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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역사 사료와 데이터

선덕여왕의 축출 선덕여왕의 축출 왕 16년 647년, 봄 정월에 비담과 염종 등이 난을 일으켰다. [여자 임금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들이 군사를 일으키니 여왕은 이기지 못하였다. 8일에 왕이 죽었다. 시호를 선덕이라 하고 낭산에 장사지냈다. 삼국사기 권 5, 신라본기, 선덕왕 16년 ------------------------------------------------------------------------------------- 사료해석 : 선덕 15년 당에 군사적 구원요청을 했으나, 선덕여왕이 실패하자 비담, 염종 등 진골계 유력 귀족들이 난을 일으켜 선덕여왕을 죽인 사료입니다. 그러나, 김춘추 등의 수습으로 다시 진덕여왕이 왕위를 계승하게 됩니다. 이 글에 대한 참조사항 1. 이 글에.. 더보기
선덕여왕의 대당 구원 요청과 여왕의 축출 선덕여왕의 대당 구원 요청 선덕여왕 12년 9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다음과 같이 같이 말하였다. [고구려와 백제가 우리나라를 여러 차례 침번하여 성 수십개를 공격하였습니다. 두 나라가 군대를 연합하여 이 성들을 기어코 빼앗으려고 9월에 크게 군사를 일으킨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 나라 사직은 보전할 수 없을 것이므로, 삼가 신하인 저를보내 대국에 명을 받들어 올리게 되었습니다. 바라건데 약간의 군사를 내어 구원해 주십시오.] 황제가 사신에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 나라가 두 나라에게 침략받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여겨 자주 사신을 보내 세 나라가 친하게 지내도록 하였다. 허나 고구려와 백제는 돌아서자마자 생각을 바꾸어 너희 땅을 집어삼켜 나누어 가지려고 한다. 그대 나라는 어떤 기묘한 꾀로 망하는 것을.. 더보기
6세기 말 고구려와 백제의 바람직하지 못한 대립관계 고구려와 백제의 바림직하지 않은 대립 위덕왕 45년(598) 9월, 왕은 장사 왕변나로 하여금 수나라에 들어가 조공하게 하였다. 왕은 수나라가 요동에서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을 듣고 사신을 보내 표를 올려 군의 길잡이가 되기를 청하였다. 황제가 조서를 내려 말하였다. {왕년에 고구려가 공물을 바치지 않고 산하로서 예가 없어 장수에게 명하여 죄를 꾸짖게 한 것이다. 그러나 고원(영영왕)의 군신들이 두려워하고 복종하여 죄를 청하기에 짐이 이미 용서하였으니 정벌할 수가 없다} 수나라는 사신을 후히 대접하여 돌려보냈다. 고구려가 이 사실을 알고 군사로써 국경에 쳐들어와 약탈하였다. 삼국사기 권 27, 백제본기, 위덕왕 45년 -------------------------------------------------.. 더보기
간략하게 정리하는 삼국통일의 과정 삼국통일의 과정 1. 6c 신라의 성장과 백제의 부흥 노력 6세기에 신라가 성장한 배경은 551년 신라의 한강 점령입니다. 신라는 나제 동맹을 통해 공동으로 고구려를 공격하여 한강유역을 탈환했음에도 불구하고, 진흥왕이 백제 성왕을 배신하여 한강을 독차지했습니다. 본래 한강의 남쪽을 보장받기로 했던 성왕은 격분한 나머지 3만의 군사를 이끌고 진흥왕을 공격하다가 관산성에서 왕이 전사하는 위기를 맞습니다. 이후 백제는 왕권이 약화되고, 연, 백, 사씨 등 8대성이 정치를 이끌어나가는 귀족체제가 됩니다. 신라는 한강유역을 차지하여 당항진에 당항성이라는 요새를 건축합니다. 이것은 곧 중국과의 직접 교통로를 확보함을 의미합니다. 신라의 한강유역 차지는 고구려, 백제로 하여금 여제동맹을 맺게 하는 결정적 원인을 제공.. 더보기
화랑도에도 파벌이 있었다. 화랑도에도 파벌이 존재하였다. 이 글은 운영자의 글이 아닙니다. 좋은 글이 있어서 퍼왔어요. 출처 : 다음 원형 대백과 사전 신라의 화랑도는 원천적으로 파가 나뉘게 되어 있었다. 사다함에게 낭도가 따랐고, 문노가 일찍이 낭도 5백 명을 거느리고 사다함을 따랐던 사실이 있다. 한마디로 화랑들이 각기 낭도를 거느렸던 것은 처음부터 화랑들을 중심으로 파가 나뉠 소지를 마련한 것이었다. 화랑도에서 파가 나뉜 것은 7세 풍월주 설화랑(설원랑) 때였다. 그 때 문노 일파가 세종을 따라 지방에서 전공을 세웠는데, 위를 얻지 못하여 설화랑에게 불복하고 일문(一門)을 스스로 세웠다. 이 때 낭도들이 나뉘었다고 한다. 설화랑의 낭도들은 운상인, 문노의 낭도는 호국선이라 한 것이 파맥이 나뉘는 출발이었다. 마침내 당파가 나.. 더보기
