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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사료 - 1977. 3. 22 민주구국헌장 현대사 사료 1977. 3. 22 민주구국헌장 우리들의 발언과 행동은 극도로 제약되어 있다. 지난 76년 11월이래 특히 금년 2월과 3월에 걸쳐 전국을 삼엄한 사찰, 경계망이 펼쳐지고, 다수의 성직자들을 포함한 각계각층의 민주시민들이 정보원과 경찰에 의해 납치, 연금 되고 민주주의를 위하여 계획된 집회와 발언은 완전히 봉쇄되고 있다. 이것은 지금 우리 민중 사이에 새로이 높아가고 있는 민주주의에의 열정을 입증해주는 동시에 우리 민주화 투쟁에 가해지고 있는 탄압이 얼마나 가혹한 것인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숨통이 막힐 것 같은 이러한 조건 아래서 우선 연락이 닿을 수 있었던 시민들만이 이 문서에 서명하였다. 우리는 이 문서가 시민들 사이에 널리 전파될 수 있기를 희망하며 그것을 위하여 많은 사람들의 보이지.. 더보기
현대사 사료 - 1976. 3. 1 민주구국선언문(3. 1 명동사건) 현대사 사료 1976. 3. 1 민주구국선언문(3. 1 명동사건) 오늘로 3,1절 쉰일곱 돌을 맞으면서 우리는 1919년 3월 1일 전세계에 울려 퍼지던 이 민족의 함성, 자주독립을 부르짖던 아우성이 쟁쟁히 울려와서 이대로 앉아 있는 것은 구국선열들의 피를 이 땅에 묻어버리는 죄가 되는 것 같아 우리의 뜻을 모아 '민주구국선언'을 국내외에 선포하고자 한다. 8, 15 해방의 부푼 희망을 부수어 버린 국토분단의 비극은 이 민족에게 거듭되는 시련을 안겨주었지만 이 민족은 끝내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6, 25동란의 폐허를 딛고 일어섰고, 4, 19 학생의거로 이승만 독재를 무너뜨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가슴가슴에 회생시켰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이 민족은 또다시 독재정권의 쇠사슬에 매이게 되었다. 삼.. 더보기
현대사 사료 - 1974. 12. 25 민주국민헌장 현대사 사료 1974. 12. 25 민주국민헌장 우리는 자유와 평화와 정의를 사랑하고 압제와 불의를 거부하는 민주국민이다. 우리는 독재를 반대하며 정보정치를 배격한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모든 법적 제도적 장치를 거부하며 그 타파를 위하여 투쟁한다. 국민이 언론과 신앙의 자유의 누리고 공포와 불신, 결핍으로부터 해방된 민주사회의 건설이 우리의 나아갈 길이다. 침묵과 방관은 방자한 권력의 존속과 팽창을 조장하는 것이므로 이 같은 권력에 저항하는 것은 민주국민의 권리이며 의무이다. 부정과 부패는 민주국민의 공적이요, 민주사회의 독소이다. 자주자립의 국민경제확립과 그 균형발전은 민주주의의 실현의 토대이다. 모든 국민은 각자의 정당한 권익옹호를 위해 단체를 구성하고 가입할 수 있으며 인간의 존엄성에 상응.. 더보기
현대사 사료 - 1974. 4. 11 김상진 열사 양심선언문 현대사 사료 1974. 4. 11 김상진 열사 양심선언문 더 이상 우리는 어떻게 참을 수 있으며 더 이상 우리는 그들에게서 무엇을 바랄 수 있겠는가? 어두움이 짙게 덮인 저 사회의 음울한 공기를 헤치고 죽음의 전령사가 서서히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우리는 직시하고 있다. 무엇을 망설이고 무엇을 생각할 여유가 있단 말인가! 대학은 휴강의 노예가 되고, 교수들은 정부의 대변자가 되어가고, 어미닭을 잃은 병아리마냥 우리들은 반응없는 울부짖음만 토하고 있다. 우리의 주장이 결코 그릇됨이 아닐진대, 우리의 주장이 결코 비양심이 아닐진대 우리는 어떻게 더 이상 자존을 짓밟혀, 불명예스런 삶을 계속할 것인가. 우리를 대변한 동지들은 차가운 시멘트 바닥위에 신음하고 있고, 무고한 백성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가고 있다... 더보기
현대사 사료 - 1974. 동아일보 기자들의 언론자유수호선언 현대사 사료 1974. 동아일보 기자들의 언론자유수호선언 한국기자협회는 최근 각사 기자들이 벌인 언론자유수호선언의 내용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앞으로 각 언론기관의 일선기자들이 이번 선언에서 천명한 사항을 실천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것을 밝힌다. 또 최근 동아일보와 한국일보의 발행인, 편집국장, 실무 책임부장 등이 제작과 관련하여 정보부에 연행을 당하였고 이러한 사실을 보도하기 위해 일선기자들이 집단으로 투쟁해야 했던 사건은 실로 오늘의 우리 언론에 얼마나 부조리가 만연해 있는가를 드러낸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러한 사태를 가져온 것은 각 회원사의 기자들이 선언문에서 명백히 밝힌 대로 언론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간섭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언론 내부에서도 경영진과 편집진의 사고와 호흡이 일치되지 못한 데도 .. 더보기
