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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히스토리아 역사 스토리

고대 사회에서의 <부체체론> 고대 사회에서의 1. 부체제론과 귀족연합론 부체제론과 귀족연합론은 초기 삼국시대의 독자적 족장세력을 국가가 흡수하는 것에 대한 관점의 차이 논쟁입니다. 부체제론에서는 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는데 비해, 귀족연합론은 이라는 것에 키워드를 맞추어 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귀족연합론부터 볼까요? 귀족 연합론이란, 초기 국가의 형태가 에 주목하는 이론입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국왕과 귀족은 서로 권력에 있어서 주도권을 놓고 다투는 존재입니다. 삼국이 각 독자 세력들을 관등제도에 의해 편제하였지만, 과연 이 관등제도가 왕권과 귀족권 중에 어떤 부분에 초점이 맞추어 졌는가를 논의합니다. 일반적으로 논의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관등제도의 성립으로 지방 족장들이 왕권에 복속되어 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귀족들이 관등.. 더보기
삼국의 통치제도 정리 삼국의 통치제도 정리 1. 통치체제의 개요 삼국은 모두 부체제 형태의 국가로 시작합니다. 부 체제란, 삼국이전부터 각기 영역을 가지고 독립적인 세력을 유지하던 각 부가 중앙왕실에 귀속되었지만, 각 부 귀족들은 각자 관리를 거느리고 독자적으로 영역을 지배하는 체제를 말합니다. 고구려와 백제, 신라 등은 모두 부가 있었습니다. 고구려와 백제는 5부, 신라는 중앙 6부가 있었죠. 이들 독자적인 부 중에서 힘이 있는 부에서 왕을 배출하였습니다. 이러한 초기 부체제를 보통 역사에서는 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각 부는 중요한 일들을 각 부의 연합회의(귀족회의)에서 결정하였습니다. 고구려의 제가, 백제의 정사암, 신라의 화백 등은 삼국 초기의 부체제를 상징하는 회의들입니다. 국왕은 어떤 명령(교, 칙)을 내릴 때에도.. 더보기
신라의 성장과정은 정복과정인가, 연합과정인가? 신라의 성장과정은 정복과정인가, 연합과정인가? 신라의 건국은 박혁거세 설화에서 시작합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서로 상반되는 두 사료를 통하여 신라의 성장과정이 어떠한 과정을 겪는 것으로 이해하는지를 파악해보려고 합니다. 전통적인 견해는 을 통한 신라의 발전입니다. 최근의 새로운 견해는 로서의 초기 신라를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1. 전통적 견해 : 신라는 정복국가로서 지배체제가 확대되었다. 신라의 발전에 대한 , 즉 과거 한국사통론, 한국사신론의 입장은 신라가 사로 6촌에서 시작하여 를 중심으로 확장해 나갔다는 관점입니다. 신라의 역사는 사로 6촌 - 사로국 - 진한연맹 - 거서간 - 차차웅 - 이사금 - 마림간 - 성골왕 시대 - 왕명 사용시대 - 불교왕명시대 - 진골왕 시대 - 중국식 연호 사용시대 등.. 더보기
의천도룡기에는 기황후가 나온다? 의천도룡기에는 기황후가 나온다? 원문 출처 : http://cafe.naver.com/noblood.cafe 이 글은 운영자가 작성한 글이 아니라 재미있는 글이 있어서 카페에서 가져왔습니다. ---------------------------------------------------------------------------- 원문 : 원의 공녀제도를 공부하신 분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인물이죠. 기황후.. 원에서 그 뛰어난 미모때문에 혜종의 황후로 꼽힌 인물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혜종이 막무가내로 그녀를 황후로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고 하는군요. 실제로 혜종은 자신의 장인을 죽여버리고 기존의 황후를 폐위한뒤 고려의 미소녀를 새로운 황후로 들여앉힙니다. 처음에는 성군이었던 혜종이지만 결국 기황후에게 빠.. 더보기
북위의 분열과 <수>의 재통일 과정 북위의 분열과 의 재통일 과정 이번 장에서는 5호 16국시대 정치사의 마지막 파트로서 북위가 분열된 이후 수나라가 재통일하는 과정을 간략히 다루겠습니다. 중요한 파티는 아니지만, 내용연결상 없으면 허전해서 그냥 포스팅 합니다. 1. 이주영의 부장들.... 강력한 무력으로 화북을 나눠먹다 지난 시간까지 북위의 발전과정을 포스트 하면서 북위 정권이 가진 도 함께 언급했었습니다. 그 위험성이란 바로, 효문제 등이 추구한 강력한 이 평성 원 거주지의 선비족들의 불만을 가져왔다는 점이었지요. 북위는 철저히 중국식 제도와 중국식 문화를 수용함으로서, 기마민족의 한계를 극복하고, 농경사회로 전환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선비족의 근거지인 평성을 버리고, 낙양으로 천도하였으며, 낙양에서 들을 적극적으로 등용하는 .. 더보기
