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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

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수서 동이전 신라 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수서 동이전 신라 신라국은 고려 동남쪽에 있으니 한나라 때는 이곳이 낙랑 땅이고 혹은 이것을 사라라고 한다. 위나라 장수 무구검이 고려를 쳐서 깨치자 그들은 옥저로 달아났다가 그 뒤에 다시 본국으로 돌아왔는데, 여기에 그대로 머물러 있던 자들이 드디어 신라가 되었다. 그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모두 섞여 살아서 중국 사람도 있고, 고려와 백제 사람들도 있다. 땅은 옥저, 불내, 한예의 땅을 모두 차지해 갖고 있었다. 그들의 왕은 본래 백제 사람이니 바다로부터 도망해서 신라로 들어가서 드디어 그 나라에서 왕노릇을 하고, 왕위를 전해 나가서 진평에까지 이르렀다. 개황 십사년에 사신을 보내서 공물을 바치자 고조는 진평을 배하여 상개부낙랑군공 신라왕을 삼았다. 그 조상은 백제에 .. 더보기
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수서 동이전 백제 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수서 동이전 백제 백제의 조상은 고려국에서 나왔다. 그 나라 왕에게 부리는 종 하나가 있었다. 이 종이 졸지에 태기가 있자 왕은 죽이려 했다. 그러나 종은 말하기를, [마치 닭의 새끼 같은 물건이 와서 저의 몸에 스치더니 이내 태기가 있는 것입니다] 한다. 이 말을 듣고 왕은 그대로 내버려 두었더니 뒤에 드디어 한 남자 아이를 낳았다. 이것을 변소에 버렸으나 오래 되도록 죽지 않으므로 이상히 여겨 신이라 하고 어미에게 명하여 기르게 하고 이름을 동명이라 하였다. 그러나 이 동명이 자라자 고려왕은 이를 꺼려하였다. 동명은 두려워서 도망하여 엄수에 이르니 부여 사람들이 함께 그를 받들었다. 동명의 후손에 구태라는 자가 있어 어진 일과 믿음에 독실하여 비로소 그 나라를 대방 .. 더보기
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수서 동이전 고려 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수서 동이전 고려 고려 조상은 부여에서 나왔다. 부여왕이 일찌기 하백의 딸을 얻어서 방 안에 가둬 두었다. 그러나 태양 빛이 마냥 그녀를 따라다니더니 이 태양 기운이 감동되어 태기가 있기 시작하여 커다란 알 한 개를 낳았다. 이 알을 깨치고 한 남자가 나왔는데, 이 사람의 이름을 주몽이라 했다. 부여 조정의 신하들은 이 주몽이 사람이 낳은 것이 아니라고 해서 모두 죽이기를 청했지만 왕은 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 주몽은 차츰 자라자 왕이 사냥하러 갈 때 따라가면 언제나 짐승을 많이 잡는다. 그래서 신하들은 왕께 청하여 또 죽이라고 한다. 이 사실을 그 어머니가 알고 주몽에게 말해 주었다. 그리하여 주몽은 부여를 버리고 동남쪽으로 달아나다가 큰 물을 만났는데 물이 깊어서 .. 더보기
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수서 지리지 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수서 지리지 ○ 요서군 옛날에는 영주를 두었고, 개황 초년에 와서는 총관부를 두었다가 대업 초년에 와서 폐지했다. 현이 하나요, 호수는 칠백오십일이다. 1)유성 후위때 화룡성에 영주를 두어 건덕, 기양, 창려, 요동, 낙랑, 영구 등 모든 군과 용성, 대흥, 영락, 대방, 정황, 석성, 광도, 양무, 양평, 친창, 평강, 유성, 부평 등의 여러 현을 통솔하게 했다. 그러던 것을 후제에 와서는 오직 건덕, 기양의 두 군과 영락, 대방, 용성, 대흥 등의 몇 현만 머물러 두고 그 나머지는 모두 폐쇄했다. 다음 개황 원년에 와서 오직 건덕 한 군과 용성 한 현만 머물러 두고 나머지는 모두 폐쇄했더니 얼마 안 되어 또 군을 폐하고 현으로 고쳐 용산현이라 이름했고, 십팔년에 다시.. 더보기
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수서 음악지 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수서 음악지 처음 개황 초년에 칠부악을 정해 두게 했다. 이 칠부악은 첫째 국기, 둘째 청상기, 세재 고려기, 네째 천축기, 다섯째 안국기, 여섯째 구자기, 일곱재 문강기이다. 또 이 외에도 소륵, 부남, 강국, 백제, 돌궐, 신라, 왜국 등의 기악이 있다. 대업 년중에 양제가 비로소 청악, 서량, 구자, 천축, 강국, 소륵, 안국, 고려, 예필 등을 정했으니 이것으로 구부를 삼았다. 모든 악기도 창조할 때의 제도에 의해서 여기에서 완비하게 되었다. 소륵, 안국, 고려는 모두 후위 때 평풍씨에게서 나와서 서역지방에 통용되어 그 기술을 얻었고, 뒤에 와서 점점 번성하여졌다. 그런데 그 소리들을 모아서 태악과 구별하게 된다. 고려의 가곡은 지주무곡이 있고, 가지서가 있다. .. 더보기
