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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

위략 위 략 서진 무제 태강 연간에 위의 낭중을 지낸 어환이 사찬한 삼국시대 위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사서이다. 원본은 산실되어 전하지 않는다. 당서, 경적지 등에 그 권수가 38권, 신당서, 예문지에는 50권이라고 되어 있으며, 삼국지, 사기색은, 문선주, 예문유취, 태평어람, 한원 등에 그 일문이 실려있다. 청의 장봉일이 이것들을 집대성하여 위략집본 25권을 편찬하였다. 더보기
양서 양 서 총 56권. 본기(本紀) 4(6권). 열전(列傳) 49(50권). 중국의 24사(史) 중의 하나로서 남조(南朝) 양나라의 사대사적(四代事蹟)을 기록한 사서(史書)이다. 양나라의 역사를 다룬 책으로는 심약(沈約) ·주흥사(周興嗣) ·포행경(飽行卿) ·사호(謝昊) 등이 편찬한 《양사(梁史)》와 유번(劉?) ·하지원(河之元)이 편찬한 《양전(梁典)》 등이 있었으나, 기전체(紀傳體)로 된 것은 없었다. 이 책은 원래 요사렴의 부친 찰(察)이 진(陳)나라의 사부낭중(祠部郞中)에 있을 때부터 시작한 것으로, 589년 진나라가 망하여 중단하였다가, 수(隋)나라 문제(文帝) 때 이르러 다시 계속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하였다. 찰이 죽자 이에 요사렴은 부친의 사업을 계승하여 개인적으로 628년에 편찬을 마쳤고, 다음.. 더보기
신증동국여지승람 신증동국여지승람 목판본. 55권 25책. 조선은 건국 후 통치상의 필요에서 지리지 편찬의 중요성을 통감, 세종의 명에 따라 맹사성(孟思誠) ·신색(申檣) 등이 1432년(세종 14) 《신찬팔도지리지(新撰八道地理志)》를 찬진(撰進)하였다. 그 후 명나라에서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가 들어오자, 양성지(梁誠之) ·노사신(盧思愼) ·강희맹(姜希孟) ·서거정(徐居正) 등이 성종의 명으로 이 체제를 본따고 《신찬팔도지리지》를 대본으로 하여 1481년(성종 12)에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50권을 완성하였다. 이를 다시 1486년에 증산(增刪) ·수정하여 《동국여지승람》 35권을 간행하고, 1499년(연산군 5)의 개수를 거쳐 1530년(중종 25)에 이행(李荇) ·홍언필(洪彦弼)의 증보에 의해 이 책의 .. 더보기
신당서 신당서 《신당서》는 1044~1060년까지 17년에 걸쳐 완성하였다. 구양수(歐陽修) ·송기(宋祁) 등이 고쳐 편찬하였고, 재상 증공량(曾公亮)이 총재(總裁)하였다. 는 고조 1권, 태종 1권, 고종 1권, 측천순성무황후(則天順聖武皇后) 및 중종 1권, 예종 ·현종 1권, 숙종 ·대종 1권, 덕종 ·순종 ·헌종 1권, 목종 ·경종 ·문종 ·무종 ·선종 1권, 의종 ·희종 1권, 소종 ·애종 1권을 합쳐서 10권, 는 예악지(禮樂志) 12권, 의위지(儀衛志) 1권, 거복지(車服志) 1권, 역지 6권, 천문지 3권, 오행지(五行志) 3권, 지리지(地理志) 7권, 선거지 2권, 백관지(百官志) 4권, 병지(兵志) 1권, 식화지(食貨志) 5권, 형법지 1권, 예문지(藝文志) 4권을 합쳐서 50권, 는 재상(宰相.. 더보기
수서 수 서 85권. 636년(태종 10) 당(唐)나라에서 장손무기(長孫無忌) ·위징(魏徵) 등이 태종(太宗)의 명을 받아 제기(帝紀) 5권, 열전(列傳) 50권, 지(志) 30권으로 나누어 편찬하였다. 이 중 부분은 남조(南朝)의 양(梁) ·진(陳), 북조(北朝)의 북제(北齊) ·북주(北周) 및 수 등 5대(代)의 사실을 기록한 별개의 서책을 후에 편입시켜 놓은 것이다. 중의 에는 수나라까지 전래된 서책명을 열거해 놓았기 때문에 유용하다. 더보기
