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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

러시아사 10 - 러시아 산업혁명 러시아의 산업혁명과 자유주의 운동의 좌절 알렉산드르 2세가 암살당한 뒤 알렉산드르 3세는 극단적 반동정치의 강화와 자유주의의 탄압을 시도합니다. 알렉산드르 3세기는 러시아의 산업혁명기라는 사실이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즉, 석탄지대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석유를 산출하였으며, 강철과 포를 생산하였고, 이러한 자원을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건설함으로서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또 도시 노동자의 수가 증가하고,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시도가 많아져 어느 때보다 파업이 빈발하였구요. 이러한 사회변화를 통하여 러시아에 정당제가 확산됩니다. 즉, 사회민주당이 조직되어 마르크스주의가 확대된 시점이 이 때이며, 또 레닌이 볼세비키당을 만든 때도 이 때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당의 설립은 러시아의.. 더보기
러시아사 9 - 알렉산드르 2세 알렉산드르 2세(1855~1881) 알렉산드르 2세는 개혁정치가였습니다. 그는 전왕대 크림전쟁의 비참한 패배를 구경하였기에 내정개혁의 필요성 및 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모든 것을 시도하려고 하였습니다. 먼저 그는 유럽에 대한 여행을 완화하고, 정치범들을 석방합니다. 또 출판물에 대한 검열도 완화합니다. 특히, 그는 농노해방령을 내립니다. 이것은 모든 농민을 해방시키고, 각 농가는 일정한 토지를 할당받는 것으로서 러시아의 민중이 정말 오랜 시간 투쟁한 결과의 성과였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많았습니다. 왜냐면 종래 가진 토지는 이미 지주에게 빼앗긴 경우가 많았고, 새로 할당된 토지는 장기간 상환금이 부담되어 있는 토지라서 매입금 부담이 큰 것이었습니다. 또 할당된 토지가 농촌공동체(미르)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 더보기
러시아사 8 - 니콜라이 1세 니콜라이1세 19세기 러시아는 농노제적 후진사회가 계속되었습니다. 알렉산드르 1세는 이러한 러시아를 개혁할 방안을 찾았는데, 이것이 내각제를 도입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내각제를 도입하여 새 관료조직을 마련하면 사회개혁을 될 것이다... 라는 것인데, 문제는 이것을 토지 귀족이 오히려 독점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전제적인 지배는 계속되는데, 그 형태만 바뀌어서 토지귀족이 직접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토지귀족이 관료조직을 통해 국가를 다스린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유럽의 자유주의 물결은 계속 러시아로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19세기 일부 토지귀족과, 젊은 장교, 대학생 등의 지식인들은 농노제 및 전제정치 폐지를 희망하여 비밀결사조직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이 추진한 것이 데카브리스트의 난입니다. 이 난의 주체.. 더보기
러시아사 7 - 푸가초프의 대반란 푸가초프의 대반란 에카테리나 2세(바로 위의 글)는 농노제는 계속 강화하였습니다. 국유지를 귀족에게 주면서 반면 농노가 증가하였죠. 귀족은 병역과 세금이 면제되면서 농노는 힘들어지고 영주권은 절대적인 권한이 되어갑니다. 즉, 지배층인 귀족과 민중과는 엄청난 간격이 생기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의 사회적인 모순으로 대두하면서 이라는 사건을 초래하게 됩니다. 푸가초프는 스스로를 표트르 3세라고 말하였습니다. 표트르 3세는 부인인 에카테리나와 군대 장교들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것을 앞에서 설명하였죠? 표트르 3세가 무언가 농민들을 위해 개혁하려다 죽었다는 설이 유포되자 푸가초프는 스스로 황제라 말하며 농민들을 모아 반란을 일으킵니다. 이것이 인 이유는 그 규모나 잔인함이 도를 넘어서기 때문이죠. 즉, 모든 귀족을.. 더보기
러시아사 6 - 에카테리나 2세 에카테리나 2세(재위 : 1762~1796) 에카테리나 2세는 표트르 3세의 부인인데, 표트르 3세(1761~1762)는 제위기간이 짧았습니다. 표트를 3세가 추구하였던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무언가가 많은 지배층의 불만을 가져오게 되었고, 결국 표트르 3세는 러시아 장교 그룹에 의해 살해당하였습니다. 또 에카테리나 2세도 남편에 대항하여 직접 음모를 꾸몄다고 합니다. 에케테리나 2세는 남편의 죽음으로 왕위에 올랐는데, 그녀는 표트르 1세와 같은 강력한 러시아를 꿈꾸는 여제였습니다. 책을 많이 읽었던 그녀는 마키아벨리즘에 감탄을 받았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녀는 장서 12권의 전집을 낼 정도로 글을 좋아했는데, 초기에 그녀는 디드로, 달랑베르, 볼테르 등 계몽사상가들을 후원하기도 하였다고 하니.. 더보기
