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보기

고구려인의 사회 생활 증거 사료 고구려인의 생활 2월, 명령을 내려 "급하지않은 일은 뒤로 미루라"고 명하고, 사자를 군, 읍에 보내어 농사와 누에치기를 권장하였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후한 요동 태수 최식이 말하기를 "지금 요동에서는 쟁기로 농사를 짓는데 끌채의 길이가 4척이어서 서로 도는 데 방해가 된다. 두 마리 소를 사용하는 데 두 사람이 끌고 한 사람이 쟁기를 잡고 간다. 그 뒤에 한 사람이 씨를 뿌리고 한 사람이 덮는다. 대개 소 두 마리와 여섯 사람이 함께 일한다."하였다. -제민요술, 경전제일- 그들의 풍습에는 음식은 아껴서 먹으나 궁실은 잘지어 치장한다. 살고 있는 좌우에 큰 집을 세우고 귀신에게 제사 지낸다. 또 영성과 사직에도 제사를 지낸다. 그 나라 사람들은 성질은 포악하고 급하며 노략질하기를 좋아한다. - .. 더보기
고구려의 대가와 부체제 증거 사료 대가와 부체제 건안(建安) 연간에 공손강(公孫康)이 군대를 보내어 고구려를 공격하여 격파하고 읍락을 불태웠다. 발기(拔奇)는 형이면서도 왕이 되지 못한 것을 원망하여 연노부(涓奴部)의 가(加)와 함께 각기 하호 3만 여명을 이끌고 강(康)에게 투항하였다가 돌아와서 비류수(沸流水) 유역에 옮겨 살았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고구려 - 자료 참조 : 고구려의 대가에 대한 사료입니다. 발기는 스스로 하호를 가지고 있었고, 스스로 영역을 옮겨 살았습니다. 초기 고구려 사회가 중앙집권이 되기 전에 부체제 상태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료입니다. 더보기
고구려의 대가, 소가, 고추가 고구려의 대가 모든 대가들 또한 자체적으로 사자·조의·선인을 두는데, 그 명단은 왕에게 보고한다. 이들은 마치 중국의 경(卿)이나 대부(大夫)의 가신(家臣)과 같은 존재로서 회합할 때의 좌석 차례에서는 왕가(王家)의 사자·조의·선인과 같은 열에 앉을 수가 없다. 그 나라 안의 대가(大家)들은 농사를 짓지 않으므로, 앉아서 먹는 인구가 만여 명이나 되는데, 하호들이 먼 곳에서 양식·고기·소금을 운반해다가 그들에게 공급한다. … 대가(大加)와 주부(主簿)는 머리에 책(瓔) 같은 것을 쓰는데, [중국의] 책(瓔)과 흡사하지만 뒤로 늘어뜨리는 부분이 없다. 소가(小加)는 절풍(折風)을 쓰는데 그 모양이 고깔[弁]과 같다. … 감옥이 없고 범죄자가 있으면 제가(諸加)들이 모여서 평의(評議)하여 사형에 처하고 처자.. 더보기
금관가야의 멸망과 식읍(부체제)의 등장 금관가야의 병합기 법흥왕 19년(532)에 금관국주 김구해(金仇亥)가 왕비 장남 노종(奴宗), 둘째 덕무(武德), 세째 무력(武力)의 세 아들과 함께 국고의 보물을 가지고 항복해 오니, 왕은 이들을 예로서 대접하고 상등의 지위를 주고 그 본국을 식읍으로 삼게 하였다. 그 아들 무력은 조정에 벼슬하여 각간에까지 이르렀다. - 삼국유사 - 자료 참조 : 법흥왕 대에 금관가야가 병합되는데, 이 사료에는 몇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신라는 금관가야를 병합하면서 그 일족을 흡수한 사실입니다. 왕이 이들을 예로서 대접하고 지위를 준다는 것은, 가야국에 대한 예우로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더 연구되어야 알겠지만, 신라 통일기에 금관가야계 김씨인 김유신 등이 신라 공신으로 성장하였다가, 중대 이후 골품제의 한계.. 더보기
계백 장군 이야기 계백장군 이야기 나당(羅唐) 연합군 18만이 백제의 도성을 향하여 진격의 박차를 가해오자 의자왕은 전세가 급박함을 직감하고 달솔(達率)이던 계백(階伯)울 장군으로 삼아 황산벌 전장에 출정토록 하였다. 계백장군은 5천 결사대를 인솔하여 전장에 나가며 말하기를, '한 나라의 사람으로 당나라와 신라의 대군을 상대하게 되니 국가의 존망을 가늠할 수가 없다. 내 처자가 적들에게 붙잡히어 노비가 되어 욕된 삶을 이어나가는 것은 차라리 쾌히 죽는 것만 같지 못하다.'하고 손수 처와 자식을 벤 후에 황산(黃山) 벌판에 이르러 삼영(三營)을 설치하고 신라의 5만 병사를 만나 싸웠는데 여러 장병들 앞에 맹세하기를 '옛날 월(越)나라의 구천(句踐)은 5천명의 군사로써 오(吳)나라의 70만 대군을 격파하였다. 오늘 각기 장병.. 더보기
