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풀이 썸네일형 리스트형 이집트의 죽은 자의 책 - 사자의 서란 무엇인가?(book of the dead) 사자의 서 1. 사자의 서란? 사자의 서 [死者-書, Book of the Dead] 고대 이집트에서 미라와 함께 매장한 사후세계(死後世界)의 안내서라고 할 수 있는 두루마리. 파피루스·가죽 등에 성각문자(聖刻文字:히에로글리프)·신관문자(神官文字:히에라틱문자)·민중문자(民衆文字:데모틱문자) 등으로 적어, 제18왕조 이후에 매장된 두루마리입니다. 사자(死者)는 사후의 세계에서 여러 가지 사건에 부딪친다고 하는데, 그 경우에 외는 주문(呪文)이나, 신(神)들에 대한 서약에 대하여 적혀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내세관(來世觀)을 아는 데에 귀중한 사료(史料)가 되지만, 그 중에서도 사자의 심판을 취급한 대목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 기원은 매우 오래되어, 이와 비슷한 문장은 고(古)왕국시대의 피라.. 더보기 오리엔트 문명의 탄생과 역사전개 - 헤브라이, 이스라엘, 페니키아 편 오리엔트 문명의 탄생 1. 석기 시대를 넘어선 문명 탄생 석기시대 오리엔트에서는 문명이 탄생할 여건이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오리엔트 문명이란, 서양의 기준에서 볼 때 이란 뜻입니다. 석기에서 청동기로 접어들면서 탄생한 오리엔트 문명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리적으로 풍부한 물과 기름진 땅이 제공되었고, 강 유역에는 다양한 식용생물이 있었으며 주변지역의 자원이 뒷받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잉여생산이 출현하게 됩니다. 세계 4대 문명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공통점이 많은데, 제가 주관적으로 생각하기에 다음과 같습니다. 1. 청동시 시대였다. - 충분한 잉여생산이 출현 가능한 시대였고, 잉여생산물 투쟁을 위한 싸움으로 사회계급이 형성되고 국가 조직이 발생하였다. 2. 문자가 출현한 시대였다 - 어.. 더보기 역사시대의 시작과 문화권의 형성 역사시대로의 진입 1. 유럽의 구석기 시대 자 이제, 유럽의 구석기 시대의 특징을 한번 살펴볼까요? 유럽의 구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은 알타미라와 라스코의 동굴벽화, 비너스의 여인상 조각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정령숭배 등의 주술적 신앙을 가지고 있었고 내세관념을 일찍부터 가지고 있었던 듯 싶습니다. 특히 비너스의 여인상 등을 통해 볼 때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는 그들에게 큰 의미였던 것 같네요. 구석기 시대 초기에는 단순한 도구의 제작을 통해 어느 정도 두뇌가 발달하면서 인류가 발전했던 것 같습니다. 이 두뇌 발전을 대대적으로 촉진했던 것은 역시 언어의 사용이겠지요. 사냥을 하면서 사고능력과 협동심도 늘었을 것이고, 불을 사용하면서 자연에 대한 두려움을 어느 정도 극복했던 것 같습니다. .. 더보기 서양 인류의 기원설과 중국의 인류기원 다지역설 인류의 기원과 유럽의 선사시대 1. 인류는 언제 등장하였는가? 우리가 보통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나눌 때 그 기준점을 문자가 있었느냐, 없었느냐로 잡습니다. 즉, 문자 기록이 있었던 시대는 역사시대, 문자 기록이 없어서 유물이나 유적으로 그 시대상을 파악해야 하는 시기는 선사시대로 잡는 것이죠. 따라서 고도로 발전된 문명이라도 해도 그 기록이 남아있지 않으면 선사시대로 간주하게 됩니다. 중근대 유럽인들은 전설속의 발달된 기독교 왕국인 아틸란티스나 뮤를 상상하기도 했지만, 설사 그런 고도로 발전된 문명이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만약 역사적 기록을 발견할 수 없다면 선사시대입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도 글자 기록이 없으면 선사시대입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구석기, 신석기 문명은 따라.. 더보기 프란체스코 수도회 - 프란키스쿠스의 사상 프란체스코 수도회 작자 미상 - 인용 라며 수도사 레오네가 물으니, 성 프라키스쿠스는 답하였다. 우리가 이렇게 비에 젖고 추위에 떨고 흙투성이가 되어 주린 배를 움켜 잡고서 간신히 가고자 목적했던 성당에 도착했을 때, 문지기가 '너희는 누구냐'라고 물었다고 합시다. '당신의 형제인 수도사입니다'라고 우리가 대답하겠지요. 그러면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거짓말쟁이! 너희들은 세상 사람들을 속이고 거리를 쏘다니면서 가난한 자들로부터 돈을 뜯어 내는 악당들이구나. 꺼져 버려라!' 이렇게 소리치고는 문을 열어주지 않아서, 우리는 밤새도록 밖에서 눈비를 맞고 배고픔과 추위에 떨면서 서 있어야 할 처지가 되었다고 합시다. 그 때 우리가 불평하지도 않고 억울해하지도 않으면서 문지기에게 '그런 말을 하게 한것도 .. 