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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

만파식적에 관한 삼국유사의 기록 만파식적에 관한 삼국유사의 기록 제31대 신문대왕(神文大王)의 이름은 정명(政明)이요 성은 김씨다. 개요(開耀) 원년 신사(辛巳) 7월 7일에 왕위에 올랐다. 아버지를 위하여 동햇가에 감은사(感恩寺)를 세웠다. -절의 기록에 이런 말이 있다. "문무왕(文武王)이 왜병을 진압하려 하여 이 절을 지었으나, 역사를 마치지 못하고 돌아가 바다의 용이 되었다. 그 아들 신문왕이 왕위에 올라 개요 2년(682)에 역사를 마쳤는데, 금당 계단 아래에 동쪽을 향해 구멍 하나를 뚫어 두었다. 이것은 용이 절에 들어와서 돌아다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대개 유언으로 유골을 간직한 곳은 대왕암(大王巖)이라 하고 절은 감은사(感恩寺)라 이름했으며 후에 용이 나타난 곳을 이현대(利見臺)라 한 것 같다. 이듬해 임오(壬午) 5월 .. 더보기
대왕암, 불국사, 석불사에 관련된 사료들 대왕암, 불국사, 석불사에 관련된 사료들 문무왕은 나라를 다스린 지 21년만인 영륭(永隆) 2년 신사(辛巳)에 세상을 떠났는데 유언에 따라 동해의 큰 바위 위에 장사지냈다. 왕은 평시에 항상 지의법사(智義法師)에게 말하였다. "나는 죽은 후에 나라를 지키는 큰 용이 되어 불법을 받들어서 나라를 지키려 하오" (《三國遺事》2, 紀異2 文虎王 法敏) 모량리(牟梁里)의 가난한 여인 경조(慶祖)에게 한 아이가 있었다. 머리가 크고 이마가 평평한 것이 꼭 성(城)과 같아 이름을 대성(大城)이라고 하였다. 집이 빈곤하여 살아갈 수가 없어 그는 부자인 복안(福安)의 집에 가서 품팔이를 하여 그 집에서 얻은 몇 이랑의 밭으로 끼니를 잇고 있었다. 어느날 점개(漸開)라는 스님이 육륜회(六輪會)라는 법회를 흥륜사(興輪寺).. 더보기
신라 하대 사회의 동요를 보여주는 삼국사기의 사료들 신라 하대 사회의 동요를 보여주는 삼국사기의 사료들 선덕왕(宣德王)이 즉위하니 성은 김(金)씨요 휘(諱)는 양상(良相)이며 내물왕(奈勿王)의 10세손이었다. 아버지는 해찬(海瑗) 효방(孝芳)이며 어머니는 김씨 사소부인(四炤夫人)이니 성덕왕(聖德王)의 딸이다. 비(妃)는 구족부인(具足夫人)으로 각간(角干) 양품(良品)의 딸이었다. (《三國史記》 9, 新羅本紀 9, 宣德王) 원성왕(元聖王)이 즉위하니 휘는 경신(敬信)으로 내물왕의 12세손이었다. 어머니는 박씨 계오부인(繼烏夫人)이며 비는 김씨 신술(神述) 각간의 딸이다. 처음에 혜공왕 말년에 반신(叛臣)들이 발호할 때 선덕(宣德)이 상대등(上大等)으로 있으면서 임금 측근의 나쁜 무리들을 제거하자고 먼저 부르짖자 경신이 참여하여 난을 평정한 공이 있었으므로 .. 더보기
전적벽부(前赤壁賦) - 소 식(蘇 軾) 전적벽부(前赤壁賦) - 소 식(蘇 軾) 임술(壬戌)년 가을 칠월 열 엿새. 나는 객(客)과 더불어 배를 띄우고 적벽(赤壁) 아래에서 놀았다. 맑은 바람 서서히 불어와 물결 일지 않는데 잔 들어 객에서 권하며 명월(明月) 시를 읊조리고 요조(窈窕) 시를 노래하는데 곧 달이 동산 위로 솟더니 북두성과 견우성 사이를 배회한다. 흰 이슬이 강물 위에 비겨 내리고 물빛은 하늘에 닿아있다. 한 조각 작은 배 가는 대로 내어 맡겨 망망한 만경창파를 건너간다. 넓고도 넓은 것이 허공타고 바람을 모는 듯 그 머무는 곳을 모르겠고 가벼이 떠올라 속세를 버리고 우뚝 솟은 듯 날개 돋아 신선이 되어 하늘에 오르는 듯 했다. 이에 술 마시고 매우 즐거워서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노래하기를 "계수나무 노와 목란 상앗대로.. 더보기
악양루기(岳陽樓記) - 범중엄(范仲淹) 악양루기(岳陽樓記) - 범중엄(范仲淹) 송(宋)나라 인종(仁宗) 경력(慶曆) 4년 봄, 등자경( 子京)이 유배되어 파릉군(巴陵郡)의 태수가 되었다. 이듬해가 되자, 정치가 잘 행해져 인심이 화합하고, 그 전의 온갖 그릇된 일들이 모두 새로 잘 되었다. 그러자, 그는 악양루(岳陽樓)를 중수하였는데, 옛규모를 더욱 늘리고 당대(唐代)의 뛰어난 문인들과 오늘날 사람들의 시(詩)와 부(賦)도 그 위에 새겨 넣었으며, 나에게는 문장을 써서 그 일을 기록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내가 보기엔 파릉의 뛰어난 경치중 오로지 동정호(洞庭湖) 하나이다. 동정호는 먼 산을 머금고, 장강(長江)의 흐름을 삼키고 있는 듯 물결이 널리 넘실거리고 있으며, 그 너비는 남북으로 가로질러 끝이 없으며, 아침 햇살이 비칠 때나 어스름 저녁.. 더보기
