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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

제물포 조약 제물포 조약 강화조약(제물포조약) 제 1조. 범인 체포는 20일로 한정하고 기한내에 처포하지 못하면 일본 쪽에서 맡아서 처리한다. 제 2조. 일본 관리로서 조난당한 자를 후하게 장사지낸다. 제 3조. 일본인 조난자와 유족에게 보상금으로 5만원을 지급한다. 제 4조. 일본권의 출동비 및 손해에 대한 보상비로 50만원을 조선측이 지불한다. 제 5조. 일본 공사관에 군대를 상주시키고 병영 설치, 수선 비용은 조선이 부담한다. 참고글 : 임오군란은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청이 개입하면서 청 세력이 조선에서 정치적으로 막강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입니다. 임오군란으로 청은 조선의 정치적 간섭을 하기 위한 고문을 파견할 수 있게 되었고, 군대 지휘권에 많은 영향력도 갖게 됩니다. 반면, 일본은 임오군란으로 청의 .. 더보기
임오군란 관련 사료 임오군란 관련 사료 임오년(1882) 6월 초 9일, 한성 영군들이 큰 소란을 피웠다. 갑술년(1874) 이후 궁궐, 경비가 다하여 기강이 없으며 호조와 선혜청 창고도 바닥나 한성 관리들은 봉급을 못 받았으며, 오영 병사들도 가끔 결식을 하여 급기야 5영을 2영으로 줄이고 노병과 약졸들을 쫒아냈는데, 내쫓긴 사람들은 발붙일 곳이 없으므로 팔을 끼고 난을 일으키려 하였다. 이 때 군량이 지급되지 않은 지 이미 반년이 지난 데다가 호남세선 몇 척이 도착하여, 한성 창고를 열어 군량을 먼저 지급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이 때 선혜청 당상관 민겸호의 하인이 선혜청 고지기가 되어 군량을 내주었다. 하인이 쌀을 벼껍질과 바꾸어 이익을 챙기자 많은 백성들이 크게 노하여 하인을 때려눕혔다. 민겸호는 주동자를 잡아 포도청.. 더보기
고균 김옥균 전 김옥균 인물 기록 과연 그렇다면 어찌하여야 하겠습니까? 이는 오직 밖으로 널리 구미 각국과 신의로 친교하며, 안으로는 정략을 개혁하여 우매한 백성들을 문명의 도로 교육하며, 상업을 번성시켜 재정을 정리하는 데 있습니다. 또 군대를 기르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할 수 만 있다면 영국은 마침내 거문도에서 물러날 것입니다. 그 밖의 여러 나라도 역시 침략의 뜻을 버릴 것입니다. 바야흐로 세계는 상업을 주로 하여 서로 산업의 크고 많음을 자랑하고 경쟁하는 때이거늘, 아직도 양반을 제거하여 뿌리를 뽑지 않는다면 국가의 패망은 기어코 앉아서 기다리는 꼴이 될 뿐입니다. 전하께서 이를 철저히 반성하시어 하루 빨리 무식 무농하고 수구 완고한 간신배를 축출하시고, 문벌을 폐하고 인재를 골라 중앙.. 더보기
김옥균에 대한 엇갈린 평가의 사료들 김옥균 인물 기록 갑신정변의 여러 적들(김옥균 등)은 서양을 존중하고 요순과 공맹을 비판하면서 유교를 야만이라고 하고, 도를 바꾸려 하면서 매번 개화라 일컬었다. - 속음청사, 상 - 김옥균은 청군의 종주권 아래에 놓여 있는 굴욕감을 이겨내지 못하여 어떻게 하면 이 같은 치욕에서 벗어나 조선이 세계 각국 가운데서 평등하고 자유로운 일원이 될 것인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심초사 하였다. 김옥균은 그대 교육을 받지 못하였으니, 시대 추이를 통찰하고 조선도 강력한 현대 국가가 되어야 함을 절실하게 바랬다. 그리하여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기술 채용에 따라 정부와 일반 사회의 구투인습을 일변시킬 필요를 확신하였다. 그(김옥균)는 구미 문명이 하루저녁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열국이 서로 경쟁을 벌여 점진.. 더보기
개화의 등급 - 황성신문, 서유견문 개화란 무엇인가 객이 나에게 물었다. 내가 답하였다. - 황성신문 논설, 광무 2년(1898) 9월 23일 - 무릇 개화란 인간의 온갖 만물이 가장 아름다운 경지에 이르는 것을 일컫는데, 개화에는 인륜 개화, 학술 개화, 정치 개화, 법률 개화, 기계 개화, 물품 개화가 있다. 인륜 개화는 천하만국을 통하여 그 동일한 규모가 천만년을 지나도 장구함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정치 이하의 여러 개화란 시대에 따라서 변개하기도 하고 지방에 따라 다르기도 하다. 그러므로 옛날에는 맞았지만 지금은 맞지 않으며, 저쪽에는 좋지만 이쪽에는 좋지 않은 것도 있어, 곧 고금의 형세를 살피고 피차 사정을 비교하여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버리는 것이 곧 개화의 큰 도인 것이다. - 서유견문 제 14편, 개화의 등급 - 참고글 .. 더보기
