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남사 이맥전 고구려
고구려는 요동 동쪽 천 리 밖에 있다. 그 조상의 내력은 북사에 자세히 씌어 있다. 땅이 이천 리나 되고 나라 가운데에는 요산이 있는데 요수가 여기서부터 흘러 나왔다. 남쪽은 조선, 예맥과 인접되어 있고, 동쪽은 옥저와 연결되어 있으며, 북쪽은 부여와 인접되어 있다. 그 나라 왕은 환도산 밑에 도읍을 정하고 산다. 땅은 큰 산과 깊은 골짜기가 많고, 넓은 들판이나 못은 없어서 백성들이 산을 의지해서 살며 시냇물을 마신다. 아무리 대대로 내려오면서 살기는 해도 좋은 밭이 없기 때문에 그 나라 풍속은 먹는 것을 절약하고 궁실 수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사는 집 좌편에 크게 집을 세우고 귀신에게 제사를 드리며, 또 영성과 사직에게도 제사를 드린다. 사람의 성품은 흉악하고 급해서 도둑질하고 남을 침략하기를 좋아한다. 그 곳 벼슬은 상가, 대로, 패자, 고추가, 주부, 우태, 사자, 백의, 선인 등이 있다. 이 중에 높고 낮은 것이 각각 등급이 있다. 말하는 것이나 그 밖의 모든 일은 부여와 같은 것이 많다. 다만 사람들의 성질과 의복만은 다른 것이 있다. 그들은 본래 다섯 부족이 있었다. 그것은 소노부, 절노부, 신노부, 관노부, 계루부이다. 본래 소노부에서 왕노릇을 했는데, 미약한 때문에 계루부가 이것을 대신했다. 그 고나리를 쓴 것을 보면 대노가 있으면 패자를 두지 않고, 패자가 있으면 대노를 두지 않는다. 그들의 풍속은 노래하고 춤 추는 것을 즐겨서, 나라 안 모든 부락 남녀들이 밤마다 여럿씩 모여서 노래 부르고 논다. 그 사람들은 깨끗한 것을 좋아하고 또 술을 빚어두고 마신다. 꿇어앉거나 절을 할 때는 한 쪽 다리를 뻗고 걸음걸이는 모두 달아나는 것과 같다. 시월이 되면 하늘에 제사지내기 위해서 사람들이 모두 모인다. 그들의 공회에 입는 옷은 모두 비단옷에 금이나 은으로 장식을 한다. 대가나 주부가 머리에 쓰는 것은 책과 같으면서도 뒤가 없다. 소가는 절풍을 쓰는데 그 모양은 변과 같다. 그 나라에는 감옥이라는 것이 없고, 죄를 범한 자가 있을 때는 여러 가들이 모여서 의논하여 그 중에 죄가 중한 자는 죽이고 그 아내와 자식들을 몰수한다. 그들의 풍속은 음란한 것을 좋아하여 남녀끼리 분주히 유인한다. 한 번 시집을 가면 이내 장사지낼 옷을 만든다. 사람이 죽으면 곽만 쓰고 관은 없다. 후하게 장사 지내기를 좋아해서 금은과 모든 재물을 폐백으로 하여 장사 지내는 데 다 써버린다. 돌을 쌓아 봉분을 하고 소나무와 잣나무를 벌려 심는다. 형이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 삼는다. 그들의 말은 모두 작아서 산에도 잘 올라갈 수가 있다. 그 나라 사람들은 기운을 숭상하고 활과 화살, 칼, 창 같은 것을 잘 쏜다. 투구와 갑옷이 있고 싸움을 잘한다. 그래서 옥저와 동예가 모두 그들에게 소속되었다. 진나라 안제 의희 구년에 고려왕 고련이 장사 고익을 보내서 표문을 올리고 돼지와 백마를 바치니 진나라에서는 고련으로 사지절도독 영주제군사 정동장군 고려왕 낙랑공을 삼았다. 송나라 무제가 왕위에 오르자 연에게 정동대장군을 더하고 나머지 벼슬은 전대로 두었다. 또 삼년에는 연에게 산기상시를 더하고 독평주제군사를 삼았다. 소제 경평 이년에 연이 장사 마루 등을 보내서 방물을 바치는 제는 알자 주소백, 왕소자를 보내서 위로했다. 원가 십오년에 풍홍이 위나라의 공격을 받아서 패하여 고려 북쪽 풍성으로 도망하여 표문을 올려 영접해 주기를 청하자, 문제는 사신 왕백구, 조차흥을 보내서 이를 영접하고 또 고려에 명하여 받아들이도록 했다. 그러나 연은 풍홍이 남쪽으로 오지 못하게 하여 장수 손수, 고구 등을 보내서 이를 쳐서 죽였다. 이에 백구 등이 자기가 거느린 칠천여 명을 데리고 그들을 공격하여 손수를 산 채로 잡고 고구 등 두 사람을 죽였다. 연은 백구 등이 자기 사람을 죽였다 하여 사신을 보내어 백구 등을 잡아 보내기를 요구하자, 제는 먼 나라 사람들의 뜻을 어기지 않기 위하여 백구 등을 옥에 가두었다가 풀어 주었다. 이로부터 연은 해마다 사신을 보내 왔다. 십육년에 문제가 위나라를 침입하고자 하여 연에게 조서를 내려 말을 보내라고 했더니 연은 팔백 필을 보내 왔다. 효무제 효건 이년에 연이 장사 동등을 보내서 표문을 올려 국가의 초상을 위로했다. 그리고 다음해에는 또 방물을 바쳤다. 대명 이년에 또 숙신씨의 싸리나무 화살과 돌활을 바쳤다. 칠년에 조서를 내려 연을 올려 거기대장군 개부의동삼사를 삼고 나머지 벼슬은 그대로 두었다. 명제의 태시 이후와 폐제 원휘년중에서도 물건 바치는 것이 끊어지지 않았다. 연은 백여 세가 되어 죽고 아들 운이 섰다. 제나라 융창년중에 운으로 사지절 산기상시도독 영평이주 정동대장군 난랑공을 삼았다. 양나라 무제가 즉위하자 운을 높여 거기대장군을 삼았다. 천감 칠년에 조서를 내려 운으로 무동대장군 개부의동삼사 지절상시도독을 삼고 왕의 명칭은 전대로 두었다. 십일년과 십오년에도 여러 번 사신을 보내서 물건을 바쳤다. 십칠년에 운이 죽고 아들안이 서니 보통 이년에 안에게 조서를 내려 지절도독 영평이주제군사 영동대장군을 삼았다. 칠년에 안이 죽고 아들 연이 서자 사신을 보내서 물건을 바치니 제는 조설르 내려 연으로 하여금 안의 벼슬을 습작하게 했다. 중대통 사년, 육년과 대동 원년, 칠년에도 여러 번 표문을 받들고 방물을 바쳤다. 태청 이년에 연이 죽자 그 아들 성에게 조서를 내려 연의 작위를 이어받게 하였다.(南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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