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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박사제도 사료 백제의 박사 제도 (응신천왕) 15년 8월 무신삭(戊戌朔) 정묘(丁卯)에 백제의 왕이 아직기(阿直伎)를 보내어 좋은 말 2필을 바쳤다. 경(輕)의 산비탈 부근에 있는 마굿간에서 길렀는데, 아직기에게 사육을 맡도록 했다. ... 아직기가 또한 경전을 잘 읽으므로 태자 토도추랑자(?道椎郞子)의 스승으로 삼았다. 이 때 천황이 아직기에게 묻기를 "혹시 너보다 뛰어난 박사가 또 있느냐"라 하니 대답하기를 "왕인(王仁)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매우 뛰어납니다"라 하였다. … 16년 2월에 왕인이 와서 태자 토도추랑자의 스승이 되었는데, 모든 전적(典籍)을 왕인에게서 배워 통달하지 않음이 없었다. 이른바 왕인은 서수등(書首等)의 시조이다. - 니혼쇼키 권 10, 응신천황 15, 16년- 백제는 … 오경박사(五經博士) .. 더보기
신라 건국 설화 - 김알지 설화 김알지 설화 탈해왕 9년(서기 65년) 봄 3월에 왕이 밤에 금성 서쪽 시림의 숲에서 닭우는 소리를 들었다. 날이 새기를 기다려 호공을 보내 살펴보게 하였더니, 금빛 나는 조그만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아래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돌아와서 아뢰자, 사람을 시켜 궤짝을 가져와 열어보았더니 조그만 사내아이가 그 속에 있었는데, 자태와 용모가 기이하고 컸다. 왕이 기뻐하며 좌우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하고는 거두어서 길렀다. 성장하자 총명하고 지략이 많았다. 이예 알지라 이름하고 금궤짝에서 나왔기 때문에 성을 김이라 하였으며, 시림을 바꿔 계림이라 이름하고 나라 이름으로 삼았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탈해이사금 9년조 - 영평 3년 경신 8월 4일에 호공이 밤에 월성 서리를 가다가 큰 빛이 시림 속.. 더보기
신라 건국 설화 - 석탈해 설화 석탈해 설화 탈해는 본래 다파나국(용성국, 정명국, 완하국, 화하국이라고도 함, 위치는 모름)에서 태어났는데, 그 나라는 왜국의 동북쪽 천리되는 곳에 있다. 앞서 다파나국이 여국왕의 딸을 맞아들여 아내로 삼았는데, 임신한 지 7년이 되어 큰 알을 낳았다. 왕이 말하기를 고 하였다. 여자는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비단으로 알을 싸서 보물과 함께 궤짝 속에 넣어 바다에 띄워 가는 대로 가게 맡겨 두었다. 처음에 금관국 바닷가에 이르렀으나 금관국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겨 거두지 않았다.(가락국기에는 탈해가 수로왕과 싸워 쫒겨났다고 전해짐) 다시 진한 아진포 어귀에 다다랐다. 이 때는 시조 혁거세가 왕위에 오른지 39년이 되는 해다. 그 때 바닷가에 있던 할멈이 줄을 끌어당겨서 해안에 매어놓고 궤짝을 열어보니 .. 더보기
건국설화 - 알영 설화 알영 이야기 혁거세서간 5년(기원전 53년) 봄 정월에 알영을 왕비로 삼았다. 이에 앞서 용이 알영정에 나타나 오른쪽 옆구리에서 여자아이를 낳았는데, 어떤 할멈이 보고서 이상히 여겨 거두어 키웠다. 우물 이름을 따서 아이 이름을 지었는데, 자라면서 덕행과 용모가 뛰어났다. 시조가 이를 듣고서 맞아들여 왕비로 삼으니 행실이 어질고 안에서 보필을 잘하였다. 당시 사람들을 둘을 이성(二聖)이라고 일컫게 되었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 시조혁거세거서간 5년조 - 사료해석 : 혁거세 설화가 담긴 삼국사기 기록의 뒷부분 알영이야기입니다. 해석은 윗 사료들과 동일한 부분이라 생략합니다. 더보기
박혁거세의 진한 육촌 사로국 설화 박혁거세 설화 진한 땅에 옛날에 6촌이 있었다. 전한의 지절 원년인 임자년 3월 초하루에 6부 시조들이 저마다 자제를 이끌고 알천 기슭 위에 모두 모여서 의논하여 말하기를 라고 하였다. 이에 높은 곳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 아래 나정 곁에 이상한 기운이 번개처럼 땅에 내려오더니 백마 한 마리가 꿇어앉아 절하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곳을 찾아가 보니 붉은 알이 하나 있고, 말은 사람을 보고 길게 울다가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알을 깨보니 모습이 단정하고 아름다운 사내아이가 나왔다. 이 아이를 경이롭게 여겨 동천에서 목욕시키니 몸에서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들이 따라 춤추며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이 청명하였기에 혁거세왕이라 이름하고 위호를 거슬감이라 하였다. 그 때 사람들이 서로 다투어 치하하며 라고.. 더보기
