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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 수 서 85권. 636년(태종 10) 당(唐)나라에서 장손무기(長孫無忌) ·위징(魏徵) 등이 태종(太宗)의 명을 받아 제기(帝紀) 5권, 열전(列傳) 50권, 지(志) 30권으로 나누어 편찬하였다. 이 중 부분은 남조(南朝)의 양(梁) ·진(陳), 북조(北朝)의 북제(北齊) ·북주(北周) 및 수 등 5대(代)의 사실을 기록한 별개의 서책을 후에 편입시켜 놓은 것이다. 중의 에는 수나라까지 전래된 서책명을 열거해 놓았기 때문에 유용하다. 더보기
송서 송 서 《제기(帝紀)》 10권, 《지(志)》나라 30권, 《열전(列傳)》 60권, 도합 100권. 487년 남제(南齊) 무제(武帝)의 칙명(勅命)에 따라 심약(沈約)이 488년에 편찬을 완성한 것으로 송나라 60년(420∼478)의 역사를 기록하였으며, 중국의 사서(史書) 중 가장 권위 있는 25정사에 들어간다. 이 사서는 이미 462년 송나라 효무제(孝武帝)의 칙명에 따라 서원(徐爰) 등이 편찬한 것에, 그 뒤의 역사 등을 보충하여 완성한 것이다. 더보기
진수의 삼국지 삼국지 진(晉)나라의 학자 진수(陳壽:233∼297)가 편찬한 것으로,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와 함께 중국 전사사(前四史)로 불린다. 위서(魏書) 30권, 촉서(蜀書) 15권, 오서(吳書) 20권, 합계 65권으로 되어 있으나 표(表)나 지(志)는 포함되지 않았다. 위나라를 정통 왕조로 보고 위서에만 를 세우고, 촉서와 오서는 의 체제를 취했으므로 후세의 사가(史家)들로부터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촉한(蜀漢)에서 벼슬을 하다가 촉한이 멸망한 뒤 위나라의 조(祚)를 이은 진나라로 가서 저작랑(著作郞)이 되었으므로 자연 위나라의 역사를 중시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 때문에 후에 촉한을 정통으로 한 사서(史書)도 나타났다. 그러나 찬술한 내용은 매우 근엄하고 간결.. 더보기
일연의 삼국유사 삼국유사 1999년 11월 19일 부산유형문화재 31호로 지정되었다. 활자본이며, 5권 2책으로 구성되었다. 편찬 연대는 미상이나, 1281∼1283년(충렬왕 7∼9) 사이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현재까지 고려시대의 각본(刻本)은 발견되지 않았고, 완본으로는 1512년(조선 중종 7) 경주부사(慶州府使) 이계복(李繼福)에 의하여 중간(重刊)된 정덕본(正德本)이 최고본(最古本)이며, 그 이전에 판각(板刻)된 듯한 영본(零本)이 전한다. 본서는 김부식(金富軾)이 편찬한 《삼국사기(三國史記)》와 더불어 현존하는 한국 고대 사적(史籍)의 쌍벽으로서, 《삼국사기》가 여러 사관(史官)에 의하여 이루어진 정사(正史)이므로 그 체재나 문장이 정제(整齊)된 데 비하여, 《삼국유사》는 일연 혼자의 손으로 씌어진 이른바 야.. 더보기
김부식의 삼국사기 삼국사기 1145년(인종 23) 국왕의 명령을 받은 김부식의 주도 아래 최산보(崔山甫) 등 8명의 참고(參考)와 김충효(金忠孝) 등 2명의 관구(管勾)가 편찬하였다. 이들은 자료의 수집과 정리에서 함께 작업했지만, 〈진삼국사기표(進三國史記表)〉와 머리말, 논찬(論贊) 및 사료의 선택, 인물의 평가 등은 김부식이 직접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진삼국사기표〉에는 "사대부가 우리 역사를 잘 알지 못하니 유감이다. 중국 사서는 우리나라 사실을 간략히 적었고, 《고기(古記)》는 내용이 졸렬하므로 왕·신하·백성의 잘잘못을 가려 규범을 후세에 남기지 못하고 있다"고 하여 편찬 동기를 기록하고 있다. 구성은 크게 본기(本紀) 28권, 지(志) 9권, 연표(年表) 3권, 열전(列傳) 10권으로 이루어졌다. 그동안.. 더보기
