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풀이 썸네일형 리스트형 고려사 : 환자전 서문과 환자전 사료 모음 고려사 : 환자전 서문과 환자전 사료 모음 고려의 엄인(人 내시 )은 그 본계(本系)가 백성이 아니면 천한 종이었다. 고려에서는 궁형(宮刑 부형(腐刑) )을 쓰지 않았으므로 어렸을 때 개에게 고환을 먹힌 자가 모두 이런 자가 되었다. 그러나 다만 궁중의 영항(永巷)의 직임에만 채용할 뿐이고, 관원(官員)으로는 제배(除拜)되지 못 하였으니 그 사려(思慮)가 심원(深遠)한 바 있었다. 의종 때 정함(鄭) 백선연(白善淵)이 처음으로 권력을 마음대로 하였다. 그러나 정함이 지후(祗侯)가 되었을 때 재상(宰相)과 대간(臺諫)이 굳이 다투어 왕의 뜻을 받들지 않았으니 대개 아직도 선왕의 유풍(遺風)이 있었음이었다. 제국 공주가 일찍이 원(元) 나라 세조(世祖)에게 몇 사람을 바쳤는데 이들은 규원(閨 궁녀(宮女) ).. 더보기 고려사 : 충의전 사료 모음 고려사 : 충의전 사료 모음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생(生)도 또한 내가 하고자 하는 바요 의(義)도 또한 내가 하고자 하는 바이나 두 가지를 겸할 수 없으면 생(生)을 버리고 의(義)를 취할 것이라. 하였으니 대개 사람이 누가 죽음을 싫어하지 않으리요마는 충신과 의사(義士)는 한번 변고를 만나면 비록 정확(鼎)이 앞에 있고 도거(刀鋸)가 뒤에 있어도 피하지 않는 것은 하고자 함이 사는 것보다 심함이 있는 때문이다. 고려(高麗)는 인종(仁宗)으로부터 이후로는 왕실에 환난이 많았으므로 절의에 죽은 사람도 또한 적지 않았으므로 이제 그 일을 차례로 서술하여 충의전(忠義傳)을 짓는다. 홍관(洪灌) 홍관(洪灌)의 자(字)는 무당(無黨)이요 당성인(唐城人)이니 과거(科擧)에 급제하여 어사 중승(御史中丞)과 문덕.. 더보기 고려사 : 방기전 사료 모음 고려사 : 방기전 사료 모음 정헌대부(正憲大夫) 공조 판서(工曹判書) 집현전 대제학(集賢殿大提學) 지경연춘추관사(知經筵春秋館事) 겸(兼) 성균 대사성(成均大司成) 신(臣) 정인지(鄭麟趾) 봉(奉) 교수(敎修) 대개 한 가지 예능으로써 이름이 나는 것은 비록 군자(君子)로서 부끄러워하는 바이나 그러나 역시 나라를 가진 자에게는 없을 수 없는 것이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일자열전(日者列傳)과 구책 열전(龜策列傳)과 창편전(倉扁傳)을 세운 이래로 후세의 작사자(作史者)들이 모두 방기전(方技傳)을 술(述)하였음은 어찌 이 뜻이 아니리요? 방기전(方技傳)을 짓는다. 김위제(金謂) 김위제(金謂)는 숙종(肅宗) 원년(元年)에 위위승 동정(衛尉丞同正)이 되었다. 신라 말에 도선(道詵)이란 승(僧)이 있어 .. 더보기 고려사 우애전 서문 - 고려의 효도, 우애 관련 사료 고려사 우애전 서문 - 고려의 효도, 우애 관련 사료 효도와 우애는 사람의 항성(恒性)인데 세상의 풍교(風敎)가 쇠퇴하면서부터 백성이 그 본성(本性)을 상실한 자가 많아졌다. 그러므로 이에 힘을 다한 자가 있으면 표창하여 권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고려(高麗) 5백년 간에 효우(孝友)로써 사책(史冊)에 쓰이고 정표에 나타난 자가 10여 인이므로 효우전(孝友傳)을 짓는다. 문충(文忠) 문충은 세계(世系)가 자세하지 않으나 어머니를 섬김에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오관산(五冠山) 영통사(靈通寺)의 마을에 살아 서울에서 30 리 떨어져 있었다. 봉양을 위하여 봉록(俸祿)을 받고 벼슬하매 아침에 나가고 저녁에 돌아오면 면전에 고하고 정성(定省)하여 조금도 쇠멸함이 없었다. 그 어머니의 늙음을 탄식하여 목계가를 지.. 더보기 고려사 열녀전 서문 - 고려의 여성 관련 사료 고려사 열녀전 서문 옛적에 여자가 나면 보모(傅姆)의 가르침이 있고 성장하면 동사(史)의 가르침이 있었다. 그러므로 집에 있어서는 현녀(賢女)가 되고 남에게 시집가면 현부(賢婦)가 되며 변고(變故)를 만나면 열부(烈婦)가 되었다. 후세(後世)에는 부훈(婦訓)이 규방(閨房)에 미치지 못하였으므로 탁연(卓然)히 자립하여 난(亂)에 임(臨)하여 백인(白刃)을 무릅쓰고 사생(死生)으로써 그 지조(志操)를 바꾸지 않는 것은 아아! 가(可)히 어렵다고 하겠기에 을 짓는다. 호수(胡壽) 처 유씨(兪氏) 호수(胡壽)의 처(妻) 유씨(兪氏)는 그 세계(世系)가 자세하지 않다. 고종(高宗) 44년에 호수(胡壽)가 나가 맹주(孟州)의 수령이 되었을 때에 맹주(孟州)에서는 병란(兵亂)을 피하여 해중(海中)에 우거(寓居)하였었.. 