고구려에서의 초기 발전 : 5나의 형성 고구려에서의 초기 발전 : 5나의 형성 1. 초기 고구려의 5나... 고구려는 압록강 중부에서 거주하던 맥족을 기원으로 하고 있습니다. 고구려의 등장 시기는 위만조선이 철기를 가지고 고조선의 실권을 장악할 무렵부터 소집단의 씨족공동체적 유제를 간직한 집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선진 사회인 중국, 고조선으로부터 철기를 도입한 듯 싶은데, 이 철기를 사용하면서 사회가 분화되고 점차 정치집단이 확대되는 듯 보입니다. 고구려는 고조선이 멸망하고, 동북아시아에 공백기가 찾아오면서 발전합니다. 고구려 집단이 발전하게 된 시기는 대락 기원후부터 2세기 말 경인데, 그 특징은 동북아시아의 공백기를 대체하려던 세력을 몰아내면서 시작됩니다. 가장 먼저 고구려 집단이 등장하게 된 것은 을 축출하면서부터입니다... 더보기
염사치 사화를 통해 본 한군현의 정책 염사치 사화를 통해 본 한군현의 정책 1. 염사치 사화의 내용 왕망 때에 이르러 염사치가 진한의 우거수가 되었다. 그는 낙랑 땅이 토지가 아름답고 백성들이 부유하게 산다는 말을 듣고, 자기 나라에서 도망해 나와서 그곳에 항복하려고 자기 사는 부락을 나왔다. 이 때 그는 밭 가운데서 참새를 쫓는 남자 한 사람을 보았다. 그러나 그 사람의 말을 들으니 한나라 사람이 아니다. 염사치가 그 까닭을 묻자 그 남자는 말하기를, [우리들은 한나라 사람인데 내 이름은 호래요. 우리들 천오백 명이 나무를 베려고 나왔다가 한나라 사람들에게 붙들려서 모두 머리를 깎고 종이 되어 지금 삼년이 되었읍니다] 한다. 염사치는 묻기를, [그렇다면 나는 지금 한나라 낙랑에 항복하러 가는 길인데 그대들도 같이 가겠는가] 하니 그들은 모.. 더보기
이익의 삼한 정통론으로 본 고조선의 기원 이익의 삼한 정통론 주장 1. 이익의 삼한 정통론 동국의 역대 흥망은 대략 중국민족과 그 기원을 같이 한다. 단군은 중국 요임금과 같은 시기에 흥하였다. 주나라 무왕대에 이르러 기자가 와서 조선왕에 책봉되었다. 그 뜻한 무엇인가? 단군조선의 후예들이 점점 쇠퇴하여 미약하였고, 국가의 임금이 돌아오지 못하였으므로 기자가 와서 새롭게 문을 연 것이다. 여기에 8조의 교를 내리니 지금 전하는 바가 3개조이다. (중략) 무릇 문명의 개화는 실로 기자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후손들이 그 국가의 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위만이 와서 간사함으로 준왕을 몰아내었다. 준왕은 오히려 군대를 이끌고 남으로 내려가 영토를 다시 넓히니, 준왕에게 복속한 나라가 50여국이었다. 이로서 동쪽 국가의 정통은 끊기지 않게 된.. 더보기
고조선과 단군을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인식하였을까? (삼국 ~ 일제시대) 고조선과 단군을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인식하였을까? (삼국 ~ 일제시대) 1. 삼국시대에는 고조선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삼국시대의 고구려, 백제, 신라의 지배층들은 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습니다. 삼국 시대 기록들을 살펴보면, 거의 자신들의 계통을 철기 시대 국가들로부터 찾고 있습니다. 삼국은 모두 독자적 건국신화를 가지고 있고, 자신들의 뿌리는 북방에서 왔지만, 독자적인 영역국가임을 주장합니다. 사실 삼국사기라는 우리 역사서의 편찬 태도 자체가 고대 고조선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다는 것을 볼 때, 고조선에 대한 삼국시대 지배층들의 인식은 지금 우리가 삼국사기를 통해 읽어서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삼국시대의 지배층들이 고조선에 대한 인식을 하였다는 근거는 삼.. 더보기
부보상, 보부상? - 보부상이 아니라 부보상을 써야 한다? 부보상, 보부상? 1. 부보상 용어 사용운동에 대한 인터넷 기사 지난 25년간 부보상 명칭 되찾기 활동을 벌여온 경기대 이훈섭 교수가 그간의 활동을 한권의 책으로 묶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부보상의 용어가 왜곡된 사유와 아울러 조선왕조에서의 부보상의 역사적 역할과 행상문화 그리고 아직까지 별로 알려지지 않은 부보상 관련 귀중한 사료를 현대어로 번역해 실었다. 저자는 “부보상 명칭회복 운동은 일제에 의해 왜곡된 우리 상인의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학문의 광복운동”이라며 “조선시대 유통경제의 중심축에서 활약한 부보상의 활동을 널리 알리고, 식민통치과정에서 일본에 의해 왜곡된 명칭을 바로잡는 동시에 부보상에 대한 고찰과 재정립을 통하여 이들의 얼을 되살려 보고자 그간의 연구업적을 한권의 책으로 펴냈다”고 밝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