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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히스토리아 역사 스토리

로마사 이야기 10 - 로마의 문화를 법률중심으로 아주 간략하기 맛보기! 로마의 문화 1. 문화적 특징 로마 문화의 특징하면 문화를 완성하여 고전문화를 완성한 것으로 보통 요약합니다. 그러나, 그 문화가 왜 실용적, 보편적인지는 자세히 따져보지 않았죠? 한번 천천히 볼까요? 로마의 문화가 실용적이라고 하는 것은 보통 토목, 건축, 법률 분야에서입니다. 로마는 제국화되고 영토가 넓어지면서,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 속주로부터 세금을 징세해야 하는 일이였습니다. 따라서 도로를 만들고, 해안가에 건물을 짓는 일이 중요했죠. 또, 새로운 영토를 확보하고 새로운 민족을 점령하게 되면서 기존 로마의 법을 수정해야 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따라서 법률의 개정도 로마가 영토확장하는데 있어 필수었습니다. 로마 문화가 보편적이라는 것은 헬레니즘 문화와 성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더의 헬레니즘.. 더보기
로마사 이야기 9 - 서로마 멸망의 원인을 생각해보자! 서로마 멸망의 원인을 추론해보자. 1. 서로마의 멸망 서로마의 멸망은 강력한 동방 전제군주정치를 실시했던 디오클레티아누스, 콘스탄티누스가 죽은 뒤 황제권의 약화에서 비롯됩니다. 콘스탄티누스가 죽은 뒤 배교자라 불린 율리아누스는 을 무시하고, 다시 고대 로마의 을 모시는 고유 종교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율리아누스 이후에서 다수의 원로원 의원들도 크리스트교보다는 고유의 신앙을 믿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은 이미, 일신교적 성격을 가진 를 인정하는 분위기였고, 로마인의 대다수 빈민들은 이미 크리스트교를 처럼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아예 크리스트교를 국교화 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동쪽을 통치하면서 서로마는 자신의 후계자에게 맡겨버립니다. 이 시기에 동서 로마는 완전.. 더보기
로마사 이야기 8 - 디오클레티아누스, 콘스탄트누스, 그리고 콜로누스 제도 디오클레티아누스, 콘스탄티누스 그리고 콜로누스제도 1.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군인황제 시대 이래 약해진 로마는 제국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최후의 노력을 시도합니다. 제정 로마가 후기로 가면서 디오클레티아누스와 콘스탄트누스는 강력한 황제권을 유지하기 위한 독재적 개혁정치를 실시합니다. 그럼 이번 장에서는 이들 철인황제들의 개혁 정치를 한번 볼까요?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정치는 로 총괄할 수 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2명의 황제와 그 2명의 황제 아래 2명의 부황제로 이루어진 황제단이 제국을 나누어 통치하는 4제통치를 실시합니다. 이중 디오클레티아 누스가 최고 황제권을 가지며, 그가 죽을 시 아래에 속한 직속 부황제가 제국을 계승하는 형태의 정치체제입니다. 이것을 실시한 목적인 황제가 죽은 후 군인들에 의해 이.. 더보기
로마사 이야기 7 - 제정 로마의 신분제도와 로마 제정의 몰락과정 제정 로마의 사회 체제와 제정의 몰락 과정 1. 제정 로마의 신분제도 제정 로마의 신분제도는 크게 4계층입니다. 원로원 계층, 에퀴테스 계층, 평민계층, 노예계층이죠. 그럼 제정기 원로원을 한번 볼까요? 원로원은 공화정 초기의 귀족과 공화정기 신흥귀족인 노빌레스층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전에 말했죠? 원래 이들은 귀족으로 고위 정무관직, 원로원직, 속주총독직, 군단지휘관직을 맡는 정치적 실세였죠. 그러나 아우구스투스의 제정 확립기에 이들은 점차 황제 자문기구로 변질됩니다. 실제 로마 제국의 모든 권한은 아우구스투스에게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이후 네로 등 독재적 기질의 황제를 몰아내고, 양제제도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황제는 원로원의 결의에 의해 선출되기도 합니다. 5현제의 첫 번째 황제인 네로바가 바로 원로원.. 더보기
로마사 이야기 6 - 로마 제정의 역사와 5현제 시대 옥타비아누스의 제정 시작과 5현제 시대 1. 옥타비아누스의 원수정 악티온 해전에서 승리한 이후 옥타비아누스는 실제적으로 로마의 모든 지배권을 갖고, 로마를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옥타비아누스는 과거 다른 군인지배자들이 로마를 지배한 방식인 이라는 형식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로마를 다스립니다. 그것이 앞서 설명한 의 형태입니다. 이란, 집정관, 호민관 등이 존재하는 공화정 형태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정치형태를 만들어가는 과도기의 체제를 말합니다. 실제 옥타비아누스가 이라는 정치체제에서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설정했는지 볼까요? 일단 옥타비아누스는 대외적으로는 속주의 모든 통제권을 장악한 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대내적으로는 호민관이면서, 집정관이였습니다. 옥타비아누스의 군사력을 두려워한 원로원 의원.. 더보기
