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퀴즈풀이

중세 도시를 이끌어 간 경제의 주체 : 길드 중세 도시를 이끌어 간 경제의 주체 : 길드 이번 포스트에서는 이전 포스트였던 상업발달 부분, 중세 도시발달 부분과 연결되는 포스트로서, 중세 도시 경제의 주체였던 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할까 합니다. 1. 길드가 생겨난 이유는? 길드의 발생 원인은 중세 도시들이 성립된 원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중세의 도시들은 그 성립자체가 군주의 특허장을 받아 자치권을 획득하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도시민들은 도시에 애착을 가지고 서로 뭉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시의 분열은 곧 도시민의 몰락을 뜻하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이러한 도시들은 곧 상업과 수공업을 기반으로 하였기 때문에 상공업이 최소한 유지되어야지만 도시민들은 버틸 수가 있었습니다. 상공업이 파탄에 이르는 순간 그 도시는 봉건영주에게, 혹은 .. 더보기
11-14c 중세사 : 중세 시대 도시가 발달하기 시작하다. 11-14c 중세사 : 중세 시대 도시가 발달하기 시작하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전 포스트와 연결되는 내용으로, 상업발달로 인한 도시 경제의 활성화와 이것이 14-15세기에 미치는 영향을 간단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1. 도시가 생겨나다 도시가 출연하게 된 배경은 11세기 이후 노르만, 마자르, 이슬람과 같은 외부 세력이 유럽에서 물러난 뒤 중세 정치, 경제가 안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정치, 경제의 안정은 유럽 사회의 개간, 개척 사업의 신호탄이었고, 유럽사회는 이제 생산력이 증가하고 시장이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상업이 발전 속에서 중세 도시의 발달이 촉진되는 것입니다. 중세 도시라는 것은 상인들이 모이는 거류지에서 출발합니다. 상인들은 중세 장원, 장원의 교회, 교회의 교구, 영주의 성곽 등에서 머물.. 더보기
화랑도의 기원과 역할, 그리고 진흥왕의 화랑도 개편 목적 분석 진흥왕대 화랑도의 개편 -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1. 화랑도에 관한 사료부터 읽어보자! 진흥왕은 천성이 풍미하여 신선을 숭상하고, 민가의 아름다운 처녀를 가려서 원화로 삼았다. 원하는 무리를 모아 그 중에서 인물을 뽑고 효제와 충신을 가르치기 위한 것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요체였다. 이에 남모와 교정 낭자를 원화로 뽑으니, 모여든 무리가 300-400 명이나 되었다. 교정은 남모를 질투한 나머지 술자리를 베풀어 남모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한 후에 몰래 북천으로 메고 가서 돌을 매달아 빠뜨려 죽였다. 무리는 남모가 간 곳을 알지 못해 슬피 울면서 헤어졌다. 이로 인하여 준정은 사형에 처해지고 무리는 흩어지게 되었다. 그러자 왕은 영을 내려 원화를 폐지하였다. 그 뒤 여러 해만에 왕은 국가를 흥하게 하려면.. 더보기
유럽 중세사 10 - 중세 시대 상업이 발달하기 시작하다 중세 시대 상업이 발달하기 시작하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중세시대가 암흑기가 아니라, 상업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상업발달의 배경, 내용을 정리하고 상업 도시가 어떤 면을 띄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죠. 1. 농업발달이 상업 발달을 초래하다. 보통 서양사 학자들은 중세 11세기 부터를 한 시기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용어 이해가 잘 안되더군요. 부활이란 말은 이전에도 전성기가 있었다는 뜻인데, 언제 상업이 전성기였는지.... 그리스인가? 로마인가? 뜬금없는 부활이라는 말이 맘에 안들어서 여기서는 이라는 용어를 키워드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상업이 중세에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11세기입니다. 이전의 중세사회는 상업이 발달한 적이 없었죠. 4세기 게르만의 이동, 7.. 더보기
