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풀이/히스토리아 역사 스토리 썸네일형 리스트형 북위의 철저한 한화정책 : 효문제의 한화정책과 북위의 멸망과정 북위의 철저한 한화정책 : 효문제의 한화정책 이번 장에서는 도무제와 북위의 화북 통일 시대에 시도되었던 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1. 의 천자도 의 천자가 될 수 있다. 효문제가 가지고 있던 가장 큰 정치적 마인드는 화복 통일 이후 이민족 정권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도무제가 북위를 개창하면서 이 곧 북방 통일의 지름길이라고 여겼던 인식을 효문제는 로 여긴 듯 싶습니다. 효문제는 선비족의 천자가 오랑캐라는 인식은 버리고, 의 천자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선비족이라는 민족적 타이틀 외에는 중국식 제도를 도입하였고, 중국 영토를 지배하고 있었으며, 중국인들을 다스리고 있는 실제 북위가 곧 하늘의 명을 받은 라는 것입니다. 선비의 .. 더보기 도무제의 위 건국과 북위의 화북 통일 북위의 화북 통일 이번 장에서는 남조와 대비하여 북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북조 정권은 5호 16국의 혼란기를 끝낸 뒤, 북위가 통일하게 됩니다. 실제 북조를 통일할 수 있었던 기반을 마련한 나라는 저족이 세운 이었습니다. 전진의 부견은 강력한 군사력과 유목민족의 기마전술을 융합하여 북조 뿐 아니라, 중국 전역을 통일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초창기 유목민족정권의 한계라고 할까요? 전진은 전술상의 큰 맹점으로 에서 남조의 유유에게 크게 패한 뒤 몰락하고 맙니다. 결국 북조를 통일한 것은 선비족의 국가인 북위였습니다. 이 때가 남조의 송문제 시기인 439년이었죠. 이 때부터를 북조(북위) vs 남조(송-제-양-진)이 대립하는 남북조 시대라고 합니다. 1. 북위의 태조 도무제의 건국 북위는 서진 .. 더보기 광개토대왕릉비 해석에 대한 진실 광개토 대왕릉비에 대한 문제점 논의(종합자료) 1. 광개토 대왕릉비에 관한 이 사이트 내 검색 자료(히스토리아) 비문 전문 해석 : http://historia.tistory.com/236 비문 해석(한문포함) : http://historia.tistory.com/909 고구려의 영토 확장 : http://historia.tistory.com/314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일부 : http://historia.tistory.com/323 비문 위치와 내용 : http://historia.tistory.com/328 2. 광개토 대왕릉비는? 광개토대왕은 보통 우리가 영토를 넓힌 왕(광,개,토)이라는 뜻에서 그렇게 부릅니다. 그러나 실제 이름은 담덕이었고, 묘호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이라는 엄청난 묘호를 쓰고.. 더보기 중세 독일의 발전 3편 - 12c 호엔쉬타우펜 왕조 ~ 15세기 합스부르크왕조 중세 독일의 발전 3편 - 12c 호엔쉬타우펜 왕조 ~ 15세기 합스부르크왕조 중세 독일사 1,2편에서 다루었던 핵심적인 내용은 작센제후의 신성로마제국이었습니다. 오토 1세의 신성로마제국은 보편적인 황제권과 독일 국민의 국왕권이라는 2중적인 성격을 가지고, 독일내 통일국가 + 로마제국의 세계국가를 동시에 실현항려고 하였죠. 그 결과 교황권과 크게 충돌하게 되었고, 결국 카노샤의 굴욕, 보름스 협약 등을 거치면서 교황권과 어느 정도 타협하게 됩니다. 교황권과의 대대적인 마찰이 끝난 후 신성로마제국은 이제 국내 문제를 해결하는 단계로 접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국의 국내문제라는 것도, 항상 교황청이 있는 와 연관이 되는 관계로, 역사가 평탄치만은 않습니다. 그럼 12-13세기의 신성로마제국의 왕들인 프리드.. 더보기 중세 독일의 발전 2편 - 작센왕조와 살리에르 왕조 중세 독일의 발전 2편 - 작센왕조와 살리에르 왕조 1. 10세기 작센 왕조 오토 1세 이후 신성로마제국은 오토 1세의 근거지인 작센지방에서 국왕을 배출하였습니다. 작센왕조는 가장 큰 지상과제가 독일에서 맘대로 할거하는 부족공들의 세력을 눌러놓는 것이었죠. 독일에서는 오토 1세가 추진한 종교제후의 세력 신장이라는 정책을 계속적으로 추진하였습니다. 이 정책으로 계속적으로 부족공들이 왕권에 도전하는 것을 막았죠. 그리고 부족공들을 막기 위한 또하나의 방편으로 새로운 세속 제후들을 육성하는데 이것이 입니다. 그들은 각 공국의 부족 제후들을 막기 위해 새롭게 탄생한 신흥 귀족이었습니다. 퓌르스텐은 광대한 영지를 소유하고 있었고, 국왕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부족 제후와 같은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하였습니다. 