윤선학의 상소 - 동도서기론 동도서기론 : 윤선학의 상소 군신, 부자, 부부, 장유, 붕유의 윤리는 하늘로부터 얻어서 본성에 부여된 것인데, 천지에 통하고 만고에 뻗치도록 변하지 않는 이치로 위에서 도(道)가 되었습니다. 수레, 배, 군사, 농업, 기계는 백성에게 편하고 나라에 이로운 것으로 밖에 드러나 기(器)가 되니, 제가 바꾸고자 하는 것이 기인 것이지, 도가 아닙니다. - 승정원일기, 고종 19년 12월 22일, 윤선학의 상소 - 참고글 : 동도서기에 대한 명확한 내용이 담긴 사료입니다. 윤선학은 도는 우리 것으로, 기는 서양 것으로 하여 부국강병을 추구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더보기
고영문의 상소 - 동도서기론 동도서기론 : 고영문의 상소 서양 각국에 사신을 파견하여 우호를 신장시키는 한편 기술 교사를 청하여 우리 나라 상하 인민들에게 새 기술을 가르치고.... 정부와 따로 공의당(의회)을 특설하여 시무에 밝은 인사들을 참여시켜 정사 논의를 돕게 하고.... 서울 안에 큰 규모 상민들을 불러 모아 이해 편부를 상의하게 하고, 그 손해에 따라 징세하도록 하며.... 법에 따라 채광을 장려하고 화폐 유통을 장려하여, 놀고먹는 자를 없애도록 해야 합니다. - 일성록, 고종 19년 9월 22일, 고영문 상소 - 참고글 : 동도서기를 하는 구체적 방향에 대한 고영문의 상소입니다. 더보기
고종 황제의 동도서기론 주장 동도서기론 : 고종의 주장 왕이 말하였다. - 고종실록, 고종 19년 8월 5일 - 참고글 : 동도서기에 관한 내용입니다. 동도서기란, 강화도 조약 이후 서양의 열강의 침투를 막기 위해서 우리의 도덕, 윤리는 그대로 유지하되, 서양의 기술, 기계만 받아들여 부국강병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즉, 동양 유교이념인 도, 서양의 기술인 기를 합하여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동도서기론은 1881년 곽기락의 상소에서 출발압니다. 곽기락은 서양의 기계, 농업, 임업에 관한 책 중 이로운 것들을 받아들에 가려 쓰자고 하였습니다. 서양 사람이 싫은 것이지, 좋은 기술 자제도 싫은 것은 아니라는 논리이지요. 이러한 동도서기론을 조선에서는 개화 정책에 반영합니다. 위의 글은 고종의 글입니다. 더보기
곽기략의 상소 - 동도서기론, 중체서용론, 서양과학우위론 곽기략의 상소 형이상을 도라 하고 형이하를 기라고 한다. 도는 형상이 없어 기 속에 머무르니 도를 구하고자 하는 자는 기를 버리고 장차 어디로 갈 것인가. 그러므로 군자의 학은 체(體, 몸)와 용(用, 기술)을 서로 밑천 삼고 기와 도를 같이 익히는 것이다. - 속음청사, 상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바뀔 수 없는 것이 도(道)이고, 자주 변화하여 고정될 수 없는 것은 기(技)이다. 무엇을 도라 하는가? 삼강(三綱), 오상(五常)과 효제충신(孝悌忠信)을 도라고 한다. 요순, 주공의 도는 해와 별처럼 빛나서, 비록 오랑캐 지방에 가더라도 버릴 수 없다. 무엇을 기라고 하는가? 예악(禮樂), 형정(刑政), 복식(服食), 기용(器用)을 기라고 한다. 당우삼대 조차도 덜하고 더함이 있거늘 하물며 수천년 뒤에 있어.. 더보기
이항로의 화서집 중 중요부분 이항로의 화서집 또 하나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양이의 화가 금일에 이르러서는 비록 홍수나 맹수의 해일지라도 이보다 심할 수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부지런히 힘쓰시고 경계하시어 안으로는 관리들로 하여금 사학의 무리를 잡아 베시고, 밖으로는 장병들로 하여금 바다를 건너오는 적을 정벌하도록 하옵소서. 오늘날 양적의 침입을 당하여 군론이 교(외교)와 전(전쟁)으로 양분되었습니다. 그런데 양적을 공격해야 한다는 주장은 내 나라 쪽 사람, 곧 국변인의 주장이고, 양적과 화친해야 한다는 주장은 적국 쪽 사람, 곧 적변인의 주장입니다. 전자를 따르면 나라의 의상지구(조선문화의 전통)를 보전할 수 있지만, 후자에 따른다면 인류(조선인)가 금수의 지경으로 빠지고 말 것입니다. 이 점이 양적과 싸우니냐 화친하느냐 하는 차..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