한나라 : 유교를 국교화하여 체계를 정립하다 한나라 : 유교를 국교화하여 체계를 정립하다 이번 장에서는 한나라 시기의 가장 큰 업적인 한무제의 유교 국교화를 중심으로 한나라 시기 유교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다루어 보겠습니다. 1. 한나라 초기의 유교 사상 한의 초기, 건국자인 유방은 유교에 무지했습니다. 그리고 건국집단인 유협집단도 수준낮은 의리, 충성 등의 기초적인 이념만으로 뭉친 협객집단이었습니다. 따라서 건국초의 유방은 저명한 학자인 에게 학문적 교양을 배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는 유명한 말을 하면서 유방에게 유교이념을 받아들일 것을 권합니다. 그러나, 육가의 말을 듣고 공자묘를 만든 유방도 아직 유교이념에는 무지했습니다. 그리고, 유방이 죽은 뒤 세력을 잡은 유방의 부인 여씨 일족은 유교를 왜 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초기의 한에서는 유가보.. 더보기
한나라의 문화 : 동아시아 문화권으로 나아가다 한나라의 문화 : 동아시아 문화권으로 나아가다 이번 장에서는 한나라 한무제 이래 중국 문물이 동아시아로 전파되는 계기를 아주 간단히 다루어 보겠습니다. 1. 한나라 시기 문화권의 대립 중국 고대시기에 아시아의 문화권은 큰 틀을 말하지만 4개로 나누어 보곤 합니다. 하나는 중국문명(동아시아 문화권), 다른 하나는 인도문명(남아시아 문화권), 다음은 페르시아 문명(서아시아 문화권), 마지막으로 흉노 문화권(북방문화권)입니다. 이중 고대 중국 문화권이 가장 치열하게 싸우고, 만나야 했던 문화는 바로 북방 문화권입니다. 이 때의 북방 문화권은 흉노로 대표되는 유목문화권으로서 중국과 대등한 세력을 갖춘 하나의 독자세계였습니다. 우리는 보통 아시아 문화권을 중심으로만 파악하지만, 실제 아시아 문화권, 심지어 중국 .. 더보기
중국사 이야기 41 - 한무제의 국가재정 장악 정책 중국사 이야기 41 - 한무제의 국가재정 장악 정책 중국 한나라의 이야기는 절반 이상이 한무제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고대 사회에서 황제지배체제를 완성하였고, 그 과정에서 중국의 유교, 불교, 율령, 한자 체제를 정비하여 동아시아 문화권의 기틀을 잡았습니다. 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면에서 중국 고대의 전통을 정리하고, 이후 중국체제의 기반을 잡았다는 점에서 그의 업적들을 알면 중국 전반의 제도와 사상이 눈에 잘 들어옵니다. 이번 장에서는 간략히 한무제의 재정 장악 정책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황실재정은 국가 재정에 포함되지 않는다. 한무제는 중국 역사상 최초로 황제지배체제를 완성하였습니다. 물론, 이전부터 진시황이 시도한 정책이긴 하지만 진시황은 실패했었고, 실제 황제지배체제를 완성한 사람은.. 더보기
박지원의 양반전 박지원의 양반전 양반이란 사족(士族)을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정선군(旌善郡)에 한 양반이 살았다. 이 양반은 어질고 글읽기를 좋아하여 매양 군수가 새로 부임하면 으레 몸소 그 집을 찾아와서 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이 양반은 집이 가난하여 해마다 고을의 환자를 타다 먹은 것이 쌓여서 천석에 이르렀다. 강원도 감사(監使)가 군읍(郡邑)을 순시하다가 정선에 들러 환곡(還穀)의 장부를 열람하고 대노해서 "어떤 놈의 양반이 이처럼 군량(軍糧)을 축냈단 말이냐?" 하고, 곧 명해서 그 양반을 잡아 가두게 했다. 군수는 그 양반이 가난해서 갚을 힘이 없는 것을 딱하게 여기고 차마 가두지 못했지만 무슨 도리도 없었다. 양반 역시 밤낮 울기만 하고 해결할 방도를 차리지 못했다. 그 부인이 역정을 냈다. "당신은 평생 .. 더보기
(사료) 대한민국 헌법 대한민국 헌법 前文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자유민주적기본질서를더욱확고히하여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 더보기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 (1991.2.13)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 (1991.2.13) 1992년 2월 19일 발효 -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 (전문) 남과 북은 분단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뜻에 따라 7.4 남북 공동 성명서에서 천명된 조국 통일 3대원칙을 재확인하고 정치, 군사적 대결 상태를 해소하여 민족적 화해를 이룩하고 무력에 의한 침략과 충돌을 막고 긴장 완화와 평화를 보장하며 다각적인 교류 협력을 실현하여 민족 공동의 이익과 번영을 도모하며, 쌍방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정 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평화 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할 것을 다짐하면서,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