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풀이 썸네일형 리스트형 고려의 향리 고려의 향리 신라말에는 고을의 토인(土人, 토착세력)이 능히 지방관을 호령할 수 있었다. 고려가 통일 후에 이들에게 직호를 내리고 그 고을 일을 맡아보게 하니, 고을 백성들을 다스리는 자들을 호장(戶長)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 자제는 서울에 머물게 하여 인질로 삼고 나라에서 지방관을 보내어 감독하였는데, 성종 때에 이르러 지방관으로 하여금 호장을 통제하게 하고 신분을 강등하여 향리로 만들었다. 이 글에 대한 참고사항 1. 이 글에 대한 관련 사료는 이 사이트 검색창에서 자유롭게 검색가능합니다.(관련 검색어로 검색하세요) 2. 이 글을 운영자 허락없이 가져갈 경우 티스토리에서 제공하는 기능이 자동으로 삽입됩니다. 3. 네모칸이나 밑줄이 삽입된 단어를 클릭할 경우 사이트 내 연계된 포스트들이 자동 출력됩니다.. 더보기 공민왕 대의 관제 개편 사료 - 고려사 - 공민왕 대의 관제 개편 사료 - 고려사 - (가) 충목왕이 즉위하여 공민왕을 강릉부원대군으로 봉하였다. 층목왕이 돌아가시니 고려에서 왕을 세우고자 하였으나, 원에서 충정으로 왕을 계승케하고 인하여 (공민)왕을 머믈러 숙위(궁궐에 머물러 지키는 것)케 하였다. 처음에 충숙왕이 공민왕을 윤택에게 부탁한 일이 있었으므로 충정 원년에 윤택이 이승로와 더불어 글을 (원의) 중서성에 올려 왕을 세우기를 청하였다. 이 해에 왕이 노국공주에게 장가들었는데 , 3년 10월에 원에서 국왕을 삼았다. (나) 공민왕 5년 3월, 기씨의 족속이 후(기철의 누이 동생이 원순제의 후궁)의 권세를 믿고 횡포하매 어떤 사람이 밀고하기를 ‘기철이 은밀히 쌍성의 반란민과 작당하여 반역을 도모하 나이다.’하니, 왕이 환조(이성계의 부친인 .. 더보기 이자겸의 난 관련 사료 이자겸의 난 이자겸이 다른 성씨가 비(妃)가 되어 권력과 총애가 나뉘어질까 두려워하여 셋째 딸을 왕비로 바쳤으며, 넷째 딸도 왕에게 바쳤다. 왕은 이자겸을 제거하고자 신하들을 불러 논의하였으나, 이자겸의 심복이었던 척준경이 화가 나서 칼을 빼어 들고 군사들로 하여금 활을 쏘면서 공격을 하니 화살이 왕 앞에까지 날라 왔다. 밤에 왕이 산호정까지 도망을 하였는데 따라오는 자들은 10여인에 불과하였다. 왕이 피해를 입을까 두려워하여 글을 지어 자겸에게 선위(禪位)할 것을 청하였다. 고려사, 이자겸 열전 이 글에 대한 참고사항 1. 이 글에 대한 관련 사료는 이 사이트 검색창에서 자유롭게 검색가능합니다.(관련 검색어로 검색하세요) 2. 이 글을 운영자 허락없이 가져갈 경우 티스토리에서 제공하는 기능이 자동으로 .. 더보기 최승로의 시무 28조 최승로의 시무 28조 1. 요지를 가려 국경을 정하고, 그 지방에서 활 잘 쏘고 말 잘 타는 사람을 뽑아 국경을 맡도록 하소서. 2. 불사를 많이 베풀어 백성의 고혈을 짜내는 일이 많고 죄를 지은 자가 중을 가장하고, 구걸하는 무리들이 중과 서로 섞여 지내는 일이 많습니다. 원컨대 국왕은 체통을 지키소서. 3. 우라 왕조의 시위하는 군사들은 태조 때에는 그 수효가 많지 않았으나, 광종이 풍채가 좋은 자를 뽑아 시위케 하여 그 수효가 많아졌습니다. 태조 때의 법을 따라 날쌔고 용맹스러운 자만 남겨 두고 그 나머지는 돌려보내어 원망이 없도록 하소서. 4. 왕께서 미음과 술과 두부 국으로 길가는 사람에게 보시하나, 적은 은혜는 두루 베풀어지지 못합니다. 상벌을 밝혀 악을 징계하고 선을 권장한다면 복을 오게 할.. 더보기 사심관 제도와 기인제도 관련 사료 사심관 제도와 기인제도 관련 사료 (가) 태조 18년에 신라왕 김부(경순왕)가 항복하였으므로 신라국을 없애고 김부를 경주의 사심관(事審官)으로 삼아 부호장 이하 관직자들의 일을 살피도록 하였다. 이에 여러 공신에게도 이를 본받아 각각 그 고향의 사심관으로 삼으니, 사심관은 이에서 비롯되었다. 성종 15년에 500정(丁) 이상의 주(州)에는 4명, 300정 이상의 주에는 3명, 300정 이하에는 2명의 사심관을 두도륵 하였다. 현종 초년의 판(왕이 법제적으로 결정한 문장)에는 아버지와 친형제가 호장이 된 자는 사심관으로 임명하여 보내지 못하게 하였다. 현종 10년의 판에는 모든 사심관을 파견함에는 기인과 백성의 여론을 따를 것이로되, 백성들의 추천함이 비록 작더라도 조정에서 고관대직을 맡아본 사람이나 여러.. 