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풀이/히스토리아 역사 스토리 썸네일형 리스트형 이슬람 세계의 이해 2 - 옴미아드 왕조와 아바스 왕조의 전성기 옴미아드 왕조와 아바스 왕조의 전성기 1. 이슬람 전통의 옴미아드 왕조(7-8c) 무하마드가 죽은 뒤 아랍인들은 후계자로서 를 선출하였습니다. 를 우리식으로 말하면 일종의 , 가 되겠네요. 아랍인들은 칼리프의 지도 아래 대규모의 정복사업을 시작하였고, 가장 먼저 비잔틴 제국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시리아, 이집트를 비잔틴으로부터 빼앗습니다. 또 사산조 페르시아는 아예 멸망시켜 버립니다. 하지만, 정복지가 확대되면서 아립인 지도자간의 내분이 시작되었습니다. 실제, 3대까지의 칼리프는 마호메트 가족 밖에서 선출했는데, 이것은 유목민족의 부족적 관습에 의거한 것이였죠. 하지만, 정복지가 늘어나면서 아립인 지도자들의 갈등이 심화되기 시작합니다. 마호메트의 조카이자 사위인 알리가 4대 칼리프로 선출되었는.. 더보기 이슬람의 역사 1 - 이슬람교의 기원과 마호메트의 출현 이슬람교의 기원과 마호메트의 출현 1. 이슬람 - 종교 교리의 기원 이슬람교는 세계 인구의 20%가 믿고있는 종교입니다. 이슬람력 12월 7일에는 세계 각지에서 메카로 신도가 모여들며 장관을 이루곤 하죠. 사실 이슬람교도 그 기원은 유대교에서 시작됩니다. 크리스트교와 이슬람교는 둘 다 을 모체로 탄생한 종교이지만, 두 종교는 구약성경에서 제시하는 여호와의 예언자에 대한 해석이 다른 것에서부터 갈등이 시작됩니다. 크리스트교는 예수를 예언자이자, 하나님의 아들로 규정하였고, 니케아 공의회 등 수많은 종교논쟁을 거쳐 예수를 신으로 격상시켰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의 목적이였죠. 그러나 이슬람교에서는 예수를 예언자로만 인정할 뿐, 신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최후의 예언자가 아니며, 최후의 예언자는 .. 더보기 비잔틴 제국 - 사회와 문화 구조 비잔틴 제국의 사회 문화 구조 1. 비잔틴 제국의 황제 비잔틴 제국의 정치하면 왕중의 왕이라는 라는 말로 요약됩니다. 황제가 모든 것을 총괄하며 교회와 주변국의 왕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 비잔틴 제국의 특징이지요. 비잔틴 제국은 로마의 관료제를 계승했지만, 그 지배사상은 동방의 신성정치를 연상케하는 절대군주체제였습니다. 즉, 동방적 제정일치, 신정일치적인 성격이라고 볼 수 있죠. 황제는 관료제와 상비군을 지배하면서 왕권을 강화했습니다. 특히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때가 전성기였지요. 관리들도 환관을 등용하여 황제의 측근으로 활용하는 동방적 궁정정치의 성격이 강하였습니다. 황제 자리는 원칙적으로는 선출제였지만, 실제로는 거의 세습되었습니다. 황제는 귀족출신의 장교들을 중무장 기병으로 활용하여 국가수비를 맡기였.. 더보기 비잔틴 제국 - 비잔틴 제국의 흥망 비잔틴 제국의 정치사 1. 비잔틴 제국의 발전 비잔틴 제국은 동로마 제국을 말합니다. 비잔틴 제국이 형성된 역사적 배경을 보면, 먼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이전하여 동, 서 로마의 중심지를 분리한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이전 디오클레티아누스의 4국통치기부터 동로마에 황제가 존재하면서 동쪽 로마가 서로마 못지않게 중심지 역할을 했었지요. 테오도스우스 황제 이후 동로마는 완전히 서로마에서 분리된 독립국가 형세를 갖추게 됩니다. 단, 분리 후에도 하나의 로마민족이라는 유대감이 있었으므로, 동서로마는 항상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공동체 의식을 견고하게 해 준 것은 크리스트교였습니다. 그러나, 성상숭배금지령 이후 로마 교회와 비잔틴 황제가 각각 카톨릭, 그리스 정.. 더보기 중세유럽사5-프랑크 왕국의 분열과 이민족의 2차 침입 프랑크 왕국의 분열과 이민족의 2차 이동 1. 프랑크 왕국의 붕괴 원인 로 이어지며 영원할 것 같던 프랑크 왕국이 멸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샤를마뉴 대제가 죽은 바로 직후부터 멸망의 징조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첫 번째 이유는 제국 자체가 여러 부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강력한 왕인 샤를마뉴가 있을 때에는 모두가 충성하는 듯 보이지만, 이 강력한 왕이 죽은 뒤 각 부족들은 충성할 구심점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메로빙거 왕조가 망한 이유가 같습니다. 프랑크 왕국이 분할 상속제라는 점입니다. 샤를마뉴 대제가 죽은 뒤 재산 분할과 왕위 계승을 둘러싼 내분이 발생하였고, 이것은 3왕자에게 각각 국가가 분할되어 상속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샤를마뉴가 죽은 시.. 