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일야 방성대곡
시일야 방성대곡 是日也放聲大哭 日 伊藤侯가 寒國에 來하매, 愚我人民이 逐逐相謂曰, 侯는 平日東洋三國의 鼎足安寧을 自擔周旋하던 人이라, 今日 來韓함이 必也我國獨立을 鞏固히 扶植할 方略을 勵告하리라 하여, 自港至京에 官民上下가 歡迎을 不勝하였더니 天下事가 難測者 多하도다 千萬夢外에 五條件이 何로 自하여 提出하였는고, 此條件은, 非旦我韓이라 東洋三國의 分裂하는 兆漸을 釀出함인즉, 藤侯의 原初主意가 何에 在한고. 雖然이나 我大皇帝陛下의 强硬하신 聖意로 拒絶함을 不己하셨으니 該約의 不成立함은 想像컨대 伊藤侯의 自知自破한 바어늘, 噫, 彼豚犬不若한 所謂 我政府大臣者가, 營利를 希( )하고 假( )을 ( )法하여 逡順然( )( )然 賣國의 賊을 甘作하여, 四天萬疆土와 五百年 宗社를 他人에게 奉獻하고, 二天萬 生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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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삼국사기표
진삼국사기표 진삼국사기표(進三國史記表) 김부식(金富軾) 신 부식은 아뢰옵니다. 옛날에는 列國에서도 또한 각기 史官을 두어 그때그때의 일을 기록하였사옵니다. 그러므로 孟子는 말하기를, "晋의 乘과 楚의 도올과 魯의 春秋는 한가지다" 라고 하였사옵니다. 오직 이 海東의 삼국은 지나 온 연조가 장구하니, 마땅히 그 사실이 역사에 나타나 있어야 하겠으므로, 마침내 老臣에게 명하사 이를 편집하게 하신 것이오나, 스스로 돌아보매, 견식이 부족하와 어찌 할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성상 폐하께옵서는 唐堯의 文思를 타고 나시고, 夏禹의 勤儉을 체득하시와, 밤낮의 여가에 예전 事蹟을 널리 보시고 이르시기를, 오늘날의 學士 大夫가 五經 諸子의 서적과 秦, 漢 역대의 역사에 대하여는 간혹 두루 통하고 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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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민정 문서
통일 신라 민정 문서 (正倉院所藏 新羅民政文書) 이 고을의 사해점촌(沙害漸村)을 조사해 보았는데 지형은 산과 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을의 크기는 5,725步, 공연(孔烟) 수는 합하여 11戶가 된다. 계연(計烟)은 4 나머지 3이다. 이 가운데 중하연(仲下烟)이 4戶, 하상연(下上烟)이 2戶, 하하연(下下烟)이 5戶이다. 마을의 모든 사람을 합하면 147명이며, 이 중 전부터 계속 살아 온 사람과 3년간에 태어난 자를 합하면 145명이 된다. 정(丁)이 29명(奴 1명 포함), 조자(助子)가 7명(奴 1명 포함), 추자(追子) 12명, 소자(小子) 10명, 3년간에 태어난 소자(小子)가 5명, 제공(除公)은 1명이다. 여자의 경우 정녀(丁女) 42명(婢 5명 포함), 조여자(助女子) 9명, 소여자(小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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