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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히스토리아 역사 스토리

신라의 지배층 - 성골과 진골이란? 신라 지배층 - 진골과 성골 1. 진골이란? 신라가 중앙집권화되는 과정에서 족장세력으로 영역을 가지고 있던 세력을 체제에 끌어들이면서 이라는 새로운 계급이 성립하였습니다. 이들 은 신라의 지배집단으로서의 우월성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신라 사회가 초기의 소국을 벗어나 체제 정비를 하는 지증-법흥-진흥왕기를 거치면서, 지배층의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가야계 귀족들이 신라에 유입되었고, 진흥왕의 영토확장으로 북방계 귀족들도 신라체제에 흡수됩니다. 그리고, 삼국통일기에 이르면, 족의 증가로 인하여 골족들의 특별한 표지가 필요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 시기에 내물 마립간계 후손들은 자신들의 혈통을 다른 지배집단과 구분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위치를 격상시킬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즉, 차별화된 지배.. 더보기
우리가 완전히 잘못알고 있었던 고대 식읍과 녹읍의 개념 정리 우리가 잘못알고 있던 고대 사회에서의 식읍과 녹읍제도 1. 고대 사회에서 식읍이란 무엇인가? 식읍이란, 전쟁 등을 통하여 공이 있는 자에게 내린 토지를 말합니다. 설명하자면, 왕실의 성원, 대공신 등 아주 소수의 일부 공훈자들에게 특별 급여로 땅을 지급하는 것을 말하죠. 땅을 지급한 대신 왕실을 번병하여 지키고, 국왕에게 충성하라는 의무를 부여합니다. 즉, 식읍은 권리와 의무가 동시에 부여된 땅입니다. 식읍으로 받은 땅에서는 인민, 토지 등을 포괄적으로 지배할 수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광역 지배가 허용된 것이지요. 사실 식읍은 실제 땅을 내려주는 경우도 많았지만, 초기 국가시대에 소국의 족장들에게 원래 영토의 기득권을 허용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원래 소국 점유지에 대한 모든 권리를 양도한 것으로 .. 더보기
유럽의 오만 : 중세 유럽사를 유럽인 스스로 <암흑기>로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
유럽 각국사 : 중세봉건왕정의 발전 개요 중세봉건왕정의 발전 이번 포스트에서는 중세 유럽 각국사의 발전을 포스팅하기 위한 배경 지식으로서 중세 봉건 왕정이 성립된 배경을 간략히 다루어 봅니다. 아주 짧게 포스팅 하고, 각 국가별로 여러 파트로 나누어서 유럽 중세 각국사를 다뤄보겠습니다. 이 포스팅과 관련된 중세 각국의 역사에 관련된 글들은 http://historia.tistory.com/category/서양사이야기/중세각국사 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1. 중세 봉건 왕조는 왜 절대주의 국가가 아닌가? 중세 봉건 왕조는 프랑크 왕국의 분열 이후, 각 지역에서 정치적으로 성장한 국가들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들 국가는 근대적 의미의 가 아니라, 각 지역에서 권력 유지를 하기 위한 국가이고, 국민의식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봉건적 왕조라는 말은 일단,.. 더보기
중세 도시 마지막 편 - 중세 도시에서의 자유란 무엇인가? 중세 도시 마지막 편 - 중세 도시에서의 자유란 무엇인가? 이번 포스트에서는 중세 상업과 도시에 대한 마지막 포스트입니다. 중세 도시에서의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히 적어볼까 하네요. 1. 11-14c의 도시 규모 11세기 이후 생긴 도시들은 그 성립 자체가 상업적 거주지를 확보하고, 영주와 교회세력으로부터 상공업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따라서 도시들은 성립과 동시에 크고 작은 성곽과 도시 구역을 책정하고, 그 일정 구역 내에서 자치권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습니다. 따라서 중세의 도시들을 아시아적인 대도시들와 같은 수준으로 보아서는 절대 안될 것입니다. 당시 중국, 이슬람 등의 도시들은 농경이 정착된 기반 위에 국가 지원으로 농업-상공업을 이어주는 대도시들이 많았습니다. 아시아.. 더보기