포사자설(捕蛇者設) - 유종원(柳宗元) 포사자설(捕蛇者設) - 유종원(柳宗元) 영주(永州)의 들녘에서는 기이한 뱀이 나는데 검은 색 바탕에 흰색 무늬가 있었다. 그 뱀이 초목에 닿기만 하면 모조리 죽었고 사람이 물리면 치료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 뱀을 잡아 전육(乾肉)으로 만든 뒤 약용으로 먹으면 심한 중풍(中風)이나 팔다리가 굽는 병과 악성종양등을 치료할 수 있고 썩은 피부나 삼시충(三尸蟲)도 없앨 수 있다고 한다. 애당초 어의(御醫)가 왕명에 의해 그 뱀들을 모아 들였는데 일 년에 두 마리를 진상토록 하였다. 그 뱀을 잘 잡는 사람을 모집하되 잡은 뱀으로 조세수입에 충당토록하니 영주사람들 다투어 나서게 되었다. 장씨(蔣氏)라는 이가 있었는데 삼대에 걸쳐 그 일에 종사하여 왔다. 그에게 물은 즉 대답하기를 "제 조부도 그 뱀 때문에 죽.. 더보기
원 인(原 人) - 한 유(韓 愈) 원 인(原 人) - 한 유(韓 愈) 위에서 형상으로 이루어진 것을 하늘이라 하고, 아래에서 형상으로 나타난 것을 땅이라 하며 그 둘 사이에서 생명을 가지고 생겨난 것을 사람이라고 한다. 위에서 형상지어진 해·달·별은 모두하늘의 것이다. 아래에서 형상 지어진 풀·나무·산과 냇물 등은 모두 땅의 것이다. 그 둘 사이에서 생명을 가지고 있는 오랑캐와 새 짐승은 모두 사람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짐승을 사람이라 말해도 되겠는가? 고 한다면 안 된다고 할 것이다. 산을 가리켜 묻기를 산인가 라고 한다면 산이라고 해도 된다. 산에는 풀·나무·짐승이 있는데 모두 함께 들어 말한 것이다. 산의 풀 한포기를 가리켜 묻기를 산인가? 하고 할 때 산이라 한다면 안 된다. 본디 하늘의 도가 어지러워지면 해·달·별들이 정상.. 더보기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 - 이 백(李 白)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 - 이 백(李 白) 천지라는 것은 민물이 잠시 쉬어 가는 여관이고, 시간이라는 것은 긴 세월을 거쳐 지나가는 길손이다. 이 덧없는 인생은 꿈같이 허망하니, 즐긴다 해도 얼마나 되겠는가? 옛사람들이 촛불 들고 밤에도 노닌 것은 참으로 이유가 있었구나. 하물며 따스한 봄날이 안개 낀 아름다운 경치로 나를 부르고 천지가 나에게 글재주를 빌려 주었음에랴! 복숭아꽃 오얏꽃 핀 아름다운 정원에 모여 형제들이 즐거운 놀이 벌이는데, 여러 아우들은 글솜씨가 빼어나서 모두 혜련(惠連)에 버금가는데, 내가 읊은 시만이 강락(康樂)에게 부끄러울 뿐이다. 조용히 봄경치 감상이 끝나지도 않아서, 고아(高雅)한 담론은 더욱 맑아진다. 화려한 잔치라서 벌여 꽃사이에 앉아서 새모양의 술잔 주고 받으며 .. 더보기
중국사 사료모음) 귀거래사(歸去來辭) - 도연명(陶淵明) 귀거래사(歸去來辭) - 도연명(陶淵明) 1. 돌아가자! 전원이 황폐해가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오? 이미 스스로 마음을 육신을 위하여 부렸었으나, 어찌 상심하여 슬퍼하기만 할 것인가? 이미 지난 일은 돌이킬 수 없고, 앞으로 다가올 일은 추구할 수 있음을 알았다네. 사실 길을 잘못 들긴 했으나 아직 멀리 벗어나지는 않았고, 지금이 옳고 이전에는 틀렸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네. 배는 흔들흔들 가볍게 흔들리고, 바람은 살랑살랑 옷깃에 불어오네. 길손ㅇ게 앞 길 물어 가는데, 새벽 빛 희미한 것이 한스럽네. 이윽고 초라한 우리 집 보이니 기뻐서 빨리 달려가네. 하인들이 기쁘게 맞아주고, 어린 것들 대문에서 기다리네. 뜰 앞 오솔 길은 황폐해 가나, 소나무와 국화는 그대로 있네. 아이들 손잡고 방으로 들어가니, 술.. 더보기
제갈공명의 출사표 번역본 제갈공명의 출사표 출 사 표 - 제갈 양(諸葛亮) 선제(先帝)께서는 창업(創業)을 반도 못이루고 중도에 돌아가셨습니다. 지금 천하가 셋으로 나위어져 있고, 익주(益州)는 피폐(疲弊)해졌으니, 이 때야말로 진실로 존망(存亡)의 달린 위급한 때입니다. 그러나, 폐하를 모시며 호위하는 신하들이 궁중에서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충성스런 장수들이 조정 밖에서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 것은, 선제(先帝)의 특별하신 대우를 추억하여 폐하께 보답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폐하께서는 견문(見聞)을 넓히시어 선제(先帝)께서 남기신 덕망을 빛내시고 뜻있는 인사(人士)들의 기개(氣槪)를 넓히셔야 합니다. 공연히 폐하 스스로 변변치 못하다고 여기시고 사리에 맞지 않는 비유를 들어 충간(忠諫)의 길을 막아버리면 안 됩니다.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