더보기 신라의 지배층 - 성골과 진골이란? 신라 지배층 - 진골과 성골 1. 진골이란? 신라가 중앙집권화되는 과정에서 족장세력으로 영역을 가지고 있던 세력을 체제에 끌어들이면서 이라는 새로운 계급이 성립하였습니다. 이들 은 신라의 지배집단으로서의 우월성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신라 사회가 초기의 소국을 벗어나 체제 정비를 하는 지증-법흥-진흥왕기를 거치면서, 지배층의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가야계 귀족들이 신라에 유입되었고, 진흥왕의 영토확장으로 북방계 귀족들도 신라체제에 흡수됩니다. 그리고, 삼국통일기에 이르면, 족의 증가로 인하여 골족들의 특별한 표지가 필요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 시기에 내물 마립간계 후손들은 자신들의 혈통을 다른 지배집단과 구분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위치를 격상시킬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즉, 차별화된 지배.. 더보기 우리가 완전히 잘못알고 있었던 고대 식읍과 녹읍의 개념 정리 우리가 잘못알고 있던 고대 사회에서의 식읍과 녹읍제도 1. 고대 사회에서 식읍이란 무엇인가? 식읍이란, 전쟁 등을 통하여 공이 있는 자에게 내린 토지를 말합니다. 설명하자면, 왕실의 성원, 대공신 등 아주 소수의 일부 공훈자들에게 특별 급여로 땅을 지급하는 것을 말하죠. 땅을 지급한 대신 왕실을 번병하여 지키고, 국왕에게 충성하라는 의무를 부여합니다. 즉, 식읍은 권리와 의무가 동시에 부여된 땅입니다. 식읍으로 받은 땅에서는 인민, 토지 등을 포괄적으로 지배할 수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광역 지배가 허용된 것이지요. 사실 식읍은 실제 땅을 내려주는 경우도 많았지만, 초기 국가시대에 소국의 족장들에게 원래 영토의 기득권을 허용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원래 소국 점유지에 대한 모든 권리를 양도한 것으로 .. 더보기 유럽의 오만 : 중세 유럽사를 유럽인 스스로 <암흑기>로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 유럽 각국사 : 중세봉건왕정의 발전 개요 중세봉건왕정의 발전 이번 포스트에서는 중세 유럽 각국사의 발전을 포스팅하기 위한 배경 지식으로서 중세 봉건 왕정이 성립된 배경을 간략히 다루어 봅니다. 아주 짧게 포스팅 하고, 각 국가별로 여러 파트로 나누어서 유럽 중세 각국사를 다뤄보겠습니다. 이 포스팅과 관련된 중세 각국의 역사에 관련된 글들은 http://historia.tistory.com/category/서양사이야기/중세각국사 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1. 중세 봉건 왕조는 왜 절대주의 국가가 아닌가? 중세 봉건 왕조는 프랑크 왕국의 분열 이후, 각 지역에서 정치적으로 성장한 국가들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들 국가는 근대적 의미의 가 아니라, 각 지역에서 권력 유지를 하기 위한 국가이고, 국민의식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봉건적 왕조라는 말은 일단,.. 더보기 삼국유사 김현과 호랑이 사료 삼국유사 김현과 호랑이 사료 신라 풍속에 해마다 2월이면 8일부터 보름까지 도성의 남녀들이 흥륜사의 전탑을 도는 복회(福會)를 행했다. 원성왕 때, 김현(金現)이라는 총각이, 밤 깊도록 혼자 탑돌이를 하는데, 한 처녀가 염불을 하면서 그의 뒤를 따라 서로 눈이 맞아 탑돌이를 마치고 정을 통했다. 처녀가 돌아가려 하자 김현이 한사코 따라 나서 산기슭의 초가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처녀가 할머니에게 사실대로 말하자 형제들이 해칠지 모른다고 숨도록 하였다. 잠시 후, 세 마리 호랑이가 나타나 사람 냄새가 난다며 입맛을 다시는데, 할미 와 처녀가 헛소리를 한다고 꾸짖었다. 이 때, 하늘에서 "너희들이 많은 목숨을 즐겨 해쳤으니, 한 놈을 죽여 벌을 주리라."하는 소리가 들려와 두려움에 떠는데, 처녀가 오빠 호랑.. 더보기 이전 1 ··· 117 118 119 120 121 122 123 ··· 22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