북사 북사 당나라의 학자 이연수(李延壽) 편찬. 본기(本紀) 12권, 열전(列傳) 88권 합계 100권. 중국 24사(二十四史)의 하나로서, 남사(南史)에 비하여 서사(敍事)가 매우 상밀(詳密)하다. 열전 중에는 《고구려전》 《백제전》 《신라전》 《물길전(勿吉傳)》 《거란전(契丹傳)》 등이 있어 한국 역사 연구에 참고자료가 된다. 더보기
이규보의 동명왕편 동명왕편 고려 고종(高宗) 때 이규보(李奎報)의 작품집인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제3권에 실려 전한다. 그 내용은 고려 초기 문인들이 허상적 관념론에서 벗어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문화민족임을 재인식하는 입장에서 고구려의 시조 동명왕의 영웅적이고 성자적(聖者的)인 행위를 찬양, 고구려인의 긍지를 노래한 장편 서사시이다. 대몽항쟁(對蒙抗爭)에 있어서 민족의식 내지는 국가의식이 고취되면서 역사적 사실이 문학에 반영된 작품으로 기사체(記事體) 문학의 선구가 된다. 《현대문학》 제1권 제10호(1955년 양재연 번역)에 실려 있다. 더보기
일본서기 니혼쇼키(일본서기) 30권. 이 밖에 계도(系圖) 1권이 있었다고 하나 전하지 않는다. 덴무[天武]왕의 명으로 도네리친왕[舍人親王]이 중심이 되어 680년경 착수, 720년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일본 6국사(六國史) 중의 첫째로 꼽히는 정사(正史)로서 왕실을 중심으로 하여 순한문의 편년체(編年體)로 엮었으며, 편찬의 자료로는 제기(帝紀), 구사(舊辭), 제가(諸家)의 전승기록(傳承記錄), 정부의 공식기록, 개인의 수기(手記), 사원(寺院)의 내력 등을 기초로 하고, 특히 《백제기(百濟記)》 《백제본기(百濟本記)》 《백제신찬(百濟新撰)》 등 한국의 사료(史料)와 《위서(魏書)》 《진서(晉書)》 등 중국의 사서(史書)를 병용하고 있어, 일본에서 비교적 객관적으로 저술한 역사서라고 자부하고 있다. 그러나.. 더보기
남사 남사 당나라 이연수(李延壽) 편찬. 80권. 중국 정사(正史)의 하나로, 이연수의 아버지 이대사(李大師)가 종래의 남북조 정사(正史)가 공정하지 못하다 하여 이를 개정하여 통사(通史)를 만들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자, 아들이 유지(遺志)를 받들어 17년에 걸쳐 북사(北史)와 남사(南史)를 편찬하였다. 《남사》는 본기(本紀) 10권, 열전(列傳) 70권으로 되었으나, 지(志)와 표(表)가 결여되어 지는 《수서(隋書)》의 지로 이를 보완하고, 표는 청나라의 주가유(周嘉猷)가 《남북사표(南北史表)》 6권을 만들었다. 편자는 《북사》에만 많은 힘을 기울이고, 《남사》는 다만 구문(舊文)을 교정 ·편찬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간략하게 정리되었으므로 이 책이 나오자 사람들은 송 ·제 ·양 ·진의 4서(書.. 더보기
구당서 구당서 《당서》는 당고조(唐高祖)의 건국(618)에서부터 애제(哀帝)의 망국(907)까지 21제(帝) 290년 동안의 당나라 역사의 기록이다. 처음에는 단지 《당서》로 이룩하였지만, 송나라 때 내용을 고쳐 《신당서》로 편찬하였다. 그래서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로 나누어졌다. 《구당서》는 200권으로 되어 있는데, 당나라 멸망 직후의 사료가 부족하여 후반부가 부실하다. 전반부도 여러 사료에서 대강 발췌한 것이라 체제에 일관성은 없다. 그러나 당나라 때의 원사료의 문장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신당서》는 225권으로 되어 있는데, 송나라 때 《구당서》의 누락된 부분을 보충한 것도 많다. 표(表)가 많은 것도 특징이고, 처음으로 병지(兵志) ·선거지(選擧志)를 갖추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