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남사 이맥전 왜국
왜국은 그 조상과 그 나라가 있던 곳은 이미 북사에 자세히 씌어 있다. 그들의 벼슬 이름을 보면, 우선 이지마가 있고, 그 다음은 마마획지요, 또 그 다음은 노가제이다. 그 나라 사람들은 벼와 삼을 심어 누에를 쳐서 길쌈을 한다. 또 생강과 계피, 귤, 고추, 소엽 등이 난다. 그 밖에도 검은 꿩과 진주, 푸른 옥 등이 난다. 짐승으로는 소처럼 생긴 것이 있는데, 이것을 산서라 하고 또 큰 뱀이 있는데 이 짐승을 잡아 먹는다. 뱀의 가죽은 단단해서 칼이 들어가지 않는다. 뱀의 위쪽에 구멍이 있는데, 이것이 금시에 열렸다가 금시에 닫히고 때로는 혹 빛이 나기도 한다. 이 구멍을 활로 쏘아 맞히면 뱀이 죽는다. 이 지방에서 나는 물건은 대략 담이, 주애와 같다. 땅 기운은 따뜻하고 풍속은 음탕하지 않고, 남자나 여자가 모두 머리를 내놓고 다닌다. 다만 부자나 귀한 사람들은 비단이나 수놓은 옷감으로 모자를 만들어 쓰는데, 이것은 마치 중국의 호공두와 같다. 음식을 먹는데는 그릇에 담아 먹고, 사람이 죽으면 관만 쓰고 곽은 쓰지 않는다. 무덤에는 흙을 모아서 봉분을 만든다. 사람들의 성품은 모두 술을 즐겨 마신다. 그들은 정월 초하루를 알지 못하고, 오래 사는 자는 혹 팔, 구십세를 살고 혹은 백 세까지 산다. 그 나라는 여자가 많고 남자가 적기 때문에 귀한 자는 심지어 아내를 넷이나 다섯씩 데리고 살고, 천한 자라도 하나 둘은 데리고 산다. 그래도 여자는 질투를 하지 않고 음란한 짓을 하지 않는다. 또 도둑이 없고 소송하는 일이 적다. 만일 법을 범하면 그 죄가 경한 자는 그 처자를 몰수하고, 죄가 중한 자는 종족까지도 멸한다. 진나라 안제 때 왜왕 찬이 사신을 보내서 조공을 바쳤다. 송나라 무제 영초 이년에 조서를 내려 말하기를, [왜국의 찬이 멀리서 정성을 표하니 가히 벼슬을 제수하리라] 했다. 문제 원가 이년에 찬이 또 사마 조달을 보내서 표문을 받들어 방물을 바쳤다. 찬이 죽자 그 아우 진이 섰는데, 이 때 또 사신을 보내서 공물을 바치고 스스로 일컬으기를, [사지절도독 왜 백제 신라 임나 진한 육국제군사 안동대장군 왜국왕]이라 하고 표문을 올려 벼슬을 제수해 주기를 요구했다. 이에 조서를 내려 안동장군 왜국왕을 삼았다. 진은 또 저희 나라 유 등 십삼명에게 평서정로장군과 보국장군 등의 칭호를 내려달라고 요구하자 조서를 내려 이것을 모두 허락했다. 이십년에 왜국왕 제가 사신을 보내 물건을 바치고 다시 안동장군 왜국왕이 되었다. 그리고 이십팔년에는 그에게 사지절도독 왜 신라 임나 가라 진한 모한 육국제군사를 제수하고 안동장군의 칭호는 전대로 두었다. 또 위에서 말한 이십삼명의 벼슬도 아울러 제수했다. 제가 죽자 세자 흥이 사신을 보내 물건을 바쳤다. 효무 대명 육년에 조서를 내려 흥에게 안동장군 왜국왕을 삼았다. 흥이 죽자 아우 무가 서서 자칭 사지절도독 왜 백제 신라 임나 가라 진한 모한 칠국제군사 안동대장군 왜국왕이라고 했다. 순제 승명 이년에 사신을 보내 표문을 올려 말하기를, [옛날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몸소 병기를 들고 산과 내로 다니면서 거의 편안한 해가 없이 동쪽으로는 모인들 오십오국을 정벌하고, 서쪽으로는 모든 오랑캐 육십육국을 항복받았으며, 바다 북쪽의 구십오국을 평정하여 왕도가 태평하옵니다. 이 땅은 서울과 거리가 멀어서 여러 번 조회를 드리는데 거의 빠진 해가 없습니다. 하온데 서울에 가려면 길이 백제를 경유해야 하므로 배를 만들어 가려고 하옵는데, 고구려가 무도해서 우리를 삼키려 하옵니다. 이에 신의 죽은 아비가 바야흐로 크게 군사를 일으키려 하다가 갑자기 부형을 잃어서 성공하려던 길이 거의 이루어지다가 실패했었습니다. 이제 군사를 훈련하여 부형의 뜻을 풀려 하오니 바라옵건대 개부의동삼사의 벼슬을 제수하시옵고 그 나머지도 각각 벼슬을 제수하시어 충성스러운 절개를 권장해 주시옵소서] 했다. 이에 조서를 내려 무에게 사지절도독 왜 신라 임나 진한 모한 육국제군사 안동대장군 왜왕을 제수했다. 또 제나라 건원년중에는 무에게 지절도독 왜 신라 임나 가라 진한 모한 육국제군사 진동대장군을 제수했다. 양나라 무제가 즉위하자 무에게 정동대장군의 칭호를 주었다. 그 나라 남쪽에는 흑치국이 있고, 나국이 있는데, 왜국에서는 사천여 리나 떨어져 있어 배로 가려면 일년이 걸린다. 또 서남쪽으로 만 리를 가면 해인이 있다. 이들은 몸뚱이는 검고 눈은 희며 발가숭이로 사는데 몹시 추하게 생겼다. 그러나 그 고기는 맛이 몹시 아름답기 때문에 혹은 이것을 활로 쏘아 잡아서 먹기도 한다. 문신국이라는 나라는 왜국 동북쪽 칠천여 리 밖에 있다. 그 곳 사람들은 몸뚱이에 무늬가 있어 짐승과 같고, 그 이마 위에는 세 무늬가 있어 그 무늬가 곧은 자는 귀한 사람이고, 무늬가 작은 자는 천한 사람이다. 그 곳 풍속은 음악을 좋아하고 물건은 풍성해서 몹시 천하다. 그래서 길 가는 사람이 양식을 싸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집은 있지만 성곽은 없고, 국왕이 사는 집은 금과 은으로 장식해서 몹시 화려하다. 집 둘레에는 똘을 팠는데, 넓이가 한 길이나 되고 거기에는 수은으로 채워 놓아서 비가 오면 수은 위로 흘러가 버린다. 시장에서는 진귀한 보배를 가지고 매매한다. 사람이 만일 죄를 범했을 때에는 죄가 경하면 매를 때리고, 죽을 죄를 지면 맹수를 놓아 잡아먹게 한다. 하지만 만일 죄가 없어 억울할 때에는 맹수가 잡아먹지 않기 때문에 하룻밤을 지내고 나면 용서해 준다. 대한국이란 나라는 문신국 동쪽 오천여 리 밖에 있는데, 여기에는 군사를 두지 않아 남을 공격하거나 전쟁을 하지 않는다. 풍속은 모두 문신국과 같으나 말만은 다르다.(南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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