로마사 이야기 5 - 그라쿠스 형제, 마리우스, 카이사르, 그리고 옥타비아누스의 시대 그라쿠스 형제, 마리우스, 시저, 그리고 옥타비아누스 1.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 지금까지 포에니 전쟁 이후 평민 계층이 급속하게 몰락하면서 로마 공화정에 위기가 찾아온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러한 로마 공화정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평민대표인 호민관들은 다시 자영농민을 육성하고, 평민에게 땅을 돌려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합니다. 이것은 로마 공화정의 생사가 달린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호민관으로서 로마 공화정을 개혁하려고 했던 사람은 그라쿠스 형제였습니다. 이들의 개혁목표는 자영농민의 생활을 안정시켜 사회불안을 막고, 로마 군사력을 다시 강하게 만들겠다는 것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은 평민층에게 혜택을 줌으로서 기득권층인 귀족들과 충돌하여 결국 실패합니다. 먼저, 형인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더보기
중국사 이야기 7 - 중국토지제도의 기반, 정전제도를 알아보자! 중국 토지제도의 기반 - 정전제도를 알아보자. 1. 정전제도 서주에서 파생된 대표적인 토지제도는 정전제도입니다. 이 정전제도는 중국 수천년의 역사를 흘러가는 가운데, 중국 토지제도의 기본틀로서 인식되었고, 유가주의자들은 이 제도 이상의 완벽한 제도는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극찬하기도 하였습니다. 실존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이 제도의 특징을 한번 설명해 보겠습니다. 라는 저서에서는 정전제라는 제도를 중국의 이상적인 제도로 설명해 놓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경작할 900무의 땅을 일단 9등분을 합니다. 9등분하면 한자로 井자의 모양으로 9토막이 납니다. 그래서 井田제도입니다. 이렇게 9등분한 토지의 한가운데 100무는 공전으로 만들어 국가 땅으로 합니다. 이 한가운데 100무는 농민들이 공동 경작을 해.. 더보기
중국사 이야기 6 - 서주시대의 계급구조를 통해 중국고대 계급의 용어를 파악해보자. 서주를 자세히 알기 위해서 계급구조와 계급 용어를 파악하자. 1. 서주의 계급구조 중국 서주 시대의 계급을 보면, 그 특징이 종법과 혈연적 관계를 기반으로 한 엄격한 세습적 신분제도라는 것에 있습니다. 따라서, 세습되는 혈연적 관계의 신분에 의해 사회의 기본 구조가 형성된 것이죠. 지금부터 설명하는 이 용어들은 모두 고대 주나라에서 성립된 용어들로, 동아시아의 많은 왕조들이 이 용어를 실제로 사용하였던 개념들입니다. 알아두시면 동아시아 역사이해하기 좋아요. 먼저, 가장 높은 계급을 말하라고 하면 당연 입니다. 주왕실은 국토와 인민은 모두 주왕실의 소유여야 한다는 의 이념을 가지고 영토를 지배합니다. 그러나 모든 영토가 왕의 것이라는 은 이념적인 이상을 말한 것이고, 실제로는 왕의 직할지를 제외하고는 제후.. 더보기
중국사 이야기 5 - 주나라시기에 종법에 기초한 씨, 성 제도가 확립되었다. 서주시대의 종법질서에 의한 씨, 성 제도가 있었다 1. 서주 시대의 정치 보통 은나라 다음으로 주나라 역사를 전개한다고 할 때, 주나라의 시기는 2시기로 구분됩니다. 먼저, 호경을 수도로 한 서주시대로서, 이 시대는 중국에서 가장 이상적인 시대로 평가합니다. 두 번째로, 낙양을 중심으로 하는 동주시대로서 이 시대는 주왕실이 문란해지고 각지에 제후들이 실권을 잡게 되는 특징을 보이기 때문에 춘추시대, 전국시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주나라는 주 문왕이 건국하였고, 무왕 때 역성혁명을 일으켜 라는 국가를 성립시켰습니다. 그러나, 주 무왕은 은나라의 귀족들을 몰살시키지 않았습니다. 은나라 자체가 도시국가의 연합적인 성격이 강하였기 때문에, 은나라의 세력 기반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들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 더보기
중국사 이야기 4 - 중국사에서 이상시대인 서주시대가 과연 존재했을까? 중국사에서 서주라는 시대를 인정해야될까? 1. 서주라는 시대를 인정해야 하는가? 서주라는 시대는 공자나 맹자와 같은 유교 사상가들이 가장 이상적이 평화로웠던 시대라고 규정한 시대입니다. 중국 문화의 기본 틀은 봉건제도, 정전제도, 종법제도 등이 이 시대에 나왔고, 실제 이 시대에서는 이러한 이상적인 틀들이 이상적으로 잘 지켜진 시대라고 유교사상가들은 말합니다. 전통적인 중국의 유교주의자들은 옛날 문헌의 모든 사실들을 그대로 사실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서주는 봉건제도를 완성한 중국의 이상사회로서, 가장 가치있는 시대의 경험이라고 말이죠. 반대로 말하자면, 이러한 이상시대인 서주를 멸망시킨 춘추전국시대란, 암흑시대요, 저주의 시대가 시작된 것으로 볼 수 도 있는 것이죠. 그러나 중국 신문화운동기를 주도했던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