이슬람의 세력권으로 남게 됩니다. 2. 반달족 반달족은 에스파냐 남부에서 아프리카 북부에 이르는 영토에 반달 왕국을 건설했습니다. 그들은 자신과 다른 이민족들을 모조리 죽이고 학살하며, 재산을 파괴하는 등 잔혹한 방법으로 영토 확장을 추진했습니다. 이러한 무법적인 만행을 보통 <반달리즘>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6c 동로마의 위대한 황제인 <유스티니아누스>에게 멸망당합니다. 유스티니아누스는 <로마법>체계를 확립하여, <반달리즘>과 같은 야만성을 법으로 규제해 버립니다. 3. 앵글로=섹슨족 영국과 북해에서는 북해 7왕국 등이 건설되었는데, 이곳에 정착한 민족은 앵글로족과 섹슨족입니다. 이들은 앵글로-섹슨 왕국을 건설하면서, 영국이라는 섬나라를 주도하는 민족이 됩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웨일즈, 아일랜드와 같은 섬들은 캘트족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어서 영국은 이후 역사에서 이들 민족간의 항쟁이 끊이지 않게 됩니다. 4. 아시아계 민족 훈족이 철수한 이후에는 훈족이 이동했었던 중앙아시아와 동부 유럽에 아시아계통의 민족이 정착하게 됩니다. 유럽의 중앙평원에는 마자르족, 불가리아족, 아바르족 등이 남아 이후 유럽역사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이들은 아시아 계통의 민족이면서도 점차 유럽화되어 갑니다. 5. 동고트족 동고트족은 이탈리아 반도에 직접 진출하였습니다. 이들은 이탈리아에 왕국을 건설하였고, 로마 민족과 대립하였습니다. 로마의 명제상 보에티우스는 누명을 쓰고 죽기 직전 감옥에 있을 때, 이 동고트족이 점령한 혼란기 로마의 참상을 보고 <철학의 위안>이라는 대작을 남겼다고 합니다. 동고트족 역시 6c 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로마제국 회복 작업에 의해 멸망합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이탈리아는 황제권을 회복하여 서유럽의 역사가 다시 전개된 것이죠. 6. 롬바르드족 롬바르드족은 북부 이탈리아에 침입하여 왕국을 세웠습니다. 그들이 국가를 세운 영토를 <롬바르디아 평원>이라고 부릅니다. 또 그들은 시칠리아 섬 북부 등 이탈리아 남부에 2개의 공국을 세웠습니다. 롬바르드족이 이탈리아 북부를 차지하면서, 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는 <라벤나>를 경계로 시칠리아, 남부 이탈리아를 로마 영토로 선언합니다. 롬바르드족은 그 민족이 멸망했다기 보다 자연스레 로마 문화로 융화되면서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이탈리아 북부에 세력권을 유지합니다. 그럼 다음장에서는 이러한 혼란기에 서유럽은 어떻게 로마 문화를 유지했는지 살펴보고, 프랑크 왕국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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