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풀이/역사 사료와 데이터 썸네일형 리스트형 고려사 열녀전 서문 - 고려의 여성 관련 사료 고려사 열녀전 서문 옛적에 여자가 나면 보모(傅姆)의 가르침이 있고 성장하면 동사(史)의 가르침이 있었다. 그러므로 집에 있어서는 현녀(賢女)가 되고 남에게 시집가면 현부(賢婦)가 되며 변고(變故)를 만나면 열부(烈婦)가 되었다. 후세(後世)에는 부훈(婦訓)이 규방(閨房)에 미치지 못하였으므로 탁연(卓然)히 자립하여 난(亂)에 임(臨)하여 백인(白刃)을 무릅쓰고 사생(死生)으로써 그 지조(志操)를 바꾸지 않는 것은 아아! 가(可)히 어렵다고 하겠기에 을 짓는다. 호수(胡壽) 처 유씨(兪氏) 호수(胡壽)의 처(妻) 유씨(兪氏)는 그 세계(世系)가 자세하지 않다. 고종(高宗) 44년에 호수(胡壽)가 나가 맹주(孟州)의 수령이 되었을 때에 맹주(孟州)에서는 병란(兵亂)을 피하여 해중(海中)에 우거(寓居)하였었.. 더보기 삼국유사 김현과 호랑이 사료 삼국유사 김현과 호랑이 사료 신라 풍속에 해마다 2월이면 8일부터 보름까지 도성의 남녀들이 흥륜사의 전탑을 도는 복회(福會)를 행했다. 원성왕 때, 김현(金現)이라는 총각이, 밤 깊도록 혼자 탑돌이를 하는데, 한 처녀가 염불을 하면서 그의 뒤를 따라 서로 눈이 맞아 탑돌이를 마치고 정을 통했다. 처녀가 돌아가려 하자 김현이 한사코 따라 나서 산기슭의 초가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처녀가 할머니에게 사실대로 말하자 형제들이 해칠지 모른다고 숨도록 하였다. 잠시 후, 세 마리 호랑이가 나타나 사람 냄새가 난다며 입맛을 다시는데, 할미 와 처녀가 헛소리를 한다고 꾸짖었다. 이 때, 하늘에서 "너희들이 많은 목숨을 즐겨 해쳤으니, 한 놈을 죽여 벌을 주리라."하는 소리가 들려와 두려움에 떠는데, 처녀가 오빠 호랑.. 더보기 삼국사기 을파소 열전 사료 삼국사기 을파소 열전 사료 을파소는 고구려인이다. 국천왕 때의 패자 어비류와 평자 좌가려 등이 모두 왕의 외척으로서 권세를 부리고 그릇된 행동을 많이 하자 백성들이 원망하고 분개하였다. 왕이 노하여 그들을 죽이려 하자 좌가려 등이 모반하므로 일부는 죽이고 일부는 귀양을 보냈다. 그리고 명을 내려 말했다. "근자에 벼슬이 측근에게 주어지고, 지위가 덕행에 따라 올라 가지 못하는 일이 많아 그 해독이 백성에게 미치고 왕실을 동요시켰다. 이는 과인이 총명치 못한 탓이었다. 이제 너희들 4부에서는 각기 재야에 있는 현량을 천거토록 하라!" 이에 4부에서 모두 동부의 안류를 천거하자 왕이 그를 불러서 국정을 맡기려 하였다. 안류가 왕에게 말했다. "미천한 저는 용렬하고 어리석어 실로 중대한 정사에 참여할 수 없습.. 더보기 삼국사기 사다함 열전 사료 삼국사기 사다함 열전 사료 사다함은 그 계통이 진골 출신으로 나밀왕의 7세 손이요, 부친은 구리지 급찬이다. 본래 높은 가문의 귀한 자손으로서 풍채가 청수하고 지기가 방정하여 당시 사람들이 그를 화랑으로 받들기를 청하므로 마지 못하여 화랑이 되었다. 그를 따르는 무리가 무려 1천 명이나 되었는데 사다함은 그들 모두의 환심을 얻었다. 진흥왕이 이찬 이사부에게 명하여 가라[가야라고도 한다.]국을 습격하게 하였는데, 이 때 사다함은 나이가 십 오륙 세로서 종군하기를 청하였다. 왕은 나이가 어리다 하여 처음에는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요청이 간절하고 의지가 확고하므로 마침내 그를 귀당비장으로 임명하니 그의 낭도로서 그를 따라 나서는 자가 많았다. 국경에 이르자 원수에게 청하여 그 휘하의 병사를 거느리고 .. 더보기 삼국사기 거도전 사료 삼국사기 거도전 사료 거도는 성이 전해지지 않고 어느 곳 사람인지도 알 수 없다. 탈해 이사금 때 벼슬을 하여 간이 되었는데, 이 때 우시산국과 거칠산국이 이웃 국경에 끼어 있으면서 자못 나라의 근심거리가 되었다. 거도가 변경 관장으로서 은근히 그 나라들을 병합하려는 뜻을 품고 매년 한 차례씩 장토 들에 말 떼를 모아 놓고 군사들로 하여금 말을 타고 달리면서 즐기게 하니, 당시 사람들이 그를 마숙이라고 불렀다. 두 나라 사람들은 이를 항상 보아 왔으므로 신라인들의 일반적인 행사라고 여기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에 거도가 병마를 출동시켜 그들을 불의에 공격하여 멸하였다. 이 글에 대한 참고사항 1. 이 글에 대한 관련 사료는 이 사이트 검색창에서 자유롭게 검색가능합니다.(관련 검색어로 검색하세요) 더보기 삼국사기 김생전 사료 삼국사기 김생전 사료 김 생은 부모가 미천하여 가문의 내력을 알 수 없다. 경운 2년에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썼다. 