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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거세 건국 설화 - 삼국사기 - 박혁거세 설화 시조, 성씨,휘.,원년,갑자,사월 병진[또는 정월 15일] 즉위, 부르기를 거서간이라 했고, 나이는 13세였고, 국호는. 먼저는 바로 유민이었다. 나누어 사니 산골짜기를 사이로 하여 6촌이다 첫 번째 가르되 , 두 번째 가르되 더보기
단군신화 - 삼국유사 - 단군신화 고기(古記)에 이렇게 전한다. 옛날에 환인(桓因)의 서자(庶子) 환웅(桓雄)이 항상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몹시 바랐다. 아버지는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 태백(三危太伯)을 내려다 보매 인간 세계를 널리 이롭게 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내려가서 세상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은 그 무리 3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꼭대기로 내려왔다.[즉 태백이란 지금의묘향산이다.]신단수 아래에서 이곳을 신시(神市)라 불렀다. 이 분을 환웅 천왕이라 한다. 그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수명, 질병, 형벌·선악 등을 주관하고인간의 삼백예순 가지나 되는 일을 주관하여 세계를 다스려 교화시켰다 이 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굴에서 살았.. 더보기
광개토대왕비문(수정본) 광개토대왕비문 해석참조 : http://myhome.naver.com/sial/sss.htm 제 1부. 오직 옛날 시조는 추모왕이시니 창업의 기초를 닦으셨느니라.. 출생하여 스스로 북부여 천제의 아들이라 하였다. 어머니는 하백녀이다. 랑부란(사내부족 아이)이 내려와 세상에 태어나니 성스러움이 있었다. 0000 이름을 駕(가)라 하였다. 순행하여 돌아다니다 남쪽 아래의 길에서 부여 엄리에서 큰 물(홍수)로 말미암아 왕으로 임하였다. 나루에서 말씀하여 가로되 “나는 바로 임금이니 하늘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하백녀이고 郞 부족의 추모왕이라 한다. 나를 건너가게 이어 주시오.” 거북이 떠올라 소리를 쳐 응하는 즉 허락하였음이다. 쭈욱 이어서 건널 수 있도록 거북은 떠 있었다. 그리하여 뒷날 비류곡을 건널 수 있.. 더보기
고구려 건국 설화 - 삼국사기 - 고구려건국설화 시조 동명성황은성이 고씨이며 이름은 주몽이다..... 부여의 금와왕이 태백산 남쪽에서 한 여자를 만나게 되어 물은 즉, 하백의 딸 유화라 하는지라....... 금와왕이 이상히 여겨 그녀를 방에 가두어 두었는데 햇빛이 따라와 비추었다. 그녀는 몸을 피하였으나 했빛이 따라와 기어이 그녀를 비추었다. 이로 인하여 그녀는 잉태하게 되었고 마침내 알 하나를 낳았다. ... 한 사내아이가 껍데기를 깨고 나왔다. 기골과 모양이 뛰어나고 기이했다. 일곱 살에 의연함이 더하였고, 스스로 활을 만들어 쏘는데 백발백중이었다. 부여의 속어에 활 잘 쏘는 것을 주몽이라 하니 이로써 이름을 삼았다. ..... 주몽의 어머니가 비밀을 알고 아들에게, 라고 타일렀다. 주몽은 그를 따르는 세 사람과 함께 도망하여 강가에.. 더보기
부여인의 생할 - 삼국지 위서 동이전 - 부여인의 생활 부여는 장성의 북쪽에 있다. 남쪽으로는 고구려와 접해있고, 서쪽으로는 선비족과 접해 있다. 북쪽은 약수가 있으며, 그 영토는 2천리에 이른다. 가옥은 8만이고, 그 백성은 토지를 가지고 있다. 궁실, 창고, 뇌옥이 있으며, 넓은 평야와 구릉이 많아 동이의 영토 중에서는 최고로 비옥하다. 토지는 오곡이 많이 나나 오과는 나지 않는다. 그 백성은 몸이 크고, 성품이 강인하고 용맹하고 근면하며 후덕하고, 노략질은 하지 않는다. 국가에는 군왕이 있으며, 모두 가축의 이름으로 관직을 지어 마가, 우가, 저가, 구가, 대사, 대사자, 사자 등이 있다. 읍락에는 호민이 있으며, 이른바 하호들은 모두 노복이다. 제가는 별도로 사출도가 있는데, 큰 것의 주인은 수천호와 작은 것의 주인은 수백호에 이른다. .. 더보기