더보기 우르반 2세의 십자군 원정 포고문 우르바누스 2세의 십자군 포고문 프랑스 인이여! 하느님의 사랑으로 선택받은 백성들이여! 예루살렘과 콘스탄티노플로부터 슬픈 소식이 전달되었습니다. 하느님을 적대시하는 이교도들의 무리가 우리 기독교 성지를 폭력적으로 침탈했습니다. 그들은 약탈과 방화, 그리고 살육을 자행합니다. 이교도들은 포로로 잡힌 우리 동포들을 자기 나라로 끌고 갑니다. 또는 잔인하게 고문해서 죽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더러운 손으로 성스러운 제단을 모독하며 파괴합니다. 이 극악무도한 원수들을 무찌르고 성지를 탈환하는 성스러운 임무를 수행할 사람이 여러분말고 누가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땅은 노무나 좁습니다. 아무리 일구어도 충분한 식량을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서로 싸우고 죽이며, 많은 사람들이 내란 때문에 죽어갑니다. 그런.. 더보기 최후의 철의 여제 갈라 플라키디아, 그리고 로마의 멸망 로마의 마지막 재건노력 - 갈라 플라키디아, 그러고 로마의 멸망 1. 갈라-플라키디아와 아타울푸스 갈라 플라키다아(이후 갈라)는 알라리크에 의해 로마가 함락당하고, 로마의 문명이 폐허가 되었을 때, 인질로서 잡혀간 황제의 여동생이었습니다. 황제인 호노리우스는 로마가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자신이 안죽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닭을 키우고 놀았다고 전해집니다. 호노리우스는 자신의 생명보전을 위해 로마를 버리고 라벤나까지 수도를 옮긴 대단한 황제였거든요. 로마가 망하는 것은 그에게는 관심밖의 일이었습니다. 로마를 지켜줄 장군인 스틸리코를 맘에 안든다는 이유로 죽인 황제니, 그 무서움은 치밀하면서도 지독했습니다. 호노리우스 황제는 자신의 동생 갈라가 잡혀갔다는 사실보다는 황제의 동생을 야만족인 서고트가 잡아갔다.. 더보기 단일민족은 무엇이며, 우리는 단일민족인가? 우리는 단일 민족인가? 1. 단일 민족이 뭐야? 한민족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단일민족이다. 우리는 모두 단군의 자손이다. 이 말에 대해서 혹시 의심을 가진 적이 있는가? 우리가 모두 단군의 후예라고 주장한 사료는 에서부터 비롯된다. 삼한 70여 소국도 모두 단군의 자손이라고 주장했으니까... 그러나 우리는 종종 의심하곤 한다. 뭐야? 수백번의 외침을 당해 서로간의 민족이 섞였을텐데... 고대에는 국가 경계가 없어서 민족간 이동이 많았을텐데... 고대인들 스스로가 민족이라는 개념이 있었을까?... 등등 의심은 끝이 없다. 또 한국성 중에서는 중국성씨도 많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가 대체 유일한 단일민족이라는 대책없는 자부심의 근원은 무엇인가? 일단 우리가.. 더보기 라벤나의 위치와 역사 라벤나 라벤나는 이탈리아 북동부 에밀리아로마냐 지방 라벤나 주의 주도입니다. 아드리아 해 근처에 있는데, 5세기에 호노리우스 황제가 수도를 옮기면서 서로마 제국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그 후 서로마제국은 멸망하였고, 6~8세기 동고트족의 이탈리아 왕국과 비잔틴 제국령 이탈리아의 수도가 된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입니다. 라벤나에 최초로 정착한 주민은 BC 1400년경 아퀼레이아에서 남하한 이탈리아 반도의 종족들로 추측되며 에트루리아인(人)과 갈리아인이 차례로 점령했었다는 말도 전해집니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이곳에서 약 5㎞ 떨어진 곳에 클라시스 항구를 건설했고 BC 1세기 경 라벤나는 로마의 중요한 해군기지였습니다. 402년 서로마 제국의 황제 호노리우스가 수도로 삼아 웅장한 기념물을 많이 세웠습니다... 더보기 테오도스우스 황제의 죽음과 로마의 멸망 테오도시우스의 죽음과 로마의 멸망 1. 테오도시우스 1세의 죽음과 로마의 변화 동로마의 테오도스우스황제는 테살로니카 폭동을 제대로 진압하고 이민족을 우대하고 이민족과 로마인이 평등하다는 기본 방침에 어긋나는 로마인들을 가차없이 죽였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황제권이 약했던 서로마의 발렌티니아누스는 이런 조화로운 정책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프랑크족 장군인 아르보가스트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아르보가스트의 반란은 종교문제 때문입니다. 아르보가스트는 이교도인 게르만이었고, 로마 카톨릭 교회가 아리우스파 등과 싸우은 교리 싸움을 지겹게 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기독교를 경멸하면서 이교도를 믿는 유게니우스를 황제로 옹립하려 했지요. 테오도시우스는 이러한 상황을 묵과할 수 없어서 서로마로 쳐들어갔습니다. .. 더보기 이전 1 ··· 181 182 183 184 185 186 187 ··· 22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