송서 송 서 《제기(帝紀)》 10권, 《지(志)》나라 30권, 《열전(列傳)》 60권, 도합 100권. 487년 남제(南齊) 무제(武帝)의 칙명(勅命)에 따라 심약(沈約)이 488년에 편찬을 완성한 것으로 송나라 60년(420∼478)의 역사를 기록하였으며, 중국의 사서(史書) 중 가장 권위 있는 25정사에 들어간다. 이 사서는 이미 462년 송나라 효무제(孝武帝)의 칙명에 따라 서원(徐爰) 등이 편찬한 것에, 그 뒤의 역사 등을 보충하여 완성한 것이다. 더보기
진수의 삼국지 삼국지 진(晉)나라의 학자 진수(陳壽:233∼297)가 편찬한 것으로,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와 함께 중국 전사사(前四史)로 불린다. 위서(魏書) 30권, 촉서(蜀書) 15권, 오서(吳書) 20권, 합계 65권으로 되어 있으나 표(表)나 지(志)는 포함되지 않았다. 위나라를 정통 왕조로 보고 위서에만 를 세우고, 촉서와 오서는 의 체제를 취했으므로 후세의 사가(史家)들로부터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촉한(蜀漢)에서 벼슬을 하다가 촉한이 멸망한 뒤 위나라의 조(祚)를 이은 진나라로 가서 저작랑(著作郞)이 되었으므로 자연 위나라의 역사를 중시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 때문에 후에 촉한을 정통으로 한 사서(史書)도 나타났다. 그러나 찬술한 내용은 매우 근엄하고 간결.. 더보기
일연의 삼국유사 삼국유사 1999년 11월 19일 부산유형문화재 31호로 지정되었다. 활자본이며, 5권 2책으로 구성되었다. 편찬 연대는 미상이나, 1281∼1283년(충렬왕 7∼9) 사이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현재까지 고려시대의 각본(刻本)은 발견되지 않았고, 완본으로는 1512년(조선 중종 7) 경주부사(慶州府使) 이계복(李繼福)에 의하여 중간(重刊)된 정덕본(正德本)이 최고본(最古本)이며, 그 이전에 판각(板刻)된 듯한 영본(零本)이 전한다. 본서는 김부식(金富軾)이 편찬한 《삼국사기(三國史記)》와 더불어 현존하는 한국 고대 사적(史籍)의 쌍벽으로서, 《삼국사기》가 여러 사관(史官)에 의하여 이루어진 정사(正史)이므로 그 체재나 문장이 정제(整齊)된 데 비하여, 《삼국유사》는 일연 혼자의 손으로 씌어진 이른바 야.. 더보기
김부식의 삼국사기 삼국사기 1145년(인종 23) 국왕의 명령을 받은 김부식의 주도 아래 최산보(崔山甫) 등 8명의 참고(參考)와 김충효(金忠孝) 등 2명의 관구(管勾)가 편찬하였다. 이들은 자료의 수집과 정리에서 함께 작업했지만, 〈진삼국사기표(進三國史記表)〉와 머리말, 논찬(論贊) 및 사료의 선택, 인물의 평가 등은 김부식이 직접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진삼국사기표〉에는 "사대부가 우리 역사를 잘 알지 못하니 유감이다. 중국 사서는 우리나라 사실을 간략히 적었고, 《고기(古記)》는 내용이 졸렬하므로 왕·신하·백성의 잘잘못을 가려 규범을 후세에 남기지 못하고 있다"고 하여 편찬 동기를 기록하고 있다. 구성은 크게 본기(本紀) 28권, 지(志) 9권, 연표(年表) 3권, 열전(列傳) 10권으로 이루어졌다. 그동안.. 더보기
북사 북사 당나라의 학자 이연수(李延壽) 편찬. 본기(本紀) 12권, 열전(列傳) 88권 합계 100권. 중국 24사(二十四史)의 하나로서, 남사(南史)에 비하여 서사(敍事)가 매우 상밀(詳密)하다. 열전 중에는 《고구려전》 《백제전》 《신라전》 《물길전(勿吉傳)》 《거란전(契丹傳)》 등이 있어 한국 역사 연구에 참고자료가 된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