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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

백제인의 형벌 제도 백제의 형벌 제도 부인이 간음을 하면 그 여자를 남편 집의 종으로 삼는다. - 주서 이역열전 백제 - 사람을 죽인 사람은 노비 3명을 바쳐야만 죄를 면한다. - 구당서 동이열전 백제 - 형벌을 보면 모반하거나 전쟁에서 퇴각한 자 및 살인을 한 사람은 참수하였다. 도적질한 사람은 유배시키고 도적질한 물품의 2배를 물어 내게 하였다. 부인으로서 간통죄를 범하면 남편 집의 계집 종으로 삼았다. - 주서 이역열전 백제 - 사료해석 : 교과서에 나와있는 백제인의 형벌 죄입니다. 1책 2배 보상이라던가, 전쟁에 퇴각하면 참수한다던가라는 내용 등이 교과서에 실려있습니다. 더보기
백제의 농법 - 두락법 백제의 농업 자료 2월, 나라 남쪽 주군에 영을 내려 남쪽 습한 곳에 논을 만들게 하였다. - 삼국사기 백제본기 제l 다루왕 6년 - 2월에 담당 관리에게 명하여 제방을 수리하게 하고, 3월에 다시 명령을 내려 농사를 권장했다. - 삼국사기 백제본기 제2구수왕 9년 - 나라 사람들에게 명하여 남쪽 평야에다 논을 개간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백제본기 제2고이왕 9년 - 비로소 벽골지를 만드니 둑의 길이가 1.800보였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2홀해 이사금21년 - 정월, 명령을 내려 제방을 튼튼히 하고 국내의 떠돌아다니는 자들을 모아서 농사를 짓게 하였다. - 삼국사기 백제본기 제4무령왕 10년 - 4월, 우두성에서 사냥을 하다가 우박을 만나 중지하였다. 5월, 가물었다. 왕은 좌우와 더불어 임유각에.. 더보기
일본으로의 불교 전파 - 노리사치계 노리사치계 백제 성명왕(聖明王) 이 서부(西部)의 희씨(姬氏) 달솔(達率)인 노리사치계(怒唎斯致契) 등을 보내어 석가불금동상 1구와 번개(幡蓋) 약간, 경론(經論) 약간 권을 바쳤다. 따로 표를 올려 불법을 유통시키고 예배하는 공덕을 다음과 같이 찬양하였다. "이 법은 여러 법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입니다. 이해하기 어렵고 들어가기도 어려우니, 주공(周公)과 공자(孔子)라도 오히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법은 헤아릴 수 없고 끝이 없는 복덕(福德)과 과보(果報)를 생겨나게 할 수 있으며, 나아가 위 없는 보리(菩提)를 이루게 합니다. ··· 이로 말미암아 노리사치계를 보내어 황제의 나라를 받드니, 기내(畿內)에 유통하시어 부처가 '나의 법이 동쪽으로 흘러갈 것이다'라고 한 가르침을 이루십시요" - 니.. 더보기
백제 - 아직기와 왕인 아직기와 왕인 15년 가을 8월 임술의 첫 정묘일에 백제왕이 아직기를 보내어 좋은 말 2필을 바쳤다. 그래서 카루의 산비탈 위에 있는마구간에서 길렀는데, 아직기가 사육을 맡았다. 때문에 말 기르는 곳을 우마야사카라고 한다. 아직기는 또 경전(經典)을 잘 읽었으므로 태자인 우지노와키이라쯔코(?道稚郞子)의 스승으로 삼았다. 이 때 천황이 아직기에게 "혹 너보다 뛰어난 박사가 있느냐"고 물으니, 왕인(王仁)이란 자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카미쯔키노노키미(上毛野君)의 조상인 아라타와케(荒田別)과 카무나키와케(巫別)을 백제에 보내어 왕인을 불렀다. 16년 2월에 왕인이 왔다. 태자 우지노와키이라쯔코는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여러 전적(典籍)들을 배웠는데 통달하지 않음이 없었다. - 니혼쇼키 권 10, 응신천황 1.. 더보기
백제의 박사제도 사료 백제의 박사 제도 (응신천왕) 15년 8월 무신삭(戊戌朔) 정묘(丁卯)에 백제의 왕이 아직기(阿直伎)를 보내어 좋은 말 2필을 바쳤다. 경(輕)의 산비탈 부근에 있는 마굿간에서 길렀는데, 아직기에게 사육을 맡도록 했다. ... 아직기가 또한 경전을 잘 읽으므로 태자 토도추랑자(?道椎郞子)의 스승으로 삼았다. 이 때 천황이 아직기에게 묻기를 "혹시 너보다 뛰어난 박사가 또 있느냐"라 하니 대답하기를 "왕인(王仁)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매우 뛰어납니다"라 하였다. … 16년 2월에 왕인이 와서 태자 토도추랑자의 스승이 되었는데, 모든 전적(典籍)을 왕인에게서 배워 통달하지 않음이 없었다. 이른바 왕인은 서수등(書首等)의 시조이다. - 니혼쇼키 권 10, 응신천황 15, 16년- 백제는 … 오경박사(五經博士) .. 더보기