은산 별신제의 유래 은산 별신제의 유래 오랜 옛날 은산 지방에 갑자기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여 많은 사람이 죽어 갔는데, 이곳은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인 사비성과 백제 부흥군이 웅거하던 임존성과의 중간지점이기도 하다. 전염병에 대해서 뾰쪽한 대책이 없이 시일만 흘러가고 사람은 더 많이 죽어 가던 어느 날, 이 고을에 사는 한 노인의 꿈속에서 금빛이 번쩍이는 갑옷과 투구를 쓴 장군이 백마를 타고 나타났다. 그 장군은 "나는 백제를 지키던 장군이고, 이곳은 우리가 나라의 광복을 위해서 싸우다가 죽은 곳이다. 이곳에는 내 부하였던 애국 장병들의 원혼이 흩어져 있는 곳이니 유골을 수습하여 양지바른 곳에 묻어 달라. 그러면, 그 보답으로 내가 염병을 없애 주겠다"고 말하며, 부하들의 죽음이 묻힌 곳들을 알려주면서 3년마다 한번씩 제사를.. 더보기
아비지와 황룡사 9층 목탑 설화 아비지와 황룡사 9층목탑 백제 의자왕 5년에 자장이라는 유명한 대사가 당나라로부터 불법을 연구하고 돌아와 대국통이란 직함을 띠고 불교를 융성시켰다. 그가 당나라에서 신라로 돌아올 적에 부처님의 사리(舍利)를 얻어온 것이 있어 그것을 모시기 위하여 황룡사에 9층의 큰 탑을 세우려는 표방과 또 신라에서는 그러한 미술공사를 맡을 적임이 없기 때문에 백제의 기술자를 구하였는데 그가 바로 아비지였다. 아비지는 신라의 초청을 받아 신라에 가서 몇날 동안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비로소 공사가 시작되어 황룡사 법당 앞에 구층탑의 탑주를 세운 첫날밤 백제 본국의 도성이 온통 불바다로 변하고 그 속에서 사랑하는 처자들과 또 모든 백성들의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려 나오므로 아비지는 깜짝 놀라 깨어보니 그것은 서글프고도 이상한 .. 더보기
온조와 위례성의 우물 설화 온조와 위례성의 우물 설화 온조는 백제건국 초기에 형인 비류와 헤어져서 산 위에 나라를 세운 온조는 동쪽으로 내려가서는 백성들에게 곡식을 키우는 방법도 가르쳐 주기도 하고 사냥을 다녔으나 밤에는 잠자리에 들어가면은 새벽까지 일체 바깥에 몸을 나타내지를 않았다. 위례성 우물은 온조가 잠자는 움막의 바로 옆에 있었다. 밤이 되면 온조는 움막에서 나와서는 샘으로 들어가서 용이 되어 북쪽으로 뚫린 한강으로 나갔다. 위례성 우물을 중심으로 땅속으로는 한강과 금강으로 통하는 강줄기가 있었다. 북쪽에서 떠나올 때 틀림없이 자기가 나라를 세우면 그들이 침범해 올 것을 예상했었다. 그래서 북쪽으로 올라와서 한강가에 나와서는 북쪽하늘을 살피고는 적의 침범이 없을 것 같으면 곧장 물줄기를 타고 위례성 우물로 돌아왔다가 남쪽.. 더보기
서동과 선화공주에 관한 설화 서동과 선화공주 설화 백제 제30대 무왕 그의 이름은 장이다. 무왕의 어머니는 과부였다. 그녀는 서울 남지가에 집을 짓고 홀로 살던 중 그 못의 용과 교통하여 무왕 장을 낳았다. 무왕의 아명은, 그의 재능이며 도량은 넓고 깊어 헤아이기 어려웠다. 항상 마를 캐어 팔아 생활해 나갔다. 사람들이 거기에 착안하여 그의 이름을 서동이라고 부른 것이다. 서동은 신라 진평왕의 세째 공주 선화가 세상에 둘도 없는 아름다움을 지녔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는 머리를 깎고 신라의 서울로 왔다. 서울의 마을 아이들에게 그는 마를 나누어 주었다. 아이들은 호감을 가지고 그를 따랐다. 서동은 마침내 한 편의 동요를 지었다. 그리고는 마을의 그 아이들을 꾀어, 자기가 지은 동요를 무르고 다니게 했다. "선화 공주님은 남 몰래 밀어.. 더보기
도미의 아내 설화 도미의 아내 설화 도미는 백제 사람이다. 비록 소민이었지만 의리는 알고 있었다. 그의 아내가 매우 아름답고도 절행(節行)이 있어 사람들이 칭찬했다. 개루왕(백제 4대왕)이 이를 듣고 도미를 불러 이르되, "대개 부인의 덕이 정결하다 하나 만약 으슥한 곳에서 잘 유혹하기만 하면 마음이 변하는 경우가 많다." 도미가 이르되, "사람 의 마음은 헤일 수 없사오나, 신의 아내는 죽을망정 딴 뜻은 없습니다." 왕이 이에 시험하고자 하여 도미를 잡아두고, 한 신하로하여금 왕의 의복을 입히고 말을 태워 그 집에 이르러 그 집 사람에게 먼저 왕이 왔다고 전하고, 그 아내에게 이르되, "내 오랫 동안 네가 예쁘다는 말을 듣고 도미와 더불어 내기를 하고 왔노라. 내일은 너를 들여 궁인으로 삼아 이후로는 나의 소유가 되리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