중세 도시를 이끌어 간 경제의 주체 : 길드 중세 도시를 이끌어 간 경제의 주체 : 길드 이번 포스트에서는 이전 포스트였던 상업발달 부분, 중세 도시발달 부분과 연결되는 포스트로서, 중세 도시 경제의 주체였던 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할까 합니다. 1. 길드가 생겨난 이유는? 길드의 발생 원인은 중세 도시들이 성립된 원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중세의 도시들은 그 성립자체가 군주의 특허장을 받아 자치권을 획득하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도시민들은 도시에 애착을 가지고 서로 뭉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시의 분열은 곧 도시민의 몰락을 뜻하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이러한 도시들은 곧 상업과 수공업을 기반으로 하였기 때문에 상공업이 최소한 유지되어야지만 도시민들은 버틸 수가 있었습니다. 상공업이 파탄에 이르는 순간 그 도시는 봉건영주에게, 혹은 .. 더보기
11-14c 중세사 : 중세 시대 도시가 발달하기 시작하다. 11-14c 중세사 : 중세 시대 도시가 발달하기 시작하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전 포스트와 연결되는 내용으로, 상업발달로 인한 도시 경제의 활성화와 이것이 14-15세기에 미치는 영향을 간단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1. 도시가 생겨나다 도시가 출연하게 된 배경은 11세기 이후 노르만, 마자르, 이슬람과 같은 외부 세력이 유럽에서 물러난 뒤 중세 정치, 경제가 안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정치, 경제의 안정은 유럽 사회의 개간, 개척 사업의 신호탄이었고, 유럽사회는 이제 생산력이 증가하고 시장이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상업이 발전 속에서 중세 도시의 발달이 촉진되는 것입니다. 중세 도시라는 것은 상인들이 모이는 거류지에서 출발합니다. 상인들은 중세 장원, 장원의 교회, 교회의 교구, 영주의 성곽 등에서 머물.. 더보기
화랑도의 기원과 역할, 그리고 진흥왕의 화랑도 개편 목적 분석 진흥왕대 화랑도의 개편 -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1. 화랑도에 관한 사료부터 읽어보자! 진흥왕은 천성이 풍미하여 신선을 숭상하고, 민가의 아름다운 처녀를 가려서 원화로 삼았다. 원하는 무리를 모아 그 중에서 인물을 뽑고 효제와 충신을 가르치기 위한 것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요체였다. 이에 남모와 교정 낭자를 원화로 뽑으니, 모여든 무리가 300-400 명이나 되었다. 교정은 남모를 질투한 나머지 술자리를 베풀어 남모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한 후에 몰래 북천으로 메고 가서 돌을 매달아 빠뜨려 죽였다. 무리는 남모가 간 곳을 알지 못해 슬피 울면서 헤어졌다. 이로 인하여 준정은 사형에 처해지고 무리는 흩어지게 되었다. 그러자 왕은 영을 내려 원화를 폐지하였다. 그 뒤 여러 해만에 왕은 국가를 흥하게 하려면.. 더보기
유럽 중세사 10 - 중세 시대 상업이 발달하기 시작하다 중세 시대 상업이 발달하기 시작하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중세시대가 암흑기가 아니라, 상업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상업발달의 배경, 내용을 정리하고 상업 도시가 어떤 면을 띄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죠. 1. 농업발달이 상업 발달을 초래하다. 보통 서양사 학자들은 중세 11세기 부터를 한 시기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용어 이해가 잘 안되더군요. 부활이란 말은 이전에도 전성기가 있었다는 뜻인데, 언제 상업이 전성기였는지.... 그리스인가? 로마인가? 뜬금없는 부활이라는 말이 맘에 안들어서 여기서는 이라는 용어를 키워드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상업이 중세에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11세기입니다. 이전의 중세사회는 상업이 발달한 적이 없었죠. 4세기 게르만의 이동, 7.. 더보기
한나라 : 유교를 국교화하여 체계를 정립하다 한나라 : 유교를 국교화하여 체계를 정립하다 이번 장에서는 한나라 시기의 가장 큰 업적인 한무제의 유교 국교화를 중심으로 한나라 시기 유교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다루어 보겠습니다. 1. 한나라 초기의 유교 사상 한의 초기, 건국자인 유방은 유교에 무지했습니다. 그리고 건국집단인 유협집단도 수준낮은 의리, 충성 등의 기초적인 이념만으로 뭉친 협객집단이었습니다. 따라서 건국초의 유방은 저명한 학자인 에게 학문적 교양을 배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는 유명한 말을 하면서 유방에게 유교이념을 받아들일 것을 권합니다. 그러나, 육가의 말을 듣고 공자묘를 만든 유방도 아직 유교이념에는 무지했습니다. 그리고, 유방이 죽은 뒤 세력을 잡은 유방의 부인 여씨 일족은 유교를 왜 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초기의 한에서는 유가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