1975년 긴급조치 1호 ~ 9호 문건 1975년 긴급조치 1호 ~ 9호 문건 【긴급조치 1호(1974. 1. 8) : 8. 23. 오전 10시】 1.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2. 대한민국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제안 또는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3.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4. 위의 1.2.3.호에서 금한 행위를 권유, 선동, 선전하거나 방송, 보도, 출판, 기타의 방법으로 이를 타인에게 알리는 일체의 언동을 금한다. 5. 이 조치에 위반하는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하는 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하며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 이 경우에는 15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 할 수 있다. 6.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 더보기
현대사 사료 - 1973. 12.31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건의서 현대사 사료 1973. 12.31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건의서 항상 국정에 분망하신 각하께 삼가 경의를 표합니다. 위 기명자들은 1973년 12월 13일 회합하여 현하시국에 관한 의견을 교환한 결과 다음과 같은 합의를 보았기에 이를 정책수립에 참고하여주시도록 각하께 간청허가로 하였습니다. 1. 현시국은 민주주의 체제를 근본부터 또한 제도적으로 회복하여 억눌린 국민의 자유를 소생시키지 아니하고는 중대한 민족적 위기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보는바 이에 대한 각하의 적절한 조처를 기대하는 바입니다. 2. 정상적인 민주주의 체제로의 회복후에는 적어도 - 가. 국민의 기본권을 철저하게 보장할 것. - 나. 삼권분립의 체제를 재확립할 것. - 다. 공명선거에 의한 평화적 정권교체의 길을 열 것. 위의 각 조항이 포.. 더보기
현대사 사료 - 1973. 12.24 개헌청원운동 취지문 현대사 사료 1973. 12.24 개헌청원운동 취지문 개헌청원운동 취지문 - 민주주의 회복, 현행헌법 개정을 요구하는 청원운동을 전개하며 - 헌법개정 청원 운동 본부 오늘의 모든 사태는 궁극적으로 민주주의를 완전히 회복하는 문제로 귀착된다. 경제의 파탄, 민심의 혼란, 남북긴장의 재현이란 상황 속에서 학원과 교회, 언론계와 가두에서 울부짖는 자유화의 요구 등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오늘의 헌법하에서는 살 수가 없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오늘의 헌법은 그 개정의 발의권이 사실상 대통령에게만 속해 있는 것이다. 이에 우리 국민은 이와 같은 헌법개정 발의권으로부터의 소외를 극복하고 우리들의 천부의 권리를 제시하는 방법으로 대통령에게 현행 헌법의 개정을 요구하는 백만 인 청원운동을 전개하는 바이다. 이 운동.. 더보기
현대사 사료 - 1972. 19.17 박정희 대통령 특별 선언문 현대사 사료 1972. 10.17 박정희 대통령 특별선언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나는 우리 조국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번영을 희구하는 국민 모두의 절실한 염원을 받들어 우리 민족사의 진운을 영예롭게 개척해나가기 위한 나의 중대한 결심을 국민 여러분 앞에 밝히는 바입니다. 지금 우리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심대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나는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긴장완화의 흐름에 긍정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오래 전부터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긴장완화의 본질은 아직까지도 열강들의 또하나의 새로운 문제해결 방식에 지나지 않으며, 이 지역에서는 불행하게도 긴장완화가 아직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는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긴장완화라는 이름 밑에 이른바 열강들이 제3국이나 중.. 더보기
현대사 사료 - 1972. 7.4 남북 공동 성명 현대사 사료 1972. 7.4 남북 공동 성명 최근 평양과 서울에서 남북관계를 개선하며 갈라진 조국을 통일하는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회담이 있었다. 서울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1972년 5월 2일부터 5월 5일까지 평양을 방문하여 평양의 김영주 조직지도부장과 회담을 진행하였으며 김영주 부장을 대신한 박성철 제2부수상이 1972년 5월 29일부터 6월 1일까지 서울을 방문하여 이후락 부장과 회담을 진행하였다. 이 회담들은 쌍방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하루빨리 가져와야 한다는 공통된 염원을 가지고 안고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하였으며 서로의 이해를 증진시키는데서 큰 성과를 얻었다. 이 과정에서 쌍방은 오래동안 만나지 결과로 생긴 남북 사이의 오해와 불신을 풀고 긴장의 고조를 순화시키며 나아가서 조국통일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