그는 평생동안 다른 기예는 닦지 않았으며 나이 80세가 넘어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예서와 행서 초서가 모두 입신의 경지여서 지금까지도 더러 그의 진필이 남아 있는데 학자들이 보배로 여겨 전하고 있다. 숭녕 연간에 학사 홍 관이 진봉사를 따라 송에 들어가서 변경에 묵고 있었는데, 이 때 한림 대조 양 구, 이 혁 등이 황제의 칙서를 받들고 사관에 와서 그림 족자에 글씨를 썼다. 홍 관이 그들에게 김 생이 쓴 행초 한 권을 보이니 두 사람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오늘날 왕 우군의 친필을 보게 될 줄 몰랐다"고 하였다. 홍 관이 말하기를 "아니오. 이것은 신라인 김 생이 쓴 것이오".. 더보기 삼국사기 검군전 사료 삼국사기 검군전 사료 검군은 구문 대사의 아들로 사량궁 사인이 되었다. 건복 49년 정해 가을 8월에 서리가 내려 모든 곡식을 죽이는 바람에 이듬해 봄과 여름에 큰 기근이 들어 백성들이 자식을 팔아 먹고 사는 형편이 되었다. 이 때 궁중의 여러 사인들이 공모하여 창예창의 곡식을 훔쳐서 나누어 가졌는데, 검군만은 홀로 받지 않았다. 모든 사인들이 말했다. "여러 사람이 모두 받았는데 그대만이 거절하니 무슨 일인가? 만일 적어서 그렇다면 더 주겠다." 검군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근랑의 문도에 이름을 두었고, 풍월도의 마당에서 수행을 하였으니, 실로 의로운 것이 아니면 천금의 이익이라도 내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이 때 대일 이찬의 아들이 화랑이 되어 근랑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검군.. 더보기 삼국사기 도미부인전 사료 삼국사기 도미부인전 사료 도미는 백제 사람이다. 그는 비록 미천한 백성이었으나, 자못 의리를 알았으며 그의 아내는 용모가 아름답고 또한 절개를 지켰으므로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이때 개루왕이 이 말을 듣고 도미를 불러 이야기 하기를, “무릇 부인의 덕 은 비록 정결을 위주로 한다고 하나 만약 어둡고 사람이 없는 곳에서 교묘한 말로 꾀이면 능히 그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도미는 대답하기를 “사람의 마음을 가히 헤아리지 못할 것이오나, 그러나 신의 아내만은 비록 죽더라도 두 마음을 가히 헤아리지 못할 것이오나, 그러나 신의 아내만은 비록 죽더라도 두 마음을 갖지 않는 사람입니다”하니, 왕은 이를 시험하고자 하여, 도미에게 사건을 만들어 머무르게 하고는 한 근신을 시켜 왕으로 .. 더보기 삼국사기 효녀지은전 사료 삼국사기 효녀지은전 사료 효녀 지은은 신라 한기부의 사람 연권의 딸이다. 그녀는 어려서 부친을 잃고 홀로 그 모친을 봉양하였다. 나이 32세가 되어도 시집을 가지 않고 밤낮으로 어머니의 좌우를 떠나지 않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그러나 집이 가난하여 잘 봉양할 수 없게 되자, 혹은 남의 일도 하여 주고 혹은 집집이 돌아다니며 밥을 빌어다가 어머니를 먹였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곤궁함을 이기지 못하여 드디어는 부호의 집에 청하여 몸을 팔아 종이 되고 쌀 10여석을 얻었다. 그 후 효녀 지은은 그 집에서 종일토록 일하고 저물어서야 집으로 돌아와 밥을 지어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이와 같이 하며 삼사 일이 지나자, 그 어머니가 딸에게 말하기를, “지난날에는 먹는 것이 맛나더니 오늘에는 밥은 비록 좋으나 맛은 좋은 .. 더보기 삼국사기 설총 열전 사료 삼국사기 설총 열전 사료 설총의 자는 총지로, 그 조부는 내마 담말이고, 그 부친은 원효이다. 원효는 처음에 중이 되어 불서에 해박하였으나, 다시 속인으로 돌아와서 스스로 소성거사라 이름하였다. 설총은 성질이 명예하고, 나면서부터 도리를 깨달았다. 방언으로써 구경을 풀어 읽게 하여 후생들을 훈도하였으므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학자의 조종으로 삼는다. 또한 글짓는 데 뛰어났으나 지금 세상에 전하는 것은 없다. 다만 지금 남쪽 지방에 설총이 지은비명이 있으나 문자가 결락되어 읽을 수 없으므로 그 뜻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한다. 신문대왕이 한여름 높고 밝은 방에 계시면서 설총을 돌아보고 말하였다. “오늘은 오래 오던 비도 개고 훈풍이 서늘하게 불어오니, 비록 진수성찬이나 서글픈 음악을 듣는 것보다는 고상한 .. 더보기 이전 1 ··· 51 52 53 54 55 56 57 ··· 136 다음