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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지리지 한서 지리지 태고부터 무제(武帝) 시대까지의 통사인 사기의 뒤를 이어, 후한의 반고가 편찬한 전한 왕조 1대의 역사를 기록한 한서(漢書) 중의 한 편이다. 한서는 제기(帝紀) 12·표(表) 8·지(志) 10·열전(列傳) 70의 총 100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리는 천문·체설(滯泄) 등과 더불어 지부(志部)에 속한다. 사기가 통사로서 역사 서술의 한 전형을 이루고 있는데 대해서, 한서는 처음으로 단대사(斷代史)의 형태를 취한 것이다. 이를 본받아 그 이후의 역대 정사(正史)에는 지리지가 부기되게 되었다. 한서지리지의 내용은, 먼저 우공(禹貢)의 9주 이후 분열되어 혼란 상태에 있던 천하가 통일되어 한의 지방제도가 성립하는 연혁을 설명하고, 제2단에서는 원시(元始) 2년(기원 2년)의 상태를 기준으로 하.. 더보기
한서 한 서 전 120권. 《전한서(前漢書)》 또는 《서한서(西漢書)》라고도 한다. 《사기(史記)》와 더불어 중국 사학사상(史學史上) 대표적인 저작이며, 정사(正史) 제2위를 차지한다. 처음 반고의 아버지 반표(班彪)가 《사기》에 부족한 점을 느꼈고, 또 무제(武帝) 이후의 일은 사기에 기록되지 않았으므로 스스로 사서를 편집코자 《후전(後傳)》 65편을 편집하였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반고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 수사(修史)의 일을 시작하였으나, 국사를 마음대로 한다는 모함을 받아 한때 투옥되기도 하였으나, 명제(明帝)의 명으로 한서 저작에 종사하였다. 그리하여 장제(章帝) 건초연간(建初年間)에 일단 완성을 보았으나 와 가 미완성인 채 그가 죽자, 누이동생 반소(班昭)가 화제(和帝)의 명으로 계승하.. 더보기
태평어람 태평어람 처음 이름은 《태평총류(太平總類)》이며, 약해서 《어람(御覽)》이라고도 한다. 송나라 태종(太宗)의 명으로 977년에 착수하여 983년에 완성시킨 1,000권에 달하는 방대한 책이다. 《춘명퇴조록(春明退朝錄)》에 따르면, 이 책이 완성되자 태종이 하루에 3권씩을 읽어 1년 만에 독파(讀破)하였으므로 책명을 《태평어람(太平御覽)》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내용 체재는 55부문으로 나뉘어 있고, 인용한 책이 1,690종이나 된다. 전대(前代)의 잡서로부터 대개 채록한 것이나, 많은 일서(逸書)의 이야기를 적어 놓아 중국의 재래 백과서 중 백미(白眉)이다. 이 책은 송대(宋代) 이전의 고사를 아는 데 유용할 뿐 아니라, 사이부(四夷部)에 신라와 고구려 등에 관한 기록이 보여 한국 역사 연구에도 도움이 되.. 더보기
주서 주 서 북제 문선제 천보 2년에 위수가 왕명을 받을어 편찬한 사서이다. 북위의 건국부터 동위 효정제까지의 165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라고도 한다. 북제(北齊) 사람 위수(魏收)의 저서로 《북위서(北魏書)》 또는 《후한서(後漢書)》라고도 한다. 114권(本紀 12권, 志 10지, 列傳 92편)으로 되어 있다. 문선제(文宣帝) 천보(天保) 2년(551)에 만들어졌고, 현재 전하는 것은 잃어버린 부분을 송(宋)나라 때 보완한 것이다. 북위(北魏) 건국 이전부터 시작하여 북위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동위(東魏)를 정통이라 하였으나 북제(北齊)를 왜곡하고 열전(列傳)의 서술이 불공평하여 후세의 사가(史家)들로부터 예사(穢史)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권 49에 이역열전에 고구려, 백제전이 있는데 역사적으로 사.. 더보기
자치통감 자치통감 294권. 《통감(通鑑)》이라고도 한다. 주(周)나라 위열왕(威烈王)이 진(晉)나라 3경(卿:韓 ·魏 ·趙氏)을 제후로 인정한 BC 403년부터 5대(五代) 후주(後周)의 세종(世宗) 때인 960년에 이르기까지 1362년간의 역사를 1년씩 묶어서 편찬한 것이다. 주기(周紀) 5권, 진기(秦紀) 3권, 한기(漢紀) 60권, 위기(魏紀) 10권, 진기(晉紀) 40권, 송기(宋紀) 16권, 제기(齊紀) 10권, 양기(梁紀) 22권, 진기(陳紀) 10권, 수기(隋紀) 8권, 당기(唐紀) 81권, 후량기(後梁紀) 6권, 후당기(後唐紀) 8권, 후진기(後晉紀) 6권, 후한기(後漢紀) 4권, 후주기(後周紀) 5권 등 모두 16기(紀) 24권으로 구성되었다.먼저 사마 광이 《통지(通志)》 8권을 찬진(撰進)하.. 더보기