동아시아의 격동기 - 삼국통일부터 고려건국까지의 동아시아의 변화 동아시아의 격동기 - 삼국통일기부터 고려 건국기까지... 1. 삼국을 통일하는 시기가 오다 삼국의 통일은 6세기부터 시작되어 거의 150년 이상 지속된 대립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삼국통일에서 중요한 점음 신라의 단독 통일이 아니라 당,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의 내전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거의 200년에 이르는 동아시아 질서의 혼란이 있었고, 삼국통일은 이 혼란 속에서 당, 신라가 백제, 고구려, 왜를 물리치는 과정, 그리고 당과 신라간의 대립, 또한 백제, 고구려인들의 부흥운동과 국가 재건국 및 발해의 출현이라는 엄청난 격동기를 맞이합니다. 그러나 삼국통일이 끝난 후 각국은 서로 관계 개선이 주력하기 시작합니다. 698년 발해가 건국되면서 당과 신라는 발해 견재와 자국의 왕권강화를 목적으로 재 연.. 더보기
루터의 종교개혁 - 독일 국민의 기독교 제후에게 고함 루터의 종교개혁 - 독일국민의 기독교 제후에게 고함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93-1546), 교회의 개혁에 관하여 독일국민의 기독교제후에게 告함 (1520) 1) ... 로마敎皇派(敎皇에 충성하는 전통적 카톨릭교도)는 영리하게도 그들의 주위에 삼중의 벽을 쌓았다. 지금까지 그들은 아무도 그들을 개혁하지 못하도록 이 벽으로 스스로를 보호해왔다. 그 결과 모든 기독교세계는 비정상적으로 타락하기에 이르렀다. 첫째로, 세속권력의 압력을 받게되면 그들은 敎令(decree)을 만들어 세속권력은 그들에 대한 지배권이 없으나, 반대로 교회의 권력은 세속권력 위에 있다고 선언하였다. 둘째로, 聖書에 근거하여 그들을 책망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기라도 하면, 그들은 이를 거부하며 오직 교황만이 聖書를 해석할.. 더보기
가르강튀아와 판타그레엘 중 수도원의 규율 가르강튀아와 판타그뤠엘 중 수도원의 규율 프랑스와 라블레 (Francois Rabelais, ca.1495 - ca.1553),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Gargantua et Pantagruel, 1534) 중의 일부: 뗄렘수도원의 규율 (The Rules according to which the Thélèmites lived) ... 그들의 삶은 모든 것이 법률이나 명령, 또는 규칙에 의해 규제되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자유의지와 쾌락에 의한다. 그들은 원할 때 일어났고, 내키는 대로 먹고, 마시고, 일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누구도 그들을 깨우지 않았고, 먹고 마시는 것을 강제하지 않았으며, 그밖에 다른 무슨 일을 하도록 강요하지도 않았다. 바로 이 것은 가르강튀아가 확립한 것이었다. 그들의 규율.. 더보기
메디치 가문의 로렌초 메디치 메디치 가문의 로렌초 메디치 프란체스코 귀차르디니 (Francesco Guicciardini, 1483-1540), 피렌체의 역사 (1508-30) 일부: 로렌초 메디치(1449-1492)의 인품 그는 명예와 남보다 뛰어나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강렬히 원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욕구를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까지 추구하였던 점에서는 그는 비판받을 수 있으리라. 詩作이나 여러 가지 餘興(놀이), 그리고 다른 종류의 시합에서도 누군가 그와 버금가거나 그를 모방하기라도 하면 몹시 화를 내었다. 이러한 욕구는 중요한 일에서도 역시 아주 강렬하였다. 그는 이태리의 모든 군주들과 모든 면에서 대등하거나 맞서려고 하였다. ... 전체적으로 보아 그러나 그의 야심은 상찬(賞讚)할 만한 것으로 그가 명성과 영예를 도처에서.. 더보기
프란시스코 페트라르카의 편지 르네상스시대 -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의 편지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 1304-1374) ... 오 수치스러운 시대여! 이 시대는 자신의 어머니이며, 자기가 누리는 모든 고귀한 점에서 덕을 보고있는 고전시대를 조소하는구나. 아니 심지어 이 시대는 자기를 저 영광스러운 과거와 동등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뛰어나다고까지 주장하는구나. 나는 이 천박한 무리, 인류의 떨거지들에게 아무런 할말이 없구려. 이들이 내뱉는 말이나 생각하는 것이란 그저 한바탕 웃음거리일뿐, 진지하게 생각할 만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 그러나 교양있는 인간을 위해서라면 우선 古典에 무지해서는 아니되며, 그리되면 凡夫와 다를바 없는 무지와 환상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외에 달리 무슨 말을 해줄 수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