신라 건국 설화 - 김알지 설화 김알지 설화 탈해왕 9년(서기 65년) 봄 3월에 왕이 밤에 금성 서쪽 시림의 숲에서 닭우는 소리를 들었다. 날이 새기를 기다려 호공을 보내 살펴보게 하였더니, 금빛 나는 조그만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아래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돌아와서 아뢰자, 사람을 시켜 궤짝을 가져와 열어보았더니 조그만 사내아이가 그 속에 있었는데, 자태와 용모가 기이하고 컸다. 왕이 기뻐하며 좌우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하고는 거두어서 길렀다. 성장하자 총명하고 지략이 많았다. 이예 알지라 이름하고 금궤짝에서 나왔기 때문에 성을 김이라 하였으며, 시림을 바꿔 계림이라 이름하고 나라 이름으로 삼았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탈해이사금 9년조 - 영평 3년 경신 8월 4일에 호공이 밤에 월성 서리를 가다가 큰 빛이 시림 속.. 더보기
신라 건국 설화 - 석탈해 설화 석탈해 설화 탈해는 본래 다파나국(용성국, 정명국, 완하국, 화하국이라고도 함, 위치는 모름)에서 태어났는데, 그 나라는 왜국의 동북쪽 천리되는 곳에 있다. 앞서 다파나국이 여국왕의 딸을 맞아들여 아내로 삼았는데, 임신한 지 7년이 되어 큰 알을 낳았다. 왕이 말하기를 고 하였다. 여자는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비단으로 알을 싸서 보물과 함께 궤짝 속에 넣어 바다에 띄워 가는 대로 가게 맡겨 두었다. 처음에 금관국 바닷가에 이르렀으나 금관국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겨 거두지 않았다.(가락국기에는 탈해가 수로왕과 싸워 쫒겨났다고 전해짐) 다시 진한 아진포 어귀에 다다랐다. 이 때는 시조 혁거세가 왕위에 오른지 39년이 되는 해다. 그 때 바닷가에 있던 할멈이 줄을 끌어당겨서 해안에 매어놓고 궤짝을 열어보니 .. 더보기
건국설화 - 알영 설화 알영 이야기 혁거세서간 5년(기원전 53년) 봄 정월에 알영을 왕비로 삼았다. 이에 앞서 용이 알영정에 나타나 오른쪽 옆구리에서 여자아이를 낳았는데, 어떤 할멈이 보고서 이상히 여겨 거두어 키웠다. 우물 이름을 따서 아이 이름을 지었는데, 자라면서 덕행과 용모가 뛰어났다. 시조가 이를 듣고서 맞아들여 왕비로 삼으니 행실이 어질고 안에서 보필을 잘하였다. 당시 사람들을 둘을 이성(二聖)이라고 일컫게 되었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 시조혁거세거서간 5년조 - 사료해석 : 혁거세 설화가 담긴 삼국사기 기록의 뒷부분 알영이야기입니다. 해석은 윗 사료들과 동일한 부분이라 생략합니다. 더보기
박혁거세의 진한 육촌 사로국 설화 박혁거세 설화 진한 땅에 옛날에 6촌이 있었다. 전한의 지절 원년인 임자년 3월 초하루에 6부 시조들이 저마다 자제를 이끌고 알천 기슭 위에 모두 모여서 의논하여 말하기를 라고 하였다. 이에 높은 곳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 아래 나정 곁에 이상한 기운이 번개처럼 땅에 내려오더니 백마 한 마리가 꿇어앉아 절하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곳을 찾아가 보니 붉은 알이 하나 있고, 말은 사람을 보고 길게 울다가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알을 깨보니 모습이 단정하고 아름다운 사내아이가 나왔다. 이 아이를 경이롭게 여겨 동천에서 목욕시키니 몸에서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들이 따라 춤추며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이 청명하였기에 혁거세왕이라 이름하고 위호를 거슬감이라 하였다. 그 때 사람들이 서로 다투어 치하하며 라고.. 더보기
백제의 건국에 대한 중국측의 사료 백제의 기원 백제국은그 선조가 부여에서 나왔다. - 위서, 열전 백제 - 백제는 그 선대가 대개 마한의 속국이며 부여의 별종이다. 구태라는 사람이 대방에 나라를 세웠다. - 주서, 이역열전 백제전 - 백제국은 본래 부여의 별종이다. - 구당서, 동이열전 백제전 - 백제는 부여의 별종이다. - 신당서, 동이열전 백제 - 백제의 선조는 고구려국 출신이다. - 수서, 동이열전 백제 - 부여는 본래 현토에 속했는데 한나라 말에 요동태수 공손탁이 해동으로 세력을 크게 넓혀 외이를 위엄으로 복속시키자 부여왕 위구태가 소속을 바꿔 요동에 복속하였다. 이 때 고구려와 선비가 강성하였으므로 공손탁은 두 나라 틈에 끼어 있는 부여와 더욱 가까이 지내려고 위구태에게 일족의 딸을 시집보낸 것이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