더보기 고려시대의 화폐종류 고려시대의 화폐종류 화폐의 명칭 제작 연대 비 고 건원중보 성종 15년 최초의 화폐 은병(활구) 숙종 6년 의천의 건의 해동통보 숙종 6년 삼한통보 숙종 7년 동국통보 숙종 7년 쇄은 충렬왕 18년 소은병 충혜왕 2년 저화 공양왕 2년 최초의 지폐 이 글에 대한 참고사항 1. 이 글에 대한 관련 사료는 이 사이트 검색창에서 자유롭게 검색가능합니다.(관련 검색어로 검색하세요) 2. 이 글을 운영자 허락없이 가져갈 경우 티스토리에서 제공하는 기능이 자동으로 삽입됩니다. 3. 네모칸이나 밑줄이 삽입된 단어를 클릭할 경우 사이트 내 연계된 포스트들이 자동 출력됩니다. 4. 관련 글 모음 방 : http://historia.tistory.com/category/한국사사료모음방/8.고려시대사료 더보기 고려시대의 교육기관 고려시대의 교육기관 (가) 서경에 행차하여 처음으로 학교를 세웠다. 왕이 정악에게 서경에 머물러 서학박사(書學博士)가 되게 하고 따로 학원을 세워 서경 육부에서 생도를 모아 가르치게 하였다. 뒤에 성과가 좋다는 말을 듣고 비단을 내려 권장하고, 또 곡식 100석을 내려 學寶를 삼게 하였다. (나) 12목에 경전에 능통하고 책을 많이 읽은 선비들을 모아 경학박사(經學博士)와 의학박사를 각각 한 사람씩 보내 가르치게 하였다. (다) 무릇 과거에 나아가려는 자는 모두 9제(薺)에 적을 두니, 이를 문헌 공도라 불렀다. 또 유신(儒臣)으로 도(徒)를 세운자가 11명이 있으니, 문헌공 최충과 아울러 세칭 12도라 하였지만, 최충의 도가 가장 성하였다. (라) 안향은 학교가 날로 쇄함을 근심하여 “지금 養賢庫가 메.. 더보기 고려사에 나오는 무신집권기 신분해방운동 고려사에 나오는 무신집권기 신분해방운동 (가) 명종23년 7월 남적이 봉기하였다. 큰 도적인 김사미는 운문에 웅거하고, 효심은 초전에 웅거하며 주현을 노략질하였다. 국왕이 듣고 근심하여 대장군 김존걸 등을 보내어 치게 하였으나 도리어 패퇴하였다. 24년 2월에 괴수 김사미가 스스로 투항하였고 그 후 참하였다. 김사미, 효심의 난 (나) 권세가들이 사람을 시켜 조세를 징수하는데 한 토지에서 두세번에 걸쳐 징수하여 백성들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면서도 호소할 곳이 없다. 그들의 원망과 분노가 하늘을 찌르니 화의 근원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운문 초적의 난 (다) 이미 우리 마을(공주 명학소)을 현으로 승격하고 수령을 설치하여 안무하더니, 이제 와서 다시 군대를 발하여 나의 어머니와 처자를 붙잡는 의도가 어.. 더보기 최충헌의 봉사 10조 최충헌의 봉사 10조 1. 왕은 참위설을 믿어 새로 지은 궁궐에 들지 않고 있는데, 길일을 택하여 들어갈 것. 2. 근래 관제에 어긋나게 많은 관직을 제수하여 녹봉이 부족하게 되었으니 원제도에 따라 관리의 수를 줄일 것. 3. 근래 벼슬아치들이 공․사전을 빼앗아 토지를 겸병함으로써 국가의 수입이 줄고 군사가 부족하게 되었으니, 토지대장에 따라 원주인에게 돌려줄 것. 4. 세금을 거두는데 향리의 횡포와 권세가의 거듭되는 징수로 백성의 생활이 곤란하니 유능한 수령을 파견하여 금지케할 것. 5. 근래 각 지역의 관리들이 공물 진상을 구실로 약탈 행위를 일삼고 사취하기도 하니 공물 진상을 금할 것. 6. 지금 승려 한 두 사람이 궁중에 무상 출입하고 왕이 내신으로 하여금 불사(佛事)를 관장하여 곡식을 민간에게 .. 더보기 고려 시대 전시과 관련 사료 모음 고려 시대 전시과 관련 사료 모음 (가) 처음으로 그는 역분전을 정하였다. 통합시의 조신(朝臣), 군사들에게 관계(官階)는 논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성행의 선악과 공로의 대소를 보아 지급하였는데 차등이 있었다. 식화지, 전제 (나) 고려의 전제는 대개 당나라의 제도를 모방하여, 개간된 토지의 넓이를 총괄해서 그 기름 지고 메마른 것을 나누어 문무 백관으로부터 부병(군역을 책임지는 장정), 한인(관리 신분이면서 벼슬을 못하고 있는 자)에게까지 과(땅을 나누어 주는 등급)에 따라 전지를 주지 않음이 없었고, 또 그 과에 따라 시지(땔감을 얻는 땅)을 주었는데, 이를 전시과라 한다. 죽은 다음에는 모두 나라에 다시 반납해야 한다. 그러나 부병만은 나이 20세가 차면 비로소 땅을 받고 60세가 되면 반환하는데, .. 더보기 이전 1 ··· 120 121 122 123 124 125 126 ··· 22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