위서 위 서 북제(北齊) 사람 위수(魏收)의 저서로 《북위서(北魏書)》 또는 《후한서(後漢書)》라고도 한다. 114권(本紀 12권, 志 10지, 列傳 92편)으로 되어 있다. 문선제(文宣帝) 천보(天保) 2년(551)에 만들어졌고, 현재 전하는 것은 잃어버린 부분을 송(宋)나라 때 보완한 것이다. 북위(北魏) 건국 이전부터 시작하여 북위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동위(東魏)를 정통이라 하였으나 북제(北齊)를 왜곡하고 열전(列傳)의 서술이 불공평하여 후세의 사가(史家)들로부터 예사(穢史)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더보기
위략 위 략 서진 무제 태강 연간에 위의 낭중을 지낸 어환이 사찬한 삼국시대 위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사서이다. 원본은 산실되어 전하지 않는다. 당서, 경적지 등에 그 권수가 38권, 신당서, 예문지에는 50권이라고 되어 있으며, 삼국지, 사기색은, 문선주, 예문유취, 태평어람, 한원 등에 그 일문이 실려있다. 청의 장봉일이 이것들을 집대성하여 위략집본 25권을 편찬하였다. 더보기
양서 양 서 총 56권. 본기(本紀) 4(6권). 열전(列傳) 49(50권). 중국의 24사(史) 중의 하나로서 남조(南朝) 양나라의 사대사적(四代事蹟)을 기록한 사서(史書)이다. 양나라의 역사를 다룬 책으로는 심약(沈約) ·주흥사(周興嗣) ·포행경(飽行卿) ·사호(謝昊) 등이 편찬한 《양사(梁史)》와 유번(劉?) ·하지원(河之元)이 편찬한 《양전(梁典)》 등이 있었으나, 기전체(紀傳體)로 된 것은 없었다. 이 책은 원래 요사렴의 부친 찰(察)이 진(陳)나라의 사부낭중(祠部郞中)에 있을 때부터 시작한 것으로, 589년 진나라가 망하여 중단하였다가, 수(隋)나라 문제(文帝) 때 이르러 다시 계속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하였다. 찰이 죽자 이에 요사렴은 부친의 사업을 계승하여 개인적으로 628년에 편찬을 마쳤고, 다음.. 더보기
신증동국여지승람 신증동국여지승람 목판본. 55권 25책. 조선은 건국 후 통치상의 필요에서 지리지 편찬의 중요성을 통감, 세종의 명에 따라 맹사성(孟思誠) ·신색(申檣) 등이 1432년(세종 14) 《신찬팔도지리지(新撰八道地理志)》를 찬진(撰進)하였다. 그 후 명나라에서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가 들어오자, 양성지(梁誠之) ·노사신(盧思愼) ·강희맹(姜希孟) ·서거정(徐居正) 등이 성종의 명으로 이 체제를 본따고 《신찬팔도지리지》를 대본으로 하여 1481년(성종 12)에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50권을 완성하였다. 이를 다시 1486년에 증산(增刪) ·수정하여 《동국여지승람》 35권을 간행하고, 1499년(연산군 5)의 개수를 거쳐 1530년(중종 25)에 이행(李荇) ·홍언필(洪彦弼)의 증보에 의해 이 책의 .. 더보기
신당서 신당서 《신당서》는 1044~1060년까지 17년에 걸쳐 완성하였다. 구양수(歐陽修) ·송기(宋祁) 등이 고쳐 편찬하였고, 재상 증공량(曾公亮)이 총재(總裁)하였다. 는 고조 1권, 태종 1권, 고종 1권, 측천순성무황후(則天順聖武皇后) 및 중종 1권, 예종 ·현종 1권, 숙종 ·대종 1권, 덕종 ·순종 ·헌종 1권, 목종 ·경종 ·문종 ·무종 ·선종 1권, 의종 ·희종 1권, 소종 ·애종 1권을 합쳐서 10권, 는 예악지(禮樂志) 12권, 의위지(儀衛志) 1권, 거복지(車服志) 1권, 역지 6권, 천문지 3권, 오행지(五行志) 3권, 지리지(地理志) 7권, 선거지 2권, 백관지(百官志) 4권, 병지(兵志) 1권, 식화지(食貨志) 5권, 형법지 1권, 예문지(藝文志) 4권을 합쳐서 50권, 는 재상(宰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