이익의 삼한 정통론 이익의 삼한 정통론 동국의 역대흥망은 대략 중화와 서로 시작과 끝을 같이한다. 단군과 요임금은 같은 시기에 일어났으며, 무왕이 천명을 받을 때 기자가 봉군으로 정해졌다. 그 뜻은 무엇인가? 단군이 후에 쇠퇴하고 약해지고, 군왕이 다시 일어나지 못하자 기자가 다시 그것을 이어 업을 다시 일으킨 것이다. 기자는 8조의 조목(교화)가 있었는데, 그중에 지금 3가지만 전해지고 있다.(8조법 내용은 중략) 무릇 어질고 현명함의 문화는 실로 기자로부터 시작된 것이니 후에 자손들의 업이 끊기지를 않았다. 위만은 사이한 방법으로 그것을 훼손하였으니, 준왕은 오히려 그 사람들을 이끌고 남으로 달려가 강역을 다시 개척하였고, 50여국이 복속하였다. 이것은 즉 동방의 전통이 끊기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삼국의 설명은.. 더보기
고조선의 중심지 이동 - 삼국지 위서 동이전 - 고조선의 중심지 이동 옛날 기자의 후손인 조선제후가 있었다. 은나라가 쇠퇴하는 것을 보고 연나라가 스스로 왕이 되어 동쪽을 공격하고자 하니, 조선제후 역시 스스로 왕이라 칭하고 오히려 연을 물리치고 주왕실을 보호하고자 하였다. 이에 대부인 예가 중지할 것을 간청하니 이에 중지하였다. 또 서쪽 연나라에 사신을 파견하니 연도 역시 중지하여 공격하지 않았다. 후에 조선의 자손들은 점점 교만해져갔다. 연나라는 장군 진개를 파견하여 조선의 서쪽을 공격하여, 2천여리의 땅을 차지하였다. 만번한을 경계로 이르게 되었으며, 조선은 점차 쇠약해져갔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 사료해석 : 이 사료는 고조선의 중심지 이동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고조선의 중심지가 어디인가를 놓고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민족주의 학자들.. 더보기
고조선의 8조법 - 한서지리지 - 8조의 법 1 : 사람을 죽인자는 그 즉시 죽음으로 갚는다(相殺以當時償殺) 2 : 남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곡식으로 배상한다(相傷以穀償)" 3 : 도둑질한 자는 남자의 경우에는 몰입하여 그 집 종(奴)이 되고 여자는 계집종을 만든다(相盜者男沒入爲其家奴女子爲婢) 속전코자하는 자는 50만전을 낸다(欲自贖者人五十萬). 다음은 원문 해석입니다. 은나라가 쇠퇴하고 기자가 조선으로 내려왔다. 그 백성을 예의로서 교화하고, 농사와 뽕나무 심는 법을 가르쳤다. 낙랑의 조선인들은 8개의 법을 가지고 있었다. 서로 죽인 자는 죽음으로서 갚고, 서로 상처입힌자는 곡식으로서 갚는다. 도둑질한 자는 남자의 경우 몰수하여 노예로 만들고 여자는 계집종으로 만든다. 속죄하고자 하는 자는 50만냥을 내야한다. 비록 백성으로 돌아왔다 .. 더보기
황준헌의 조선책략 조선책략 지구의 위에는 막대한 나라가 있는데, 아라사(러시아)라고 한다. 그 너비가 광대해서 3대륙에 걸쳐 있다. 육군 정예병이 백여만이고, 해군 거함이 이백여척이다. 다만, 나라를 북쪽에 세워서 하늘은 차고 땅은 척박하였다. 고로 빠르게 그 영토를 넓혀서 사직을 이롭게 하려는 생각을 가졌다. 선세로부터 표트르대제 이래 새로 강토를 개척하여 이미 이전보다 10배가 넘었다. 지금의 왕에 이르러서는 다시 4해를 관할하고 팔방을 병합하려는 마음으로 중아세아에 있는 위구르의 모든 부족을 잠식하여 거의 다하였다 천하가 모두 그 뜻이 작지 아니함을 알고 왕왕 합종하여서 서로 항거하였다. 투르크 한 나라를 러시아가 오랫동안 병합하고자 하였으나 영국과 프랑스가 협력하여 유지해 나감으로 러시아가 끝까지 굳세게 그 뜻을 .. 더보기
홍재학의 조선책략 반대상소 조선책략 반대상소_홍재학 대개 서양의 학문은 천리를 어지럽히고 기강을 소멸시킴이 심하다는 것을 다시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서양의 물건은 대부분 음탕하고 욕심을 유도하며, 유교 윤리를 깨뜨리고 사람의 정신을 어지럽히며, 천지를 거역하는 것들입니다. 서양의 학문과 물건은 귀로 들으면 창자가 뒤틀리고 수컷이 다른 것으로 바뀌며 눈으로 보면 창자가 꼬이고 위가 뒤집히며, 코로 냄새를 맡고 입술로 그것에 닿게 하면 마음이 변하여 실성하게 되니 이는 곧 그림자가 서로 부딪치고 전염성이 서로 감영되는 것과 같으며, 그 사람의 좋고 싫음이 향배를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십자가의 상을 받들지 않는다 해도 예수교의 책을 읽게되면 성인에게 죄를 얻는 시작입니다. 전하의 백성들의 과연 귀와 눈과 코와 입이 있습니까 없..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