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주서 이역전 백제 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주서 이역전 백제 백제는 그 조상은 대개 마한의 속국으로 되어 있으니 즉 부여의 딴 종족 중의 하나이다. 구태라는 자가 있어 나라를 대방 옛땅에 일으켰다. 그 땅의 경계는 동쪽으로 신라에 닿았고, 북쪽은 고구려에 인접되었으며, 서쪽과 남쪽은 모두 큰 바다가 끝으로 되어 있다. 동쪽과 서쪽의 길이는 사백오십리가 되고, 남쪽과 북쪽의 길이는 구백여 리가 된다. 고마성을 쌓아가지고 살고 있으며, 이 성 밖으로는 다시 다섯 방위의 성이 있다. 그 중 방은 고사성이요, 동방은 득안성이요, 남방은 구지하성이요, 서방은 도선성이요, 북방은 웅진성이다. 왕의 성은 대여씨이고 이름은 나하라고 했는데, 백성들은 왕을 불러 건길지라고 했으니 이는 중국 말로 왕이란 말이다. 또 왕의 아내의 .. 더보기
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주서 이역전 고려 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주서 이역전 고려 고려는 그 조상이 부여에서 나왔다. 그들은 말하기를, 자기들의 시조는 주몽이라고 하는데, 주몽은 하백의 딸이 해그림자가 비쳐서 그를 뱄다고 한다. 주몽은 자라자 재주와 지략이 있으므로 부여 사람들은 그를 미워해서 내쫓아 흘승골성에 살게 했더니, 그는 스스로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 하고 고로 성을 삼았다. 그러던 것이 그 손자 막래에 이르러 세력이 점점 강성해져서 부여를 쳐서 신하로 삼았다. 그리고 막래의 자손 연이 비로소 사신을 후위에 보내기 시작했다. 그 땅은 동쪽으로 신라에 이르고, 서쪽으로 요수를 건너 이천 리를 가며, 남쪽으로 백제와 연접되었고, 북쪽으로는 천여 리 밖에 말갈과 연결되어 있다. 평양성을 쌓았는데 그 성은 동서로 육리나 되고 남쪽으로.. 더보기
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위서 동이전 거란전(글안국) 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위서 동이전 거란전(글안국) 글안국은 고막해 동쪽에 있다. 모두 다른 종족끼리 같이 떼를 지어 사는데 모두 소나무 틈에 숨어서 산다. 등국년중에 중국 군사가 크게 그들을 깨치자 드디어 도망해서 고막해와는 등을 지게 되었다. 그런 지 수십년을 지나자 차츰 불어나서 부락을 가지고 살게 되었다. 이곳은 화룡 북쪽 수백 리 되는 곳에 있는데 도둑이 많다. 진군 이후로 조공하기를 요구하자 해마다 이름 있는 말을 바쳐 왔다. 현조 때에는 막불흘하진을 사신으로 보내서 물건을 바치고 비로소 여러 나라들의 끝에 반열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가 자기 나라에 돌아가자 중국의 아름다운 것을 서로 전해 말하니 이로써 맘속으로 모두 사모하게 되었다. 이에 동북쪽에 있는 여러 오랑캐 족속들이 이 소.. 더보기
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위서 동이전 물길국 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위서 동이전 물길국 물길국은 고구려의 북쪽에 있으니 옛날의 숙신국이다. 부락마다 다 각각 어른이 따로 있고 서로 통일되지 않았다. 그 나라 사람들은 몹시 꿋꿋하고 사나와서 동이 여러 나라 중에서 가장 강성하다. 또 말이 독특하게 다르고, 항상 두막루 등의 나라들을 우습게 여기니 모든 나라들이 역시 근심스럽게 생각했다. 이 곳은 중국 낙양과의 거리가 오천 리나 되고, 화룡, 북쪽으로 이백여 리를 가면 선옥산이 있다. 산으로 해서 북쪽으로 십삼일을 가면 기려산에 이르고, 또 북쪽으로 칠일동안을 가면 태로수에 이르고, 또 동북쪽으로 십팔일 동안을 가야 그 나라에 이른다. 그 나라에는 큰 물이 있어 넓이가 삼리가 넘는데, 그 물을 속말수라고 한다. 땅이 몹시 습하기 때문에 성을.. 더보기
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위서 동이전 백제 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위서 동이전 백제 백제국은 그 조상은 부여에서 나왔다. 그 나라는 북쪽은 고구려와 떨어지기 천여 리로서 조그만 바다 남쪽에 있어, 그 백성들은 대를 이어 그 곳에 살고 있다. 땅은 습한 곳이 많아서 모두들 산에서 산다. 오곡을 가꾸어 이것을 먹는다. 그 나라의 의복과 음식은 고구려와 비슷하다. 연흥 이년에 그 나라 왕 여경이 비로소 사신을 보내 표문을 올려 말하기를, [신이 동쪽 끝에 나라를 세운 뒤로 범과 이리가 길을 막고 있아와, 비록 대대로 신령스러운 감화를 입기는 하오나 이것을 받들어 보답할 길이 없압나이다. 이에 멀리 대궐을 바라보오니 그 정이 망극하옵니다. 서늘한 바람이 조금씩 불어오는데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황제폐하께서 성체 강녕하시온지 우러러 생각하는 정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