백제의 건국에 대한 중국측의 사료 백제의 기원 백제국은그 선조가 부여에서 나왔다. - 위서, 열전 백제 - 백제는 그 선대가 대개 마한의 속국이며 부여의 별종이다. 구태라는 사람이 대방에 나라를 세웠다. - 주서, 이역열전 백제전 - 백제국은 본래 부여의 별종이다. - 구당서, 동이열전 백제전 - 백제는 부여의 별종이다. - 신당서, 동이열전 백제 - 백제의 선조는 고구려국 출신이다. - 수서, 동이열전 백제 - 부여는 본래 현토에 속했는데 한나라 말에 요동태수 공손탁이 해동으로 세력을 크게 넓혀 외이를 위엄으로 복속시키자 부여왕 위구태가 소속을 바꿔 요동에 복속하였다. 이 때 고구려와 선비가 강성하였으므로 공손탁은 두 나라 틈에 끼어 있는 부여와 더욱 가까이 지내려고 위구태에게 일족의 딸을 시집보낸 것이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 더보기
백제 건국 설화 - 구태 설화 구태 설화 백제라는 나라는 대개 마한의 속국으로 색리국(고리지국, 호리지국)에서 나왔다. 색리국왕이 행차를 나갔을 때 그를 시중들던 아이가 후궁에서 임신하였는데, 왕이 돌아와 그녀를 죽이려고 하였다. 시녀가 라고 아뢰자 왕은 그 시녀를 살려주었다. 뒷날 아들을 낳으며, 이름을 동명이라고 하였다. 동명이 성장하여 활을 잘 쏘자 왕은 그의 용맹스러움을 꺼려 또 다시 죽이려고 하였다. 동명이 마침내 남쪽으로 도망하여 부여에 이르러 왕이 되었다. 동명의 후손에 구태라는 사람이 있어 매우 어질고 신의가 두텨웠다. 그는 대방의 옛 땅에 처음 나라를 세웠다. 한나라 요동태수 공손탁이 딸을 구태에게 시집보냈는데, 마침내 동이의 강국이 되었다. 당초에 백가가 건너왔다고 해서 나라 이름을 백제라고 불렀다. - 북사, 열전.. 더보기
삼국지 위지 동이전 삼국지 위지 동이전 《삼국지》는 30권, 15권, 20권으로 되어 있으며, 30권 중에 이 들어 있는데, 부여 ·고구려 ·동옥저(東沃沮) ·읍루(?婁) ·예(濊)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 ·왜(倭) 등의 역사서이며 한민족(韓民族)을 비롯한 동방 민족에 관한 가장 오래 된 기록으로서 고대사(古代史)의 유일한 사료(史料)이다. 당시의 제천의식(祭天儀式) ·가무(歌舞) 등에 관한 기록이 많이 있다. 더보기
후한서 후한서 120권.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에 송(宋)나라의 범엽(范曄)이 저술한 책으로, 후한의 13대(代) 196년간의 사실(史實)을 기록하였다. 기(紀) 10권, 지(志) 30권, 열전(列傳) 80권으로 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지(志) 30권은 진(晉)의 사마 표(司馬彪)가 저술한 것이다. 후한의 역사서로는 범엽 이전에 이미 《동관한기(東觀漢紀)》를 비롯하여 사승(謝承)·설형(薛瑩)·화교(華嶠)·사침(謝沈)·애산송(哀山松)·장번(張?)·사마표 등의 《후한서》가 있었는데, 범엽은 이 저술들을 바탕으로 하여 독자적 견해로 이 책을 쓴 것이다. 또한, 범엽 이전의 저술들은 모두 일실되고 없는 형편이어서 이 책이 후한서의 정사(正史)로 되어 있다. 특히 이 책의 〈동이전(東夷傳)〉에는 부여·읍루·고구려·동옥.. 더보기
해동고승전 해동고승전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 오관산(五冠山) 영통사(靈通寺)의 주지이던 각훈이 왕명을 받아 저술한 책으로 전질(全帙) 중에서 첫머리의 2권 1책(필사본)만 발견되어 전한다. 삼국의 불교에 큰 영향을 끼친 고승들의 행적기(行跡記)로서, 권1에는 순도(順道) ·실명승(失名僧) ·의연(義淵) ·담시(曇始) ·마라난타(摩羅難陀) ·아도(阿道) ·현창(玄彰) ·법공(法空) ·법운(法雲)의 전기를, 권2에는 각덕(覺德) ·지명(智明) ·원광(圓光) ·안함(安含) ·아리야발마(阿離耶跋摩) ·혜업(慧業) ·혜륜(慧輪) ·현각(玄恪) ·현유(玄遊) ·현대범(玄大梵)의 전기 등으로, 1 ·2권에 걸쳐 모두 19명의 행적이 들어 있다. 권두에는 석보(釋譜)와 불교동래(佛敎東來)의 기록도 있는데, 이 책은 승전으로서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