더보기 중세유럽사4 - 샤를마뉴(카롤루스, 카알) 대제 시대의 프랑크 왕국 샤를마뉴 대제(카롤루스 대제, 카알 대제) 1. 광대한 영토 확장 사업 샤를마뉴 대제는 피핀의 아들입니다. 그는 피핀이 교황령을 분배하여 적극적인 교황 옹호자가 되었고, 교황의 지지를 바탕으로 서유럽 정복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그는 정복전쟁에 성직자를 동반하였습니다. 그것은 민심을 수습하는 동시에, 정복지에 새로운 교구를 설치하는 작업을 하기 위함입니다. 로마 제국이 제국의 행정구역과 교회의 교구를 일치시켰던 것과 같은 맥락이네요. 또 국경에는 변경주라는 것을 설치하여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국경을 경계하고 서유럽을 크리스트교의 전초기지로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샤를마뉴는 우선 교황령을 위협하는 롬바르드족을 완전 소멸시키고, 북으로는 섹슨족을 정벌하여 카톨릭으로 개종시킵니다. 동쪽으로는 엘베강 유역으로 진출하.. 더보기 중세 이야기 3 - 카롤링거 왕조의 성립과 로마 교황령의 시작 카롤링거 왕조의 성립과 교황령의 시작 1. 7c의 혼란 프랑크 왕국의 건국자 클로비스의 메로빙거 왕조가 성립된 후 150여년이 지났습니다. 100년 이상이 지나는 동안 프랑크 왕국은 앞 장에서 설명했듯이, 여러 가지 이유로 망하지 않고 근근히 국가 형태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7c가 되면서 프랑크 왕국은 혼란을 겪게 됩니다. 그 이유는 프랑크족의 관습때문이였습니다. 프랑크족들은 재산을 상속할 때, 장자 상속제가 아니라 균등 상속제입니다. 즉, 왕자들이 많다면 그 왕자 사이에 일정한 비율로 영지를 분할하는 것이 그들의 제도였습니다. 이것은 왕위 상속을 놓고, 왕자들간의 내분이 일어날 소지가 많은 제도였습니다. 결국 내분과 갈등이 지속되는 동안, 왕국의 실권을 잡은 것은 궁재(재상) 마르텔이였습니다. 그는 .. 더보기 유럽 중세사 2 - 프랑크 왕국의 개창과 로마교회의 수위권 선언 프랑크 왕국의 개창과 로마 교회의 수위권 선언 1. 수위권 선언 지금까지 게르만족의 이동으로 유럽사회가 엄청난 혼란을 겪은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혼란한 상황 속에서 유럽의 사람들은 무엇을 의지하고 이 위기를 수습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이 확립한 이후 로마 제국과 함께 성장했던 교회의 힘입니다. 로마사 이야기에서 교회가 로마 제국의 행정구역과 같은 방식으로 교구를 설정했다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민족의 침입기에 서로마가 망하였고, 각 국가들은 이 위기를 타개할 방책이 없이 무능력했지만 카톨릭 교회는 달랐습니다. 실제 프랑크 왕국, 서고트 왕국 등은 카톨릭으로 개종하여 교회의 힘으로 위기를 탈출하려고 시도했었지요. 서방의 교황 레오 1세는 아예 로마 교회만이 모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 더보기 유럽중세사 1 - 게르만족의 이동 게르만족의 이동과 유럽 중세의 시작 1. 게르만 족이란? 게르만족은 발트해 북유럽 연안에 살던 소수의 야만인(?)입니다. 야만인이라는 것은 당시 로마 제국의 관점이였죠. 로마는 갈리아 정복 이후 춥고, 도움이 안되는 북극쪽의 땅은 정복하지 않습니다. 실제 로마가 현재 프랑스-서부독일-에스파냐를 잇는 갈리아를 정복한 것도 갈리아 지방에 풍부한 유산이 있거나, 갈리아인들이 문명인이라서가 아닙니다. 갈리아 정복은 단지 이베리아 반도를 거치기 위해 필요한 도로를 확장하기 위함이였으니까요. 아무튼, 북유럽의 게르만족은 로마 제국의 입장에서는 이방인이였습니다. 그러나 게르만족에게 평화가 오랜 기간 유지되면서 인구가 증가하고 경작지가 부족해졌습니다. 이것은 게르만인들이 남부로 내려오는 하나의 원인이 됩니다. 게르만족.. 더보기 로마사 이야기 11 - 로마 크리스트교의 성립과정과 발전과정 1번째... 로마제국과 크리스트교 이야기 1번째 1. 초기 로마의 종교 초기 로마는 다신교 사회였습니다. 로마 문화 자체가 그리스적인 요소를 많이 받아들었고, 그리스 문화는 이집트 문화의 요소를 받아들인 탓에, 로마의 신화를 보면 거의 그리스 신화와 체계가 비슷합니다. 그리고, 이집트 오리시스 신화 등의 영향을 받은 신화 이야기도 많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스와 로마신화는 제우스 신을 쥬피터라고 부르는 등 명칭과 풍습, 일부 줄거리 등이 바뀐 것을 제외하고는 신화내용도 유사한 부분이 많죠. 이러한 다신교의 풍습이 로마 초기부터 그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으므로, 로마의 종교는 그리스 신화를 기반으로 황제 예배를 시도합니다. 즉, 그리스 신화의 가장 상위신인 쥬피터(제우스)를 황제의 권위와 맞먹는 권위로 신격화한 상태에서 .. 더보기 이전 1 ··· 38 39 40 41 42 43 44 ··· 4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