러시아사 5 - 표트르 대제의 개혁 표트르 대제의 개혁 표트르 대제는 국민 다수가 문맹인 후진적인 러시아 사회에서, 농노 반란 등의 상황을 겪으면서 발전이 없다는 것을 보고는 서유럽화 정책을 실시하려 하였습니다. 그는 강력한 왕권을 표면적으로 보여주는 왕이었습니다. 예로 서유럽화를 위해 유럽을 시찰하는 도중 스트렐치(친위대)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는 직접 목을 베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는 아들 알렉세이 황태자도 아버지에게 대항하는 음모를 꾸몄다는 이유로 죽일 정도였으니까요. 구귀족과 황족이라 해도 반대세력은 여지없이 죽이는 왕이었습니다. 그는 전형적인 절대 군주로서 최고 권력의 위신과 권위를 세우고, 그 의지에 반하는 자는 참아주지 않았습니다. 그 의지란, 이었습니다. 그의 서유럽화 개혁은 전제 러시아 사회를 개혁한다기 보다는 지.. 더보기
러시아사 4 - 농노제의 모순과 스테판 라진의 난 농노제의 모순과 스테판 라진의 난 이반 4세 이후 강화된 농노제는 17세기까지 끊임없이 농노들을 괴롭혔습니다. 특히 17세기에는 농민들을 토지에 결박하여 모든 생산물이 지주의 손을 거치게 하였고, 거주의 자유를 더욱 탄압하였습니다. 이것은 서유럽이 이 당시 농노해방을 하면서 시민계층이 늘고, 속박에 대한 저항과 시민혁명단계로까지 나아가는 것과는 반대되는 현상입니다. 그렇다고 동유럽과 같은 상업적 장원(구쯔헤르샤프트)의 성격도 아닌, 일방적 속박을 뿐이었죠. 그래서 농노들은 도망치기 시작하였고, 그들을 모아 해적질 등을 통해 국가에 저항한 사람이 스테판 라진입니다. 스테판 라진은 카스피 해를 거점으로 거대한 군대로 성장하였고, 여러 도시들을 점령하여 자유도적단 규칙도 만들었습니다. 리진은 공동집회인 총회도.. 더보기
러시아사 3 - 로마노프 왕조의 등장 편 로마노프 왕조의 등장 이반 3세기에 몽골에서 벗어난 후 러시아는 강력한 농노제를 실시하면서 차르(황제)중심의 중앙집권적 전제국가를 성립시켰습니다. 그가 바로 이반 4세입니다. 이반 4세는 비밀경찰제를 실시하여 반항하는 귀족을 탄압합니다. 또 농노제를 강화하여 군사적인 봉사를 제공하는 신하에게 토지를 주어 신흥귀족을 확보하고 구귀족의 권한을 빼았습니다. 물론 신흥귀족은 왕권에 협조하는 귀족입니다. 이런 상황으로 농민들의 이동의 자유는 박탈당하게 되었습니다. 반면, 세금을 걷기 위해 도시와 교역시장, 토착상인들은 꾸준히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이러한 농노제는 서유럽과도 다르고, 동유럽과도 다른 강력한 왕권 유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반 4세는 그 아들 드미뜨리를 황태자로 책봉하였지만, 어린 나이.. 더보기
러시아사 2 - 몽골의 침입과 모스크바 공국의 성장 편 몽골의 침입과 모스크바 공국의 성장 13세기 러시아의 소국들은 엄청난 위기를 맞이합니다. 그것은 당시 세계적으로 성장하고 있던 몽골부족 때문이었죠. 당시 발전해가던 러시아는 몽골의 침입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몽골의 기병이 워낙 뛰어난 것도 있었고, 말자 상속제로서 스스로 영토를 구하여 나라를 세워야 했던 몽골부족의 숙명에서 기인하는 것도 있지만, 러시아가 쉽게 무너졌던 것은 통일 국가가 아니였기 때문입니다. 즉, 러시아의 공후들은 단결되지 못하였고 서로 토지에 대한 더 많은 권리만 요구했을 뿐 단결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죠. 결국 몽골은 러시아의 발전하고 있던 아름다운 도시들은 모두 불태우고, 모든 러시아 공국들은 킵차크 한국에 종속시켰습니다. 바투의 대원정은 러시아의 역사를 바꾼 것이죠. 이 기간은 약 2.. 더보기
러시아사 1 - 그들은 어디에서 기원하였는가? 그들은 어디에서 기원하였는가? 러시아 민족은 슬라브 민족입니다. 특히 동슬라브인이라 불리는 고대 민족이 러시아 민족의 조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고대 슬라브 인들은 일반적인 고대 신앙이 그러하듯이 다신교를 믿었는데, 뇌신, 태양신, 불의신, 가축의 신 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그리스 등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첨럼 보입니다. 문헌상 러시아라는 지역에 국가의 관념이 생긴 것이 9세기 경이니 꽤 오랜 시간 동안 원시적인 풍습을 유지해왔던 것 같습니다. 러시아의 원년은 862년으로 기록하여 시작하는데, 그 기원은 노르만(바이킹)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약탈과 전쟁을 일삼는 노르만들이 봉건유럽을 약탈하면서 그 일파들이 러시아로 건너왔는데, 특히 노브고르드 공국과 키예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