2... 더보기 중세 독일의 발전 1편 - 동프랑크 왕국의 분열과 신성로마제국 중세 독일 봉건국가의 발전 1. 9세기 - 동프랑크 왕국에서 분리된 형식상의 통일 국가 독일의 역사는 프랑스, 이탈리아와 함께 프랑크 왕국의 분열이라는 역사적 상황에서 출발합니다. 베르됭-메르센 조약으로 프랑크 왕국이 분열된 후 독일지방은 동프랑크 왕국으로서 수많은 소국들이 난립한 후진국이었습니다. 특히 이 지역은 프랑스(과거 로마의 갈리아 지방)와 달리 로마 문화에도 속하지 않은 변방이었고, 프랑크 왕국의 중심지도 아니였습니다. 이곳은 로마의 행정제도도 볼 수 없고, 영주제도 미약한 말 그대로 어리버리한(?) 지역이었죠. 단순히 족장 수준의 귀족과 대대로 농사를 짓고 살아온 자영농이 거주하는 자유 지역이었습니다. 9세기 이후 프랑크 왕국의 핏줄로 내려오던 카롤링거 왕조가 약해지자, 각 지역을 다스리는 .. 더보기 남조 정권의 계승 과정 : 송, 제, 양, 진의 무신 정권과 귀족 사회 남조 정권의 계승 과정 이번 장에서는 5호 16국 시대가 진행되는 동안 한족 정권인 남조 정권에 대하여 간략히 포스팅해보겠습니다. 그 두 번재 국가로 을 살펴보죠. 중국 남조는 동진 - 송 - 제 - 양 - 진 - 수(통일국가)로 연결됩니다. 5호 : 후한조부터 중국내지 이주 → 중국지식인의 사융론(한(흉노) - 후조(갈) - 전진(저 : 비수전투) -북위(선비)) △ 秦의 통일(BC 221) → 한제국(BC 202) → 왕망(8년) → 후한(23년) → 삼국시대(220) → 서진(265) △ 화북 : 5호 16국(304-439) → 북위(439-539) → 동위(북제), 서위(북주) → 수의 통일(589) △ 화남 : 동진(317-420) → 송-제-양-진(420-589) 1. 송 나라 시대 실제 송,.. 더보기 중국의 동진 시대 : 북래귀족들이 강남을 개발하기 시작하다. 중국의 동진 시대 : 북래귀족들이 강남을 개발하기 시작하다. 이번 장에서는 5호 16국 시대가 진행되는 동안 한족 정권인 남조 정권에 대하여 간략히 포스팅해보겠습니다. 그 첫 번재 국가로 을 살펴보죠. 중국 남조는 동진 - 송 - 제 - 양 - 진 - 수(통일국가)로 연결됩니다. 1. 동진 정권의 시작 : 북래 귀족들이 정권을 잡아 버리다. 서진이 멸망한 이후 사마씨인 사마예는 남쪽으로 내려와 새로운 동진 정권을 수립하였습니다. 이 동진 정권은 북방의 5호에 비해 중국 전통 왕조라는 명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중국의 한족들은 동진 정권으로 서로 내려오려고 하였고, 동진 정권은 화북의 한족 지배층들을 적극적으로 포섭해나가며 북방 북가들과 대립할 수 있는 힘을 쌓으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남조.. 더보기 고중세 역사학의 발달 과정 고중세 역사학의 발달 과정 1. 삼국시대 : 역사학이 성립되다 삼국시대 이전에는 제대로 된 역사학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의거할 때, 한국에서 제대로 된 역사서를 편찬한 시기는 삼국시대로부터 비롯됩니다. 삼국시대의 역사편찬은 왕권의 이데올로기 강화를 목적으로 합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역사서를 편찬한 시기가 대체로 강력한 를 확립하는 시기였습니다. 고구려의 유기는 5c 고구려의 강성기에, 백제의 서기는 근초고왕의 전성기에, 신라의 국사는 신라 6세기 진흥왕기에 각각 제작되었습니다. 이것은 역사학이라는 학문을 객관적으로 인식한 것이 아니라 역사학을 을 홍보하여 왕권에 대한 정당성을 확립하는 수단으로 본 것입니다. 당시의 역사서들은 남아있는 것들이 없기 때문에 내용을 자세히 알 .. 더보기 중세프랑스사 2 - 카페왕조에도 중앙 집권의 시기가 오다 중세프랑스사 2 - 13c 중앙 집권이 이루어지다. 1. 13c 왕령은 계속 확장되다 : 알비즈와 십자군 필립 2세 존엄왕의 왕령 확장 노력으로 카페왕조는 어느 정도 왕조라고 할 만큼의 형식은 잡아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카페왕조는 미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왕령의 관리를 위하여 바이이와 세네샬이 파견되었지만, 이들만으로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기에는 미약했으니까요. 13세기의 프랑스 왕권 강화는 당시 교황권의 전성기라는 점을 최대한 이용하여 왕권강화책을 실시한 시기입니다. 당시 11, 12세기에는 교황권이 이단으로 규정한 많은 종교파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파가 바로 알비즈와파(카다리파)와 왈도파 였습니다. 알비즈와파는 동방에서 들어온 마니교의 영향으로 철저한 금욕주의 사상을 내포한 크리스트교 교리를 확.. 더보기 이전 1 ··· 27